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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불렀더니’ 그는 누구일까?
(POET VIEW) 林 森 지구 반대편의 메아리
기사입력  2019/03/20 [01:09] 최종편집    림삼/시인

 

 

 

 

 

  

 

 

                       ‘지구 반대편의 메아리’

 

 

  

 



 


 林  森

 

  

 야호 -

 하고 부르니

 야호 -

 하고 대답하네

 

외친 소리도 똑같고 울린 소리도 똑같네

 

 누구일까?

 누구일까?

 아하 !

 바로 나구나

 

내가 불렀더니 내가 대답했네

 

나는 누구일까?

또 하나의 나는 누구일까?

 


지구 반대편에 서서

 소리치는 메아리

 그는 누구일까?

 

 

 

 詩作 note

 

 

네 번 째 시집인 ‘지구 반대편의 메아리’에 수록되었던, 책 제목과 같은 제목의 시다. 문제도 답도 명확하지 못하니 조금은 황당한 이야기다. 이 시는 얼추 25년 정도 묵은 셈인데, 그때나 이제나 개인적인 내적 심사가 혼란스럽기도, 외적 여건이 불안스럽기도 매 한 가지로 여겨진다. 어차피 사는 게 고해요, 숨 쉬는 게 고역인지라, 평탄치 않은 삶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으매 낯설 이유도 없지만, 고단하고 버거운 천명이 한결로 못내 한탄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이 또한 필자만의 박복한 이야기가 아니고 세상 모든 이들의 공통된 숙명이려니 하는 마음 있어 슬금 위로는 된다. 맞다. 그렇게 적당히 힘겹고 서러운 삶의 편린들이 모이고 모여 자그마한 행복도 가끔 주는 것이고, 이따금 적선하듯이 웃음과 즐거움의 증거들도 던져주는 맛이 있으니, 우리는 그 맛에 중독되어 하루씩 살아간다. 자신이 살고 있는 정 반대 쪽의 불가해한 어떤 의혹에 호기심과 꿈을 실어 얹은 채, 막연하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내일을 기다린다. 그게 바로 길고 긴 삶의 여정이며, 끝나지 않을 윤회라는 여로의 이름이다.

 

 

 

지난 주말 갑자기, 3월 중순인데 폭설이 내렸다. 필자가 거주하는 강원도에는 곳곳에 무려 15cm에 육박하는 눈이 짧은 시간 동안에 내려 쌓였다. 다른 지방에서는 회오리바람과 강우로 인한 피해와 교통사고가 속출했다는 보도가 넘쳐났다. 절기상이라면 마땅히 완연한 봄내음이 누리에 가득하고, 파릇한 새싹들과 따스한 봄햇살이 지천이어야 하거늘, 졸지에 불어닥친 강풍과 기상이변으로 무능력한 인간 세상에, 대책을 강구하기 벅찬 재앙이 속출한 모양새다.

 

 

 

어차피 대자연의 몽니가 있을 때 마다 그저 하늘만 바라보며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래도 가끔씩 이런 사고가 생길 제면 아무런 방비도 없이 앞만 보고 무작정 질주하는 인간의 속성이 못내 안타깝고 후회막급이다. 눈에 보이는 피해보다도 더 많은 안타까운 내용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을 것이고, 미처 밝혀지지 않은 부분까지 속속 알려지고 나면, 새삼 책임 운운하며 언론은 버릇처럼 또 난리를 칠 것이다. 그리고 늘 반복되는 입에 발린 사과와 대책 마련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공허한 울림의 정부측 발표가 뒤늦게 나올 것이다. 이걸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도 없고, 참으로 허탈하다.

 

 

 

어쩌면 스스로 방비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소시민들에게 다시 엄중한 책임이 돌아올 지도 모른다. 그러면 역시 피해자이면서도 눈치를 보면서 관계 기관의 발표에 목을 빼고 기다려야 하는 영세 농어민을 비롯한, 서민들의 눈물과 한숨만 도처에 넘쳐날 것이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항상 못사는 사람들에게만 과하게 짓눌려지는 압제와 재난이 원망스럽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억울하면 출세를 하라는 우스갯소리처럼 하층민의 서글픈 처지에서 탈출하지 못한 원죄가 있는 것을.

