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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자궁에서 새 아기별 탄생하고”
(POET VIEW) 林 森 별의 추억
기사입력  2019/05/14 [23:58] 최종편집    림삼 /시인

 

 

 

  

 

 

 

별의 추억

 

 

 

 

▲ pixabay.com     





 林  森

 

 

별 뜰 시간인데 아직 하늘은 어두워,

별이 없네

 

언제부터 저렇게 하늘 시커멓게 변했나?

별은 언제부터 사라졌나?

애초 별 본 적은 있나?

 

밤새도록 별 뜨지 않으면

난 이제 무엇을 올려다볼까?

우주 자궁에서 새 아기별 탄생하고

그리 생성된 별

요람에서 흔들리며 자라나

내게 다시금 빛 주어

 

주렁주렁 매달린 고뇌 소멸시켜주긴 할까?

 

-

침착해야지

저절로 그냥 잘되는 일 있으면

그건 내 인생이 아니지

 

어차피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하지만

정말 잊혀져야 하는 상처는

절대 절대 잊혀지지 않는 법,

자꾸만 살아나는 생각으로 인해

나는 깊이 절망한다

 

그러나 나는 이제 온전히 이해한다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모든 인생에 대해서,

모든 사랑에 대해서,

모든 별들의 추억에 대해서,

 

모든 내가 알지 못하는

새들의 이름에 대해서까지도

 

 

詩作 note

추억의 사전적 의미는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 또는 그런 생각이나 일이다. 요지는 머리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생각은 우리가 살아서 숨 쉬는 한 가장 자연스러운 사람의 일이다. 그 생각이라는 것은 비단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까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사람의 운명이며 삶의 본질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라고 해서 모두 생각에서 멀어져 잊혀져야 하는 건 아니다. 지나간 과거로 인해 현재의 삶이 이어져 올 수 있었으며, 그것이 또한 이어져 가면 미래로 나아가는 지침이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을 기준으로 보면 방금 전의 시간도 과거에 속한다. 비록 순간적인 시간이 흘렀음에 불과하지만 그 역시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기 때문이다. 과거는 누가 뭐래도 생각 속에 살아있어야 할 현실의 어머니다. 우리가 과거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과거의 진실을 묻어버리고 새로운 진리가 태동될 수 없음은 고금동서를 불문한 불변의 이치다. 보잘 것 없고 바람직하지 않은 과거지사라고 해도 가르침이 숨어있고, 깨달아 익혀야 하는 진리가 깃들어있다는 생각으로 추억 자체를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다.

 

생각의 범주를 무한대로 팽창하다보니 이른바 생각의 자유가 나래를 편다. 그러다보니 어울리지도 않는 생각의 한도까지 넓혀보게 되는데, 작금의 국제 정세나 국가의 상황을 보게 되면서는 절로 한숨이 나온다. 어쩌지 못하는 세월의 굴레 속에서 마치 떠밀리듯이 사후약방문으로 제시되는 정책이나, 아무런 효용가치도 없는 당국의 대책들을 대하노라면 그저 한심하다는 생각밖에는 안 든다. 격변하는 주변국들의 상황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이리 저리 쪽배마냥 흔들리면서, 마치 엄청난 치적을 쌓아가고 있다는 듯이 호기를 부리는 지도자들의 행태도 안타깝기는 매 한 가지다. 어쩌면 이렇게도 무능력하고 무기력할 수 있단 말인가?

 

정책을 수립하여 국민을 다스린다는 행정기관의 사람들이나, 국민의 대표라고 허세를 부리며 꼴사나운 정쟁에만 심취해 있는 입법기관의 사람들, 공정사회를 표방하면서 뒤로는 더러운 짓을 일삼고 있는 사법기관의 사람들, 그리고 다른 분야에 속해 있지만 그 밥에 그 나물로 한 통속인 모든 사회 지도층의 사람들, 어쩌면 이렇게 과거의 기억을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그대로 답습하고 모방하며, 마치 우리가 알고 있는 아바타나 데자뷰의 표준을 보여주는 것처럼 애를 쓰고 있는 그 모습들이 실로 가당치도 않다.

