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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제제분업 신중한 첫 걸음
기사입력  2019/01/30 [22:33] 최종편집    정상연 한의사

한의원에서 모든 제형의 한약제제를 '취급은 무리'

한방의 활성화 한의사한약사약사분업필수요건

정확한 처방전 내리려면 현대의료기기 허용해야

  

 

▲ 정상연 한의사  

한의원에 방문하면 침, , 부항, 물리치료 등과 같은 처치를 받는 것뿐만 아니라 약을 처방받는 경우도 많다. 과거에는 한의원에서 약을 직접 탕전하여 파우치에 담아주는 첩약이 위주였다면 현재는 제약회사에서 미리 제조한 한약을 처방해주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한의사가 직접 조제한 것이 아니라, 제약회사에서 제조한 것을 통틀어 한약제제라 부른다. 한약제제는 한약을 분말건조한 후 물에 타먹을 수 있게 만든 산제(散劑)가 가장 대표적이다. 휴대가 간편하고 유통기한도 길며 맛도 좋아 환자들에게 인기이다.

 

최근에는 산제를 물에 타먹는 것을 귀찮아하는 환자들을 위해 다양한 제형들의 한약제제가 출시되었다. 일반 양약과 마찬가지로 알약으로 된 정제(錠劑)가 있는가 하면, 액상으로 포장되어 쭉 짜먹도록 만든 연조제도 출시되었다.

 

한편 2, 3상 임상시험이 통과된 천연물신약이란 제품도 출시되었고, 한약과 기타 유효성분이 결합된 복합제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또한 과거의 이명래 고약처럼 피부에 직접 펴바르는 제품이나 가글액처럼 구강을 소독하는 용액 등등 한약제제의 형태는 실로 무궁무진하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적당한 제형을 선택하여 처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가령 황련해독탕을 환자에게 경구투여하는 것과 고약으로 피부에 첩부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한의사는 다양한 종류의 한약을 세분화된 제형으로 보유하고서 환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한의사는 한의학의 전문가이지, 한약제제 유통과 재고관리의 전문가가 아니다. 그러다보니 한의원에 충분한 한약제제를 공급받아 관리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고, 환자의 입장에서도 본인에게 적합한 한약제제를 한의원에서 구매하기 어렵게 돼버렸다.

 

▲ 한의사는 한의학의 전문가이지, 한약제제 유통과 재고관리의 전문가가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의사가 한약제제 판매권을 한약사와 약사에게 양보하여 협업하는 것을 정부가 추진 중이다. 일반 양방의원처럼 한의사가 처방전을 교부하면 이를 갖고서 한약국이나 약국에서 약을 수령하는 것이다. 이를 제제한정 한약분업이라 한다.

 

한의사 입장에서는 그동안 손에 꼭 쥐고 있던 한약제제를 한약사, 약사와 나누어 관리한다는 점에서 권리를 빼앗기는 기분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을 되돌아보면 더 이상 한약분업을 미룰 수는 없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모든 한약제제를 비치하여 환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개인 한의원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재고관리나 약을 약 봉투에 담아 설명하는 일련의 과정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인건비를 포함한 추가적인 경비가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국내에는 이미 약의 재고관리와 복약지도를 전문으로 하는 직종인 약사의 수만 해도 37천여명이나 되고, 한약사의 수까지 합치면 약 4만명이 존재하고 있다. 전국 어디서나 약국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그 곳에서 온갖 종류의 약의 관리 및 포장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이미 제약회사에서 상품화되어 나온 약을 한의사가 관리할 수고까지 할 필요는 없다. 한의사는 환자에 맞는 한약제제를 처방전에 기입하여 발행하면, 환자는 약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한약국이나 약국에서 구매하면 된다.

 

이렇게 한의사가 한약제제 취급권을 양보할 때, 환자의 한약제제 접근권이 향상되어 치료율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한약 산업의 활성에도 커다란 도움을 준다. 한약제제를 만들기 위한 약재의 재배와 성분 추출과정 등은 양약과는 달리 외국 제약회사에 의존하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의 상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순전히 한국의 시장에 이익을 가져다준다.

 

▲ 한의사가 한약제제 취급권을 양보할 때, 환자의 한약제제 접근권이 향상되어 치료율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한약 산업의 활성에도 커다란 도움을 준다.   

 

이러한 경제적 이점을 자국 산업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 중국은 지난 2016년 국가 차원에서 전체 의약품 중 한약 기반의 의약품 포션을 30%로 늘리겠다고 정했다. 이로써 자국의 의약산업을 부흥시키고, 세계의 중의약 시장까지 점령하여 막대한 국부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본의 경우도 한약을 활용한 의약품을 개발·생산하고 있으며, 이는 일본 전체 의약품 중 약 10%를 차지한다. 일본 한약제제 선두기업인 쯔므라 제약의 경우 2016년 기준 매출액은 11500억 원이고, 이는 한국 한약재 총 생산액(2004억 원)6배가 넘는 수준이다.

 

걸음마 수준인 한국의 한약제제 시장을 생각해본다면, 더 이상 한의사 단 하나의 직종이 한약제제를 독점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약의 제조와 유통의 전문가인 한약사, 약사와 손을 잡아 한약제제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하여 관련 산업의 부흥을 이끌어야 한다.

 

중국은 지난 2016년 국가 차원에서 전체 의약품 중 한약 기반의 의약품 포션을 30%로 늘리겠다고 정했다.    

 

한편, 한약제제분업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된다. 처방전 발행에 관한 급여기준이 진단명을 토대로 하기 때문이다. 만일 폐렴환자에게 폐렴을 치료하는 한약제제를 처방해야하는데, 진단에 필요한 방사선 기기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한의사는 의무기록에 폐렴 진단명을 기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과 건강보험공단에서 한의사의 폐렴약 처방 행위를 인정해줄 수 있을까? 만약 심평원과 건강보험공단이 급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한의사가 폐렴 한약제제를 계속 처방할 동기가 생길까?

 

따라서 한의사가 환자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에 합당한 한약제제를 처방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으려면,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방해하는 외부압력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검사행위에 관한 국민건강보험 등재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미 유권해석으로 사용이 가능한 혈액검사나 소변검사가 한의원에 널리 보급되지 않은 것은 금전적인 원인이 크다. 검사기기의 구입비용과 검사 부품 및 인력에 관한 비용을 한의사가 오롯이 부담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보건복지부가 법적인 문제가 없는 의료기기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을 긍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앞으로 제한이 풀리는 의료기기에 대해서는 규제철폐와 동시에 보험적용을 이루어졌으면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일선 한의원에서 의료기기를 활용한 진단이 용이해져 한약제제 처방빈도가 대폭 증가할 것이다.

 

한가지 걱정되는 점은 양의사단체의 훼방이다. 물론 여러 가지 체계가 개편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보험재정이 소요될 것이다. 이는 양의사들 주머니에 들어갈 보험금이 줄어들 수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은 양의사가 지불한 돈이 아니다. 모든 국민들이 본인의 월급에서 일정부분을 떼 내어 모은 혈세이다. 따라서 보험금은 양의사를 배불리는 데에 쓰일 것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을 증진하는 곳에 쓰이는 것이 마땅하다.

 

언제나 그랬듯이 본인들의 밥그릇 걱정만으로 한약제제분업에 딴죽을 건다면 국민들의 조소(嘲笑)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모쪼록 한약제제의 분업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아서, 국민건강이 증진되고 한약산업이 커다란 부흥을 이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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