여름 밤 열대야 때문인지 아니면 무더위로 체력이 고갈되어서 그런지 요즘 부쩍 건망증이 늘었다. 금방 하려다 만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헤매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다. 오랜 만에 만난 친구의 이름도 가물가물하다.
그렇다면 기억력을 획기적으로 올려주는 약은 없을까. 게다가 머리를 총명하게 하고 눈과 귀도 밝게 하고 판단력도 높이는 약은 없을까. 특히 요즘 고령화 사회로 들어가면서 여기저기서 치매로 고생하는 경우를 보면 더욱 이런 생각은 간절해진다.
이런 물음에 원지가 대답이 될 수 있다. 원지(Polygala tenuifolia)는 쌍떡잎식물인 쥐손이풀목 원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을 말한다. 우리나라 중부 이북 지방의 산과 들에서 자라는 식물로 여름에 자줏빛의 작은 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줄기가 뿌리 위에서 무더기로 나오는 특징이 있다. 원지의 뿌리는 굵고 길며 능선이 있는 특징을 보이는데 이 뿌리를 말려 한약재로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과에 속하는 애기풀(Polygala japonica) 또는 영신초를 원지로 사용하기도 한다.
동의보감에서는 원지를 맛은 쓰고 성질은 따뜻하며 독성은 없는 약재로 분류한다. 원지가 가지는 약효에 대하여는 머리를 좋게 하여 지혜를 더하게 만들고 기억력을 좋게 하여 건망증을 없애고 눈과 귀를 밝게 하는 약이라 소개하고 있다.
▲ 원지(遠志)라고 하는 약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말 그대로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효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 |
나아가 원지는 뜻을 강하게 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며 놀라거나 가슴이 뛰는 것을 진정시키는 효능이 있다. 이러한 강력한 진정 효과에 대하여 동의보감에서는 원지가 혼백을 진정시켜 귀신에 씌우는 일이 없도록 만든다고 기록해 놓고 있을 정도이다.
사실 원지(遠志)라고 하는 약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말 그대로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효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원지는 기억력을 높이고 정신을 안정시키는 효능을 목표로 하는 거의 모든 처방에 활용된다. 예로부터 건망증을 없애고 오래도록 복용하면 하루 천 마디의 말을 외울 수 있다고 효능이 기록되어 있으며, 현대 의학적으로 뇌세포를 활성화시켜 기억력을 높이며 집중력을 뚜렷이 향상 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총명탕에는 원지가 주약이다.
또 유학의 대가인 중국의 주자가 이 약을 복용하고 하루에 책 천 권을 암기했다고 하여 과거를 준비하던 선비들이면 장원 급제를 꿈꾸며 으레 복용한 주자독서환에도 원지가 주약으로 들어가 있다.
▲ 원지를 달여서 실험동물에 투여하면 가래를 없애주고 기침을 억제하는 효능이 나타난다. | |
기억력이 부족해서 깜박 잊어버리기를 잘하고 정신이 불안하며 놀란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무서워하고 꿈자리가 편안치 못한 것을 치료하는 정지환이라는 약에도 원지가 포함된다.
실험에서도 원지를 쥐에게 투여한 결과 5-9일 후부터 조건반사와 무조건 반사에 반응하는 정도가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기억력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진 간뇌와 해마 등지에서 신경활성물질의 농도가 높아졌고 대사가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에서는 원지를 달인 물을 투여한 쥐는 뇌세포 보호작용을 보였고 전뇌기저핵 손상으로 유발된 기억력 장애와 행동 실조 반응을 회복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도 건강한 사람들에게 원지를 달인 물을 복용케 한 무작위 이중맹검 임상 연구에서도 원지를 복용한 사람들은 기억력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비슷한 임상연구에서도 원지는 노인들에서 인지능력을 개선시키는 효과를 보였다. 이만하면 원지가 가지는 기억력 개선 효과는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원지가 단순히 정신을 안정시키고 기억력을 증진시키는 효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본초학 서적에 따르면 원지는 몸이 약해져서 심한 기침을 하는 경우에 몸을 보하여 기침이 멎도록 하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가래를 삭이는 효능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원지를 달여서 실험동물에 투여하면 가래를 없애주고 기침을 억제하는 효능이 나타난다. 이러한 거담작용이 있는 원지를 가루로 내어 인후염이 심해서 거의 말을 할 수 없는 경우에 흡입하게 되면 가래가 배출되면서 증상이 나아진다고 옛 의서에 기록되어 있다.
▲ 원지는 남자의 성기능을 높이고 정액이 많아지도록 하는 효능도 있다. | |
또한 남자의 성기능을 높이고 정액이 많아지도록 하는 효능도 있다. 특히 원지의 잎은 정액을 보하고 음기를 보충하며 허약에서 생기는 남성들의 몽정을 치료하는 효능도 발휘한다.
아주 오래된 중국의 본초서를 보면 자중이라고 하는 사람이 오래도록 원지를 복용한 결과 슬하에 37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만큼 원지가 남성들의 정력을 높이고 떨어진 기력을 되찾게 하는 강정 작용이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다.
원지는 한의학적으로 심장의 구멍을 잘 통하게 하여 탁한 혈액이 쌓이지 않도록 하는 효능이 있다. 한의학에서는 심장에 탁한 혈액이 막히면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고 사지가 오그라들며 발광하거나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급기야 정신을 잃는 증상이 나타나는 병리현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런 증상을 개선시키는데도 원지는 효능을 발휘한다. 실험적으로도 원지에는 진정 및 항경련 효능이 있다.
원지를 투여하면 실험동물이 잠자는 시간이 연장되고 약물로 유도된 경련도 멎는 효과가 있다.
▲ 원지는 혈압을 내리는 효능을 가지며 이뇨작용도 가지고 있다. | |
또한 각종 부스럼이나 종기에도 원지는 효과가 있다. 원지가 가지는 쓴 맛은 각종 노폐물이나 독소를 배출하는 효능을 가진다.
그래서 원지는 각종 종기나 곪은 상처 또는 가슴에 생긴 종기 등에 달인 물을 복용하거나 아니면 외용으로 사용해도 치료 효과를 나타낸다.
실험적으로도 원지는 염증을 억제하는 효능이 강하다. 염증이 발생하면 나타나는 종양괴사인자나 인터루킨의 활성을 뚜렷하게 억제하는 효능을 발휘한다. 여기에 세포의 돌연변이를 억제하여 항암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또, 폐렴균이나 이질균 및 그람 양성균과 콜레라균 등의 세균에 대한 항균작용도 가지고 있다.
여기에 혈압을 내리는 효능을 가지며 이뇨작용도 가지고 있다. 항산화 효능도 가지고 있어서 노화를 방지하기도 하는 좋은 약재이다.
원래 가장 오래된 본초서인 신농본초경에는 원지를 인삼과 같이 오래도록 복용하여도 몸에 좋고 절대 해가 없는 상품의 약으로 분류하고 있다.
건망증도 없애주고 노화도 방지하며 성기능도 높여주면서 염증도 없애는 효능이라면 충분히 최고의 보약이라 해도 그릇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 송봉근 교수 프로필
現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한의학 박사)
現 원광대학교 광주한방병원 6내과 과장
中國 중의연구원 광안문 병원 객원연구원
美國 테네시주립의과대학 교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