 

그러면서 무슨 과거 잔존하는 구태의 청산이며, 새로운 세대로 나아가는 혁명의 촛불이라고 하는 건지, 참으로 애석하고 통탄할 일이다. 흔들리는 이 시대의 서민들을 위한 진정한 참정치는 정말 요원하기만 한 건가? 하늘을 우러르며 눈물 짓는 오늘이다. 필자는 우매하여 어느 것이 정의이며 불법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일반 서민들이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국가가 좋은 국가라는 것 쯤은 안다. 그래서 단 하루라도 그런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은 거다. 과연 이 소박한 염원조차도 너무 지나친 바램인 건가?

 

대한민국의 고용률은 OECD 내에서도 꽤나 높은 편에 속하지만 실제를 따져보면 많이 다르다. 고용 인구에 포함되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실로 안타까운 수준이다. 취업 포기자, 단기 아르바이트, 공무원 준비생, 자영업자 등 오랜 기간 취업하지 않은 사람까지 고용에 포함을 시키니 당연히 보여지는 수치는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기고 들여다보는 현실은 한 마디로 시궁창이다. 특히 퇴직 시기가 빨라지면서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할 게 없으니, 너나 할 것 없이 자영업을 손대고 있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자영업자들이 많아지면 경쟁이 치열해진다. 바로 건너에 치킨 가게, 피자 가게가 있으니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게 자영업 시장이 무너지면서 형식적인 채용 인구로 전락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실제적인 소득을 올리지 못하는 그들로서는 채용이 절실하다. 또한 수명이 연장되면서 노인 인구가 증가했다. 그런데 그들을 수용할 만한 일자리가 많지 않은 게 오늘날의 당면한 현실이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도 정부에서는 늘 체감과는 동떨어진 통계수치를 발표하면서 계속적으로 희망에 찬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여 희망고문을 이어간다.

 

그렇다면 정부가 추구하는 공정한 사회 실현은 과연 가능할까? 그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사회 실현의 얼굴이지만, 아무도 실현 가능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정치, 경제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뿌리 깊다는 걸 의미한다. 국민의 이러한 불신을 해소하는 방법은 말 뿐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결과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눈 앞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변화를 보여주어야만 국민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아주 간단하고도 당연한 논리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간단한 일은 대한민국의 역대 지도자 중 누구도 실현하지 못했던 일이다. 역사적으로 되돌아보면 말 뿐인 지도자, 대안 없이 이상주의적인 지도자, 독재 지도자, 경제 파탄 지도자가 있을 뿐이다. 어느 누구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칭찬받아 마땅한 인물로 꼽히지 못했다. 지금의 지도자도 마찬가지다. 작금의 진행되는 국내외 정세를 지켜보자니, 어쩌면 독불장군 식으로 엉뚱한 자신만의 상상에 사로잡혀 헛다리를 짚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과연 지금 지도자의 행보가 국민을 진정으로 위하고, 민심을 제대로 살피는 행보인지 의문이 든다. 밖으로만 돌아치며 가시적인 성과만을 추구하며 치적을 쌓아간다고 꼬인 실타래가 풀릴 리도 없고, 팔만 힘차게 휘두른다고 주변국들이 자신의 바람대로 따라줄 리도 만무하다. 그런데도 무언가에 몰두하여, 마치 본인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푸는 능력자로 착각을 하면서 외골수적인 행보를 이어가는 걸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국민들은 심한 갈등에 빠져있다. 지금이라도 다시 한 번 이제까지의 행적을 되돌아보고, 결코 지금처럼 오만해서는 안 되며, 더욱 겸손하고 겸허한 자세로 정신 바짝 차리고, 진심으로 국가의 미래를 위한 포석을 두어야 한다는 심각한 과제를 고민해보길 바랄 뿐이다.