 

 

 

그저 이럴 때는 이웃한 친구나 친지들끼리 서로 의지하고 위로하면서, 격려와 응원으로 난관을 극복하는 것이 제일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작은 것들을 나누며, 없는 사람들에게 양보하는 미덕이나 구호의 손길이 절실하게 요구될 때다. 그리고 그것은 커다란 혜택이나 어마어마한 물량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일상의, 주변의 소소한 관심에 사랑을 담아 베풀면 되는 거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우정과 애정이 밑받침되는 친인들의 만남이야말로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큰 힘과 위로가 될 것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만남의 모습이 이런 것이어야 한다.

 

 

 

친구사이의 만남에는 어떤 여건이나 조건을 막론하고 서로의 메아리를 주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너무 자주 만나게 되면 상호간의 그 무게를 축적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마음의 그림자처럼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좋은 친구일 것이다. 만남에는 그리움이 따라야 한다. 그리움이 따르지 않는 만남은 이내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진정한 만남은 상호간의 눈뜸이다. 영혼의 진동이 없으면 그건 만남이 아니라 한 때의 마주침이다.

 

 

 

그런 만남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끝없이 가꾸고 다스려야 한다. 좋은 친구를 만나려면 먼저 나 자신이 좋은 친구감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친구란 내 부름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도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런 시구가 있다.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사람한테서 하늘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 하늘 냄새를 지닌 사람만이 그런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이런 경험은 없는가? 텃밭에서 이슬이 내려 앉은 애호박을 보았을 때 친구한테 따서 보내주고 싶은 그런 생각 말이다. 혹은 들길이나 산길을 거닐다가 청초하게 피어있는 들꽃과 마주쳤을 때 그 아름다움의 설레임을 친구에게 전해주고 싶은 그런 경험은 없는가? 이런 마음을 지닌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혼의 그림자처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은 친구일 것이다.  좋은 친구는 인생에서 가장 큰 보배이다. 친구를 통해서 삶의 바탕을 가꾸라.”

 

 

 

친구란 이유로 내 곁에 숨 쉬는 친구가 있어서 내가 하루 하루를 살 수 있는 것이고, 오늘이 즐거운 건 우정이라는 뜰에 친구라는 나무가 따가운 세상의 햇살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죽을만큼 힘들어도 내가 살 수 있는 이유는 내 옆에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 곁에 있는 친구에게 모처럼 속내를 고백해보자. “고맙다. 내 소중한 친구야. 천국은 연인끼리 가는 거고 지옥은 친구랑 가는 거래. 친구는 모든 어려움도 함께 할 수 있기에...

 

 

 

친구야. 눈물이 나고 외로운 날에 아무도 널 몰라줘도 내가 항상 너의 옆에 있음을 기억해.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이 흐르면 변하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어. 그건 너에 대한 나의 우정이야.” 진정한 사랑은 삶 그 자체다. 사랑은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환상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환상은 언제나 삶을 멀리하게 하고 이성을 마비시키며, 현명한 사람들의 냉철한 정신을 흐리멍텅하게 만들어놓고 떠나가는 연기와 같다.

 

 

 

따라서 우리가 전정한 삶으로서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다. 삶이 고되고 힘겨울지라도 그 자체로서 사랑을 받아들이고 함께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우리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인간의 삶은 언제 어디서 어떠한 불행이 닥쳐올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것은 서로가 어떤 삶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자세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의 작은 것까지, 모두 아름다움의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노래한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사랑하고, 너무 많은 사람을 욕심내는 것 같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벅찬 일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인생은 문제의 시작과 끝을 되풀이하며 종착역에 이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의 골짜기를 지날 때도 험악한 바위 틈에 피어오른 한 송이 꽃을 볼 수 있음이 삶의 비밀이기도 하다.

