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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특집> 양은진 ‘잔소리가 키운 사형제’
기사입력  2019/05/13 [00:48] 최종편집    시인 양은진

어릴 적 매사 엄하게 단도리 하신 부친!

 

▲ 양은진 칼럼니스트  

몇 해 사이 부쩍 어깨가 굽고 움직임이 둔해지신 아빠를 보노라면 자꾸 어린 시절이 되돌아봐지고, 그 안에서 아빠의 흔적을 찾아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어릴 적 매사에 엄하게 가르치고 단도리 하셨던 아버지는 당시 동네에서 호랑이 선생님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학교에서도 무서운 선생님이셨고, 집에서는 더 무서운 아버지였다.

 

내가 내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배우고 알게 된 민주적 육아와 교육과는 완전히 다르게 자란 것이다. 실수하거나 못하는 것에는 모질게 혼이 났고, 철들지 않은 아이다운 행동에는 매를 맞기도 했으며, 칭찬에 인색하셨다.

 

완벽한 부모가 없기에 완벽한 사람이 없다는 말처럼, 우리 부모님도 완벽하지 못했지만, 볼 때마다 하시던 잔소리는 우리 형제들을 고루 둥글고 쓸모 있는 사회인으로 자라게 했다.

 

착실한 모범생으로 학창시절 상장을 꽤나 많이 받았지만 칭찬을 받은 기억은 없다. 대신 명절 날 친척들 모이는 자리이거나 동네 어른들 모이시는 자리에서면 어김없이 이어지는 내 상장과 성적 자랑들. 나는 그렇게 아빠가 나를 자랑스러워하신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누가 말하지 않았어도 어린 나도 느낄 수 있었던 억압적이었던 집안 분위기 그것은 장유유서 그 이상이었다. 가족들이 식탁에 앉기 전에 꼭 아버지에게 진지 잡수세요라고 알려드리는 것은 우리 4형제의 경쟁 놀이 중 하나였다.

 

▲ 어릴 적 매사에 엄하게 가르치고 단도리 하셨던 아버지는 당시 동네에서 호랑이 선생님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학교에서도 무서운 선생님이셨고, 집에서는 더 무서운 아버지였다.   

 

누가 가장 적당한 때에 아빠에게 공손하게 그 사실을 알리는가 하는 당시 참으로 중요했던 일이었다. 또 학교에 다녀와서 엄마가 준비해준 문제집을 풀어놓고, 동네 친구들과 놀다가도 아빠가 퇴근하실 그 무렵이면 일사천리로 신발정리부터 장난감 상자 정리까지 각자의 업무가 정해져 있었다.

 

어떤 일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내가 선택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중학교에 가서 어떤 과목을 얼마만큼 공부하고 어떤 순서로 과목별 학습을 할 것인지를 내가 결정해야했던 것이 좋아서 공부가 좋았다고, 더해서 그 성취감으로 친구들과 선생님께 인정받는 것이 좋아서 사춘기의 방향을 그런 방향으로 풀어냈지 못한 것이었다.

 

밖에서는 인사를 잘 한다고 동네 어른들에게 칭찬을 받았는데, 골목 공터에서 놀고 있다가도 왔다 갔다 하시던 어른들을 뵐 때마다 횟수만큼 공손하게 인사를 드렸기에 방금 인사를 받고 돌아서서 또 인사를 받는 어른들이 뭔 인사를 볼 때마다 하느냐며 오히려 당황해하셨던 기억이 난다. 난 그렇게 배웠는데...

 

세상 일이 맘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신기하게도 공부하란 말씀은 자라면서 들어본 기억이 없지만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것만큼은 엄하셨다. 그리고 눈을 감고 일어나는 우리에게 매일 신문을 펼쳐보시며 서울 도서관에 새벽녘부터 줄을 몇 미터 섰는지를 말씀하셨다.

 

우이독경이었던 그 말이 어느 날부터 귀에 새겨지고, 시골을 떠나 고등학교 시절에는 부모님이 안 계셔도 등교시간에 맞춰 스스로 일어나곤 했다.

 

 

그렇게 바라던 칭찬 섞인 아빠의 다정한 모습인데, 나는 청개구리처럼 예전의 꼿꼿하게 고집스러운 아빠가 그리워진 것이다. 아빠 건강하게 좀 더 오래 사세요. 당신의 잔소리를 더 들을 수 있도록.      


철들고 나서부터 들었던 잔소리는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는 것이 걱정된다.”는 전반부 경구는 조금씩 달라도 매번 같은 끝맺음은 세상 일이 맘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란 말씀이었는데, 뭐든 할 수 있었던 20대부터 왕성한 활동을 하던 30대까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긍정의 힘이란 책이 한참 읽히던 시절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노력해도 어려울 때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내신 교육자가 되어서는 부정적으로 결론을 맺으시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긴 연애가 결혼으로 바뀌어 남편의 무관심 속에서 육아와 일을 겸하는 어려운 시간을 보내면서 결혼 전까지 수없이 들었던 그 말이 화두처럼 수시로 떠올랐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듣게 된 법률스님의 강의에서 그 말의 정확한 뜻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네가 맘먹는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닐 만큼 힘든 것이다란 뜻이라기보다 가까이에는 가족과 지인 혹은 시스템과 사회현상에 대해 내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바꾸려 하지 말고, 물처럼 흐르게 두는 것이 살아가는 방법일 수 있음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나를 바꾸는 것도 어려운데 오랜 시간 그 사람의 틀 안에서 살아온 것을 다른 틀로 바꾸는 것은 곱절로 어려운 일임이 분명하고 나도 바꾸지 못하고 상대도 바꾸지 못한다면, 흐르는 대로 물처럼 살 것을 우회적으로 주문하는 가르침을.

 

작년 가을 적적하시는 아빠를 모시고 근처 공원으로 단풍놀이를 단둘이 다녀왔다. 어렸을 때 네가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며, 참 많이 예뻐했노라 불쑥 고백하시는 모습에 돌아보지 못하고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바라던 칭찬 섞인 아빠의 다정한 모습인데, 나는 청개구리처럼 예전의 꼿꼿하게 고집스러운 아빠가 그리워진 것이다. 아빠 건강하게 좀 더 오래 사세요. 당신의 잔소리를 더 들을 수 있도록.

 

 

■ 프로필

2012년 예술세계 등단
현) 안양 샘병원 치과의사
대한여자치과의사협 이사
10기 EBS 스토리기자
yeji3929@daum.net
https://blog.naver.com/yeji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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