 

허기사 정치나 국제 정세 쪽으로는 쥐뿔도 모르고 세태를 읽어내는 식견마저 천박한 주제에,수 많은 지지자들과 광팬들의 응원을 뒤에 업고 오늘도 불철주야 세계 만방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허리띠를 졸라매시는 훌륭하신 지도자의 거취에 감 놔라 배 놔라 참견하는 것 자체가 꼴불견이고 코메디다. 우리같은 소시민이 목소리 높여 뒷전에서 와와 댄다고 나라 꼴이 순식간에 활짝 피어날 리도 없으며, 더구나 가뜩이나 심란한데 혼란일랑 더욱 부추겨 국론을 분열시킬 소지만 슬금슬금 생겨나니, 이 쯤에서 무식한 필자는 입을 닥치겠다.

 

그리고 부족한 개인 소양이나 좀 더 닦고, 모자란 인격이나 조심 조심 쌓아봐야겠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했겠다. 개인과 가정의 정의부터 일단 바로 세우고, 그 후에 자신감이 좀 더 쌓이고 나면, 국가를 향한 쓴 소리를 제대로 마음먹고 해보기로 하자. 그러니 그 때까지는 장님, 귀머거리, 벙어리가 되련다. 하나 둘 셋, !!! 예로부터, 지혜로운 아내의 혀는 은혜로워 남편에게 양약(良藥)과 같고, 그 혀는 천은(天銀)과 같아, 남편에게 생명의 샘이 된다고 한다. 지혜로운 아내는 입을 열어 남편을 인정하고 칭찬함으로, 그 남편은 금과 같이 귀한 사람이 되는 법이다.

 

또한 현숙한 아내는 그 입을 슬기롭게 열어 사랑하는 남편에게 기쁨과 소망과 자신(自信)을 주는 말을 한다. 명철한 아내의 입술의 말은 그 남편에게 깊은 물과 같고, 솟구치는 내와 같다. 그리고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아내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남편이 그의 친구가 되어준다. 학자의 혀를 지닌 지혜로운 아내는 남편이 피곤할 때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안다. 지혜가 있는 아내는 그 입술로 말한다. “난 당신으로 인해 행복합니다.”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은 어머니에게서 보인다고 한다. 진정으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내의 모습을 그리면서, 비록 지금은 닥쳐온 혼란과 어지러운 현실로 인해 힘들 아내들을 위해 작은 마음을 조심스레 전해본다. 밖에서의 벅찬 일들로 몸은 힘들고 고단해도 즐겁고 행복할 가족들,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형제 자매들이 있다면 그 기쁨이 더없이 소중할 것 같다. 오손 도손 한 자리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정겨운 음식과 함께 가족들 각자의 하루 사연들을 나누며, 새롭게 시작할 희망의 내일을 준비하기 위한 상쾌한 분주함으로 피곤함도 다 녹아질 수 있는 그런 가정을 우리는 소망한다.

 

그런데 참으로 애석하게도 여러 사람들을 상대로 상담을 하다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이미 상대편에게 흥미가 없어졌음을 호소하고, 권태기가 왔음을 비통해 하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필자는 자신 있게 말한다. 남편에게 있어서 아내는, 아내에게 있어서 남편은, 일생 죽을 때까지도 알 수 없는 타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결혼한 지 일 년 밖에 안 된 사이에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았다는 부부는 중대한 착각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자기 남편이야말로 무진장의 매장량이 들어있는 풍부한 광산이기 때문에 일 년 사이에 폐광이라고 단정하여서는 안 된다. 같은 물건이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 달리 보인다. 남편도 아내를 평면도로만 보고 다 보았다고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 삶의 지혜와 행복은 가까운 곳에서부터 발견해낼 줄 아는 눈에 달려있다. ‘공자는 음식에 가까이 있는 수저와 혀, 두 가지를 비유하는 것으로써 지혜를 주고 있다. 수저는 음식에 더 가까이 있지만 그 맛을 알지 못하고, 혀는 음식에 가까이 있되 그 맛을 알고 있다.