 

 

 

그리웠던 곳에서, 보고 싶었던 사람을 마주보면 마음이 마냥 푸근해진다. 사람이 행복한 것은  그리운 곳과 보고 싶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내어줄지 모르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이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함으로써 자신이 자신다울 수 있었다면 그 사랑은 참사랑일 것이다. 어느 누구를 만나든지, 좋아하게 되든지, 친구가 되어도 진정 아름다운 우정으로 남고 싶다면 아무것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

 

 

 

그냥 나의 친구가 되었으므로 그 사실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어쩌다 나를 모질게 떠나간다 해도 그를 원망해서는 안 된다. 친구가 내 곁에 머무는 동안 내게 준 우정으로, 내게 준 기쁨으로, 내게 준 즐거움으로, 내게 준 든든한 마음으로, 그냥 기뻐하면 된다. 진정한 우정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 아름다워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가까이 느껴져야 한다. 보이는 것으로만 평가되는 이 세상에서, 보이지 않지만 서로 서로 마음을 맡기며 서로에게 마음의 의지가 되는 참 좋은 친구, 우리들에게 그런 만남이 많아졌으면 참 좋겠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순간은 짧다. 그 짧은 순간에 소원을 빌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바로 소원을 항상 가슴 속에 담고 있어야 하는 거다. 순간순간 생각나는 소원은 소원이 아니라 자신의 모자람을 보상받으려는 욕심에 불과하다. 그러니 소원 하나 쯤은 항상 가슴에 품도록 노력해보자. 간절히 바라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던가? 행운이란, 혹은 기회란 너무나 찰라적인 순간에 우리 곁에 다가서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그 행운을, 또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내 것으로 만들려면 늘 준비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으르고 나태함으로 무엇인가를 바란다는 것은, 부지런히 노동하는 이들의 것을 간접적으로 빼앗는, 정당하지 못한 처사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조금 비약이 된 듯도 싶기는 하지만, 무언가를 소원할 수 있는 자격 조건? 그 쯤으로 이해하는 게 나을 듯 하다. 좋은 친구를 만든다는 사실도 언제나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자연스럽게 결과적으로 이루어지는 자연 현상과 비슷하다는 말이다.

 

 

 

미국의 작가 ‘찰리 쉬드’가 결혼하는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필! 내가 살던 마을엔 두 개의 강이 합친단다. 너와 아내 될 ‘마릴린’을 강 언덕 위로 데려가 두 강이 만나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거기서 보면 두 강이 합치기 전에는 점잖게 흐르다가 합쳐질 때는 격노하게 합친단다. 큰 소용돌이가 생기며 마치 상대를 없애겠다고 결심한 것처럼 서로 맹렬히 공격하는 것 같다. 잠시 후 두 물결은 합치면서 이런 인사를 하는 것 같단다. ‘자! 이제부턴 함께 가요. 우리 앞엔 무언가 더 좋은 게 있을 거예요.’

 

 

 

그때 하류를 내려다보았지. 언제 다툼이 있었느냐는 의심이 들 정도로 강은 넓고 평온해져 있었단다. 결혼도 두 강줄기가 만나 소용돌이친 후 화해하는 것과 같단다. 두 개성이 만나면 서로의 개성과 습관이 상좌를 차지하려고 다툴 것이다. 때로 물거품을 남기며 너희를 숨 막히게 할지도 모른다. 그때 ‘사랑은 과연 어디 갔느냐?’는 반문이 들 수 있지만 항상 먼저 화해를 청하는 것을 잊지 말아라.”

 

 

 

불행은 가장 행복한 때를 노리고 스며든다. 결혼은 두 인격의 연합을 통해 최대의 행복을 주지만 최대의 고뇌도 겪게 한다. 결혼은 지상에서 천국과 지옥을 가장 가깝게 맛보게 한다. 애정으로 친밀해진 순간은 천국과 같고, 다툼으로 얼룩진 순간은 지옥과 같다. 결국 결혼생활의 성패는 다툼을 다루는 능력에 달려 있다. 어떤 사람은 부부싸움이 생기면 “우리 사이에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나?” 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런 일은 있다. 주종관계가 아니라면 서로는 서로에게 반대할 수 있는 특권을 주어야 한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해하면 화해할 수 있다. 사람은 다 부족하다. 뒤돌아보고 되돌아보면 전혀 큰 소리 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나 자신이다. 다툼은 충격 받을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 해결을 위한 고동소리다. 추위가 닥쳐야 소나무의 절개를 아는 것처럼 부부간의 다툼은 서로에 대한 연모의 정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고, 인생의 안목을 넓히는 기회도 된다.

