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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더 나은 삶’ 살 수 있을까?
<주부일기> 한상림 ‘가계부 무용론’
기사입력  2019/05/16 [17:41] 최종편집    시인 한상림

 

▲  시인 한상림

 

 

직장생활 멈추고 평범한 가정주부

 

일반적으로 가정경제를 이끌어가는 주역이 주부(主婦)라고 한다면, 필자는 그동안 가정경제를 잘 이끌어 왔다고 그다지 내세울 만한 것 별로 없는 주부이고 아내이다.

 

지금 이 나이에 경제적으로 안정된 모습으로 좀 더 여유롭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후회는 항상 늦은 법이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 갈 수만 있다면 설계를 잘 해서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 본다.

 

35년 전 결혼을 하고 살림을 잘 꾸려가는 것이 초보자로서 쉽지만은 않았다. 가정경제도 마찬가지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하여 노하우를 터득하게 되고, 주어진 범위 안에서 절약하고 또한 재테크를 잘 하여서 재산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1980년 초, 필자가 결혼할 당시만 해도 대부분 여자들은 결혼과 동시에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가사와 양육에 충실 하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했다. 대부분 여자들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면서 30~40대까지 가사에 전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당시 나 역시 결혼과 동시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고, 결혼 후 바로 작은 연립주택을 장만하여 살았기에 남들처럼 집 장만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야 하는 삶은 아니었다.

 

해외에서 벌어온 남편의 월급으로 땅도 조금 장만해 놨고 내 집까지 장만하여 시작한 결혼생활이니 그저 평범하게 아이들 양육과 교육에만 전념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적자 살림가계부 의미가 없어져

 

결혼 후 20 여 년까지는 그런대로 가계부도 적고 연말에 정산까지 하면서 알뜰살뜰 꾸려가던 살림살이를 점점 양육비와 교육비가 늘면서 저축은 물론 적자 살림을 하게 되다보니 가계부를 적는다는 것이 별 의미가 없어졌다.

 

지금도 남편과 가끔 돈 문제로 옥신각신 다툴 때면 가계부를 내 놓으라는 말에 감정을 상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요즘이야 전자가계부나 컴퓨터,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서 얼마든지 간편하게 정리를 할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계부를 적는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가정경제도 나라살림과 마찬가지로 부부가 서로 화합을 하여서 서로 의논하여 터놓고 예산을 세워서 계획적으로 운영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도 잘 알면서 실천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혼과 동시에 양가 부모님에게 맏이 노릇을 하면서 집안의 대소사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신혼 초 넉넉지 못한 월급을 쪼개서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느라 쪼들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주변의 동창생들을 보면 처음에는 거의 비슷한 상황에서 출발하여서 우리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여유를 부리면서 사는 것처럼 보인다. 오십 대에 들어서면 어느 정도 인생의 성공 여부가 느껴지는데, 우리는 사실상 두 배의 교육비와 양육비로 저축도 별로 못하고 겨우 집 한 채 평수를 넓혀온 것이 전부이다.

 

그나마 대부분 퇴직을 하여 일자리가 없는 친구들에 비하면 지금도 일을 할 수 있는 남편의 직업이 천만다행이다. 퇴직 나이와 상관없이 전문직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아마도 십 년은 남들보다 젊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 갈수록 빈부격차가 심한 세상에서 과연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막막해진다. 때문에 결혼을 하려고 하지 않으려 하는 젊은 청년들의 심정도 헤아릴 수 있다

 

 

어둡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부담감

 

요즘에 부자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부모덕을 보면 금수저이고,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흙수저라는 말이 있듯이, 부모의 경제력으로 기반을 빨리 잡은 사람들은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다.

 

그러나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 이라고, 돈 많은 사람은 갈수록 더 부자로 살고 가난한 사람을 갈수록 더 가난해 질 수밖에 없는 현실의 문제점들을 감안해 볼 때, 흙수저로 태어나서 부자가 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따라서 우리 아이들에게 흙수저를 주었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가야 할지 염려스럽다. 갈수록 빈부격차가 심한 세상에서 과연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막막해진다. 때문에 결혼을 하려고 하지 않으려 하는 젊은 청년들의 심정도 헤아릴 수 있다.

 

1980년대 결혼할 당시 우리는 대부분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모르고 시작하였다. 그 당시에는 오로지 남편 하나만 믿고 살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시행착오였는지도 모른다.

 

비록 넉넉지 못한 월급이지만 그 돈으로 살림살이를 꾸려가고 저축을 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은 그리 어둡지 않았었다. 육십 대 중반인 남편은 오늘도 물 위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물오리처럼 물속에서는 쉼 없이 발짓을 해야만 한다고 말하면서 현관문을 나섰다.

 

그나마 우리 세대에는 이렇게 절약하고 아끼면서 힘겹게 집을 장만하고 부모를 모시는 세대였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와 달리 다방면으로 풍족한 삶을 살면서도 더욱더 불안해 보인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난 때문에 사회로 출발하는 시점부터 어둡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부담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죽는 날까지 신세지지 않고 건강하게

 

필자 역시 불과 십여 년 전인 오십대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불안한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어느 새 육십을 넘고 보니 불안함만 점점 커진다. 그것은 아마도 건강에 자신 없고 경제적으로도 확실한 대책 마련을 해놓지 못한 까닭이다.

 

남편은 죽어라 일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애를 써 온 반면에 나는 사회봉사일로 오히려 생활비에 보탬은커녕 많은 돈을 갖다 문학과 봉사활동을 하는데 써 왔기 때문이다.

 

그 돈을 모아서 저축을 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오히려 내가 봉사를 많이 하였기 때문에 더 많은 복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한때는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면서 과외도 하여 생활비에 보탠 적도 있지만, 거의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때론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그나마 내가 참 잘해 온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보험이다. 가족 모두의 건강보험, 실비보험, 암보험, 종신보험 등 어지간한 보험은 다 가입을 해 놔서 노후대책에 큰 힘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해서 아직까지 보험금을 크게 타 본적도 없지만 그만큼 건강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으로 오히려 안심이 된다. 단지 아이들에게 크게 물려줄 재산이 별로 없기 때문에 아이들 스스로 우리가 살아온 것처럼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을는지가 염려스럽다.

 

요즘 중산층의 기준이 20억 원의 재산을 가져야 한다는데, 강남권 아파트 한 채 값만 해도 20억 원이 넘으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중산층의 범주에 속한다고 본다. 그러나 대부분 그 안에 포함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렇다고 하여 돈의 많고 적음으로 우리가 살아온 인생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노후에 대부분 부자(富者)’ 기준을 자식의 성공 여부와 돈의 많고 적음으로 비교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자식들에게 혹은 남에게 신세지지 않고 죽는 날까지 스스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큰 부자는 없을 것이다.

 

프로필

한국예총 전문위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회원

강동구 여성단체협의회 회장

강동구 새마을부녀회장

시집 따뜻한 쉼표 종이 물고기

hsr59@daum.net

 

 

 


원본 기사 보기:해피! 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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