 

우리에게 있는 애정과 사랑을 수저로만 판단하려 들지 말고, 혀로 판단하려 든다면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일수록 소중하게 아끼어 행복을 찾아내는 결과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일반적인 다른 사람에게서 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적용이 되어지는 것이다. 똑같은 사람, 또한 똑같은 사물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귀한 존재가 될 수도 있고,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아무리 소중하고 귀히 여겼던 것이라 할 지라도 내가 필요로 하건, 하지 않건, 가까운 곳에 오래 존재하다 보면 그 존재함의 감사에 무감각 해지는 것 같다. 실은 존재함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축복임을 잊고 살게 되기도 한다. 혹시 우리 주위에 깨닫지 못하고 있는 축복은 없을까? 한 때는 퍽이나 소중하고 곱다 생각했던 인연을, 당연히 곁에 있음만으로 홀대를 한 적은 없을까? 곰곰 생각해볼 일이다. 그리고 그 생각의 중요함을 새삼 깨달아야 할 일이다.

 

어느 한적한 꽃밭 가장자리에 작은 꽃 하나가 피어 있었다. 낡디 낡은 파이프 하나가 길게 물탱크와 연결되어 있었고, 파이프에 조그만 구멍이 하나 나 있었다. 거기에는 한 방울 한 방울씩 물방울이 떨어졌다. 작은 꽃은 그 물방울이 떨어지는 바로 밑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도저히 꽃이라고는 피어날 수 없는 척박한 땅인지라 그 꽃이 어떻게 거기에 피어났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꽃밭 중간에 피어 있던 두려움이라는 꽃은 늘 그 작은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그곳에 피어났는지 궁금했던지라 두려움 꽃이 물었다. “작은 꽃아,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어떻게 이런 곳에서 다 피어났니?” 그 조그만 꽃은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이름은 기쁘게 받아들임이예요. 저는 여기가 좋답니다.”

 

어떤 사람이 가슴에 수술을 받고 난 후, 사람들은 그에게 수술자국이 흉해서 싫지 않느냐고 물었다. “흉터 자국이라뇨? 내 가슴에는 남들에겐 없는 스마일 자국이 있을 뿐인 걸요.” 삶에 있어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가 아니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것이다. 사람의 일은 마음 먹기 달려 있다고 한다. 모든 세상 만사는 생각하기 나름이라고도 한다. 우리의 생각 여하에 따라 우리들 스스로의 행복과 불행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어진다는 걸 알아야 한다. 순결한 생각의 중요함, 그런 생각을 따라가는 추억의 소중함을 느끼자는 말이다.

 

순결은 깨끗한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바라봄의 법칙이 있다고 한다. 좋은 것을 자꾸 보면 좋은 마음을 품게 되고, 나쁜 것을 자꾸 보면 나쁜 마음을 품게 된다는 것이다. 자주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가장 좋은 영향을 준다. 바라보는 것은 마음을 품는 것이다. 마음에 품은 것은 결국 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우리는 보기 싫어도 보게 되고, 듣기 싫어도 들을 수밖에 없으며, 생각하기 싫은 것도 생각하며 산다. 세상은 온통 이런 것들로 둘러싸인 듯하다.

 

이 혼란한 세상에 우리는 얼마나 오염되었을까? ‘사랑하면 닮아가지만, 미워하면 똑같아진다고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의 더러운 것만 보고 미워하고 있지 않는가? 미워하면 똑같아진다는 말, 참 섬뜩한 느낌이 드는 말이다. 이상스럽게도 필자의 경우에는 누군가가 미워질 때 자신을 돌아보면 그 미운 면을 자신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아마도 타인에게서 내 자신의 나쁜 면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자신의 나쁜 면을 스스로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면서 웃을 때가 있다.