 

 

 

항상 대낮처럼 밝은 곳에서만 살면 밤의 신비한 세계를 알지 못하는 미숙한 인생이 된다. 때로 다툼이 있어도 화해를 앞세우면 삶의 본 줄기는 넓어지고 부부간의 친밀함은 더 깊어진다.  진정한 화해에는 ‘다투었던 사람과의 화해’도 필요하지만 ‘다투었던 기억과의 결별’도 필요하다. 다투었던 일에 대한 비상한 기억력은 영혼을 추락시킨다. 과거의 상처를 다리 아래 물처럼 기억의 샘에서 떠내려 보내자. 과거의 불행에 무관심해야 미래의 행복은 내게 관심을 표한다. 화해란 다툼의 가능성을 긍정하고, 그 다툼을 잘 극복하며, 다툼으로 생긴 마음의 상처까지 영원히 잊는 것을 뜻한다.

 

 

 

모든 상처에는 흉터가 남는다. 그 흉터는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훈장이 될 수도 있고, 숨기고 싶은 창피한 흔적이 될 수도 있다. 필자의 조카아이는 어릴 때 심장수술을 받았다. 조카아이는 그 흉터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어느 날 우울해하는 아이를 꼭 안으며 말해주었다. “그 흉터는 바로 네가 큰 병을 이겨냈다는 징표란다. 어린 나이에 그 큰 수술을 견뎌내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어. 그래서 난 네 흉터가 오히려 자랑스럽단다.”

 

 

 

사람들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먼 여행을 끝내고 도착역에서 당신이 걸어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절망과 좌절에서 걸어나오기를, 미움과 증오에서 걸어나오기를, 불평과 불만에서 걸어나오기를, 열등감과 편협함에서 걸어나오기를, 수치심과 두려움에서 걸어나오기를, 우울과 무력감에서 걸어나오기를, 부정적인 생각과 허무에서 걸어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문은 안으로 잠겨 있기에 사람들이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걸어나오는 일은 당신이 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로부터 걸어나오기 때문이고, 우리의 마음이 늘 설레는 것은 걸어나오는 이야기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미루고 기대하면서 마음을 조아리고 있기 보다,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면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교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하듯, 부부 사이나, 친구 사이나,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작은 상처 쯤 감내하면서 먼저 다가서는 노력과, 먼저 걸어나가는 용기가 필요한 덕목이다.

 

 

 

이름 없는 들꽃을 피우는 하늘처럼,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자. 딱정벌레를 키우는 숲처럼, 그렇게 그윽한 마음으로 살자. 엉겅퀴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키우는 여유있고 넉넉한 숲의 마음으로 살자. 숲을 키우는 하늘처럼, 그렇게 높은 마음으로 살자. 해초에게 춤을 가르치는 바다처럼 그렇게 즐겁게 살자. 자주 듣는 이야기인데 주변에는 성형후유증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예전에는 여자들의 몫이었는데 요즘은 남자들에게까지 전염이 되었다 한다.

 

 

 

그런데 성형후유증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에는, 자기 자신을 당당하게 바라봐 주고 애정어린 마음으로 다독이면, 그런 거 없을 거라 생각한다. 문제는 스스로가 느끼는 결핍과 불만이다. 무언가 부족함의 잘못된 자아와 욕구가 합쳐져 스스로를 채근하고 망치게 만드는 요인이 되어지는 것이다. 사실 언제나 기꺼운 마음으로 임하면 외모보다는 내면의 충실함이 즐겁고, 주변이웃들과 친구들에게 따뜻한 마음의 손길로, 애쓰는 변화의 느낌을 어루만져 주려 하면, 무겁고 고달픈 성형의 후유증조차 새 털처럼 가벼워질 거라 생각한다.

 

 

 

서로 한 번씩만 더 바라 봐 주면 그런 맘이 절로 들지 않을까?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해서 성형후유증도 최소화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먼저 스스로 지니면 좋겠다. 모처럼 큰 맘 먹고, 큰 돈 들여 한 건데 말이다. 가능하면 많이 웃으면서, 생활의 촉박함으로 인해 쉽사리 시도하지 못했던 일생일대의 도박이었으니 크게 만족치는 않더라도 스스로 만족하고자 하는 지족의 마음을 갖는 것이 가장 먼저 요구되는 요소다.

