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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전쟁터…따뜻한 목소리만 들어도”
<가정의 달 특집> 정선모 ‘엄마를 기억하다’
기사입력  2019/05/14 [23:10] 최종편집    정선모 수필가

 

▲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신지 어느새 3년이 지났다. 96세까지 사셨는데 나는 한 번도 엄마가 오래 사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 언제 어디서나 내편이 되어주고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신지 어느새 3년이 지났다. 96세까지 사셨는데 나는 한 번도 엄마가 오래 사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아무리 연세가 많으셔도 우리 부모님은 언제까지나 내 곁에 계실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한 믿음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엄청난 힘을 준다. 언제 어디서나 내편이 되어주고, 아무리 나이 들어 힘이 빠져도 늘 나의 울타리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터 같은 삶의 현장에서 돌아와 나를 반겨주는 엄마의 따뜻한 목소리만 들어도 고단한 심신이 풀어지고 아늑함을 느끼며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 받는 것이다.

 

정성이 가득 담긴 엄마가 해준 밥 한 끼의 위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독립을 위치며 집을 떠난 젊은이들이 혼밥에 지쳐, 갈수록 집밥을 그리워하는 것은 바로 엄마의 체온과 그것이 주는 에너지를 느끼고 싶은 것이리라.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었다. 편히 이승을 떠나실 수 있도록 되도록 차분하게 장례 절차를 진행하자고. 그런데 문상 온 지인의 한 마디가 나를 무너뜨렸다.

 

이제 고아가 되었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꽁꽁 얼어붙은 허허벌판에 달랑 나 혼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왈칵 밀려들며 그동안 애써 참았던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60이 넘어 고아가 되었는데도 그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의 막막함을 어떻게 표현할까?

 

지금도 그 단어를 들으면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어 중에 가장 쓸쓸한 단어가 바로 고아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꼈고, 그 어떤 존재보다 이 세상의 모든 고아가 가장 가여운 존재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인식한 순간이었다. 겪어보지 않으면 남의 아픔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내게 등을 돌려도 내편이 되어줄 사람이 단 한 사람만이라도 있으면 그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영원히 내편이 되어줄 사람은 바로 엄마다. 그 내편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그날 나를 무너지게 한 것이었다.

   

▲ 어떤 상황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도전하는 우리 자매의 성격이 엄마를 닮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곤 한다    

 

     참으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분

    

우리 엄마는 참으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분이셨다. 결혼하자마자 미국으로 이민 간 막내 여동생을 도와주러 꽤 오랫동안 미국에서 지내시는 동안 세계 각국을 동생과 함께 여행하기도 했다. 처음 외국여행에 엄마를 모시고 갈 때 동생은 식사가 입에 안 맞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러나 그건 기우였다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되었다.

 

어느 나라에 가든 현지식도 즐겨 드시고, 한국말과 바디 랭귀지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도 하는 엄마의 모습을 동생은 깔깔거리며 전해주곤 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독일 사람에게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물을 때도, 이탈리아 사람에게 음식을 더 달라고 할 때도 어떻게든 소통하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며 동생은 엄마에게 배울 게 정말 많다고 감탄을 했다.

 

그때마다 어떤 상황에 부딪치더라도 주저하지 않고 도전하는 우리 자매의 성격이 엄마를 닮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곤 한다.

 

내가 스무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무런 대책 없이 남겨진 오남매를 먹여 살리며 공부시켜야 하는 것은 오로지 엄마 몫이었다. 당시 엄마에게 얹힌 삶의 무게는 얼마나 감당하기 힘들었을 까.

 

그래도 난 엄마가 절망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늘 씩씩하게 삶을 개척해나가셨다.

 

조용조용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하고, 예쁜 꽃을 가꾸는 것도 좋아하는 엄마가 우리를 이끌고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기죽지 않고 살아냈던 모습을 떠올리면 마치 투사와도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면 없던 능력도 저절로 생긴다는 것을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지금도 동생과 만나면 엄마가 우리에게 준 크나큰 유산에 대해 말하곤 한다. 강인한 정신력과 생활력, 그리고 어떤 상황과 맞닥뜨려도 거뜬히 이겨내는 자신감과 도전정신을 엄마에게 배울 수 있어 감사하다고. 그건 어떤 값을 치러도 얻을 수 없는 거라고.

 

여자도 생활능력을 길러야 한다며 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배우고, 일하라고 독려하신 덕분에 우리 자매는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그 안에서 얻는 보람과 즐거움을 함께 나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우리는 일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생전에 유난히 부지런하셔서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무슨 일이든 찾아내어 하신 것이 엄마의 건강 비결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영향으로 지금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두려움이 없고, 홀로 여행을 떠나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 그러한 자세가 나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어주는지 모른다.

 

엄마가 내 엄마라서 참 고마워요!

 

지금 내 방엔 엄마의 사진이 걸려있다. 몇 년 전 5, 어버이날을 맞아 온가족이 엄마를 모시고 서울 근교에서 하룻밤 묵고 온 적이 있다. 엄마와 우리 부부, 아들딸, 며느리와 손주까지 4대가 함께한 여행이었다.

 

엄마의 가장 화사한 모습을 남기고 싶다는 나의 요청에 아들은 작정하고 카메라를 준비하여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평소에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하던 엄마는 사진의 용도를 아셨을 텐데도 그날은 흔쾌히 촬영에 응하셨다.

 

우리와 함께 여행 온 기분을 표현해보라는 나의 주문에 환하게 웃으셨다. 손주를 둔 내가 엄마를 웃게 하려고 있는 재롱, 없는 재롱을 다 부렸다. 그 모습을 보며 엄마는 소리 내어 웃으셨다.

 

주변에 활짝 핀 꽃보다 더 화사한 모습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 순간이 이렇게 남아 있어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준다. 사는 것이 녹록치 않으셨을 텐데도 사진 속 엄마의 표정에는 그런 티가 하나도 없다, 그저 곱디. 고운 모습이다.

 

돌아가시기 전 병원에 두어 달 입원하셨을 때, 틈만 나면 달려가 엄마의 온몸을 쓰다듬으며 평생 하지 못한 말을 실컷 했다. 하고, 하고 또 했다. 곧 세상을 떠나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가 내 엄마라서 참 고마워요.”

엄마, 사랑해요.”

내가 엄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지요?”

혹시 내가 엄마를 서운하게 해드린 게 있다면 모두 용서해주세요. 잘못했어요.”

 

따듯한 물로 손을 씻은 후 온몸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엄마의 가슴은 여전히 따뜻했고, 엄마의 등은 여전히 보드다웠다. 엄마의 손이 처음부터 그렇게 작았는지, 손가락 관절이 왜 그렇게 불거졌는지 묻고 또 물었다.

 

의식이 없을 때인데도 내 발자국 소리를,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는 것을 느꼈다. 손을 잡으면 희미하게 움직이려는 느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엄마를 보내드렸다. 그런데 정말 보내드린 것은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내 곁에 계시다. 시시때때로 나를 바라보고, 언제나 자랑스러워하시는 표정으로 나를 응원하고 계신다. 그 힘으로 나는 지금도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다.

      

정선모 프로필 / 도서출판 SUN 대표,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수상>한국수필문학상(2003) 신곡문학상(2013) 한국산문문학상(2014) 현대수필문학상(2019) <수필집> 빛으로 여는 길, 지휘자의 왼손, 바람의 선물, 너를 위한 노래<수필선집> 아버지의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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