 

눈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여과 없이 바라보지만 마음의 눈에는 거름망을 가져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 거름망이 너무 촘촘하다면 옹졸한 사람이 될 것이고, 그 거름망이 너무 넓다면 옳고 그름의 판단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상식의 선이라는 것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한 평생 살아가면서 정말로 필요로 하는 소중한 것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진실로 어떤 것이 필요한 건지 잘 알아야 한다. 물론 뭐니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재물이 많다는 것은 어려움에서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재물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재물 만큼 확실하게 보호해 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곧 재물이 있음으로 해서 굳이 당하지 않을 어려움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물이 없어 먹지 못하고, 병에 들어도 치료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곳이 세상이다. 그런 재물을 과연 누가 초연하게 대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재물이 육신을 보호한다면, 지혜는 영혼을 보호한다.

 

재물과 지혜를 함께 얻을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신은 보통의 경우 한 가지를 준다. 재물이 수고를 해서 버는 것이라면, 지혜는 마치 햇빛과 같이 모든 사람에게 고루 비친다. 참으로 공평한 것은 그 햇빛을 수고해서 버는 사람만 보는 것이 아니라, 수고할 수 없는 사람도 본다는 것이다. 수고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 지혜가 어떻게 주어지는가를 소개하는 것이다. 지혜는 그래서 선물처럼 얻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 혼자의 힘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다. 기둥 하나만 있어도 지붕을 올릴 수는 있다. 그러나 기둥이 하나밖에 없으면 안정되지 않아서 곧 쓰러져버린다. 다시 기둥을 하나 더해서 두 개가 되면 조금은 안정된다. 또 하나를 더해서 기둥을 세 개로 만들면 제법 안정된다. 또 하나를 더해서 기둥을 네 개로 만들면 상당히 안정된다. 사람이 혼자 살아가는 것은 하나의 기둥으로 흔들리는 지붕을 불안하게 지탱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비틀비틀 흔들리면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는 기둥이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혼자의 힘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또 의지가 되어주는 그런 삶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기계도 작은 볼트 하나 부족하면 작동이 되어지지 않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듯이, 우리의 삶 또한 다르지 않아서 나 혼자 우뚝 서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삶은, 포장은 그럴 듯해 보여도 병든 인생을 살아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작고 큰 것들이 조화롭게 자기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여야만 완전한 하나를 이룰 수 있다. 어쩌면 우리들의 삶에서 가장 큰 이상향은 그 완전한 하나를 향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장 기초적인, 가정이라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부터 시작되는 작은 진리가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의 밑받침이 되어진다는 진실을 우리는 안다. 고요하게 흐르는 물줄기처럼 마음 속에도 천천히 부드럽게 흘러가는 편안함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행복이다.

 

행복은 누구나 말을 하듯이 멀리 있는 게 아니다. 가까이, 아주 가까이,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행복보다는 불행하다고 여겨질 때가 많다. 또한 남들은 행복한 것 같지만 나만 불행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그러나 사람은 모두 똑같다.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가 행복을 추구하고, 누구나 행복을 바라며, 언제나 행복을 찾고 있다.

 

그러나 모르는 게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욕심을 버리지 못함으로 행복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좀 더 주면 될 것을, 내가 조금 손해보면 될 것을, 내가 좀 더 노력하면 될 것을, 내가 좀 더 기다리면 될 것을, 내가 조금 움직이면 될 것을 말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주기 보다는 받기를 바라고, 손해 보다는 이익을 바라며, 노력하기 보다는 행운을 바라고, 기다리기 보다는 한 순간에 얻어지길 바란다.

 

그렇기에 늘 행복하면서도 행복하다는 것을 잊고 살 때가 많다. 굳이 행복을 찾지 않아도 이미 행복이 자기 속에 있는 걸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 잠시 시간을 내어 내 자신을 들여다 보자. 과연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잘못된 행복을 바라고 있지는 않는지,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작은 행복부터 만들어 가고,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별이 총총 서리는 밤, 우리는 추억에 젖는다. 별을 바라보면서 별 하나에 사랑을, 별 하나에 행복을, 그리고 별 하나에 영원한 평화를 그리며 생각에 잠긴다. 별은 우리에게 생각의 기회를 준다. 그래서 우리는 별을 보며 생각한다.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답게 살다가 사람스럽게 죽어가는 윤회의 기억을, 그 오래된 진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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