 

 

 

겨울에는 씨앗을 뿌리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싹이 트지 않기 때문이다. 무릇 세상 사람들은 주변 환경을 파악하지도 않은 채 본인의 계획을 추진하기에만 급급하다. 또한 세상 사람들은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지도 않은 채 자신의 정당성만을 과감하게 교육하려 든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머리에서 나온 논리를 가슴이라는 토지에 억지로 심으려고 고집만 부린다. 왜 상대가 변하지 않는지, 왜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지에 대해서 근원적인 해결책을 강구하기 보다는 짜증만 일삼고 살아간다. 참으로 어리석기만 하다.

 

 

 

세상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땅을 먼저 녹인 후에 씨앗을 심자. 자신이 아무리 똑똑하고 훌륭하더라도 순리를 외면하면 나중에 주변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 분명 이 세상은 나의 욕망과 자존심을 채워주는 어리석은 도구가 아님을 오늘이라도 깨우쳐야 한다. 씨앗을 뿌려 열매를 따고 싶으면 먼저 따뜻한 사랑으로 훈훈한 바람을 일으키자. 합리적인 논리로 공격하기 전에 땀 배인 손으로 메마른 손 잡아주자.

 

 

 

직책의 권위로 명령하기 이전에 상대방의 부족함과 약점을 남모르게 함께 아파하자. 분명 가슴이 변해야 사람이 변하고, 사람이 변해야 모든 일이 이루어지게 된다. 가슴은 무한히 넓고 머리는 지극히 좁다. 가슴은 무한히 크고 머리는 너무나도 작다. 작은 것으로 큰 것을 공격하지 말자. 나중에 크게 다친다. 사람은 사랑으로 크고 사랑으로 작아진다. 사회생활, 그리고 인간관계를 하면서 머리, 즉 이성만으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람의 마음이다. 그 마음이란 것이 참으로 섬세하고 미묘해서 아무리 정당한 논리로 다가서도 다가서지지 않을 때가 너무도 많다. 때론 오히려 묵직한 거부감으로 하여 의도하지 않았던 쪽으로 움직여지기 일쑤다.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마음이다. 사랑이 담긴 마음, 어쩌면 처세의 기본일지도 모르겠다. 다스림의 기본 또한 맑고 투명한 마음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주변을 살피는 날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세월은 흐르기 마련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어떤 사건 사고들이 뒤꼭지를 잡아도 계절은 변화하기 마련이다. 자신에게 닥쳐온 현실에 전전긍긍하고, 아등바등하면서 헤쳐나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요란을 떨어도, 알지 못하는 저 지구 반대편에서는 고요하고 자연스러운 침묵의 메아리가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설사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이 고통일지라도, 비단 지금 내게 부여된 삶의 책무가 괴로움일지라도, 아직은 열어보지 못한 내일의 상자가, 소망이라는, 꿈이라는 명찰을 붙인 상자의 뚜껑이 앞에 놓여 있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아직은 포기하지 않고 조심스레, 살그머니 내일을 열어간다. 지금은 새로운 시작, 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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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통신대
 
 
 
 
<은행>
* 한국은행 * 국민은행 * 우리은행
* 신한은행 * 하나은행 * 외환은행
* 기업은행 * 씨티은행 * 제일은행
* *HSBC * 경남은행 * 대구은행
* 광주은행 * 부산은행 * 전북은행
* 제주은행 * 농협 * 수협
* 신협 * 새마을 * 우체국
* 산업은행
<카드사>
* 비씨카드 * 삼성카드 * 현대카드
* 롯데카드 * 국민카드 * 우리카드
* 신한카드 * 농협 * 씨티카드
 
 
 
 
* 서울대병원 * 연세대세브란스
* 고려대의료원 * 삼성서울병원
* 삼성의료원 * 경희의료원
* 한양대병원 * 인제대백병원
* 가톨릭중앙의료원 * 이화여자대의료원
* 하나로의료재단 * 서울적십자병원
* 원자력병원 * 한국산재의료원
* 차병원
 
 
 
 
* 로엔 * SM * YG
* JYP * B2M * CCM
* YMC * DSP * GYM
* 큐브 * 스타십 * 빅히트
* 울림 * 티에스 * 티오피
* 젤리피쉬 * 스타제국 * 플레디스
* 엠에스팀 * 페이스엔 * 벨액터스
* 쟈니스 * IOK * 쇼브라더스
 
 
 
 
* CJE&M * 인디스토리
* 쇼박스 * 데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