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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어렵지 않게 사는 주문’
<양은진 칼럼> ‘하쿠나 마타타’
기사입력  2019/07/07 [22:36] 최종편집    양은진 칼럼니스트

나의 아이도 아닌데 웬 참견을?

 

▲ 양은진 칼럼니스트   

뒤꿈치를 눌러 신고 나온 신발이 계속 거슬려서 제대로 올려신고야 말았다. 발등이 다소 죄어오는 느낌이 들지만 꺽어신은 신발의 내 모습은 버르장머리 없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신발은 소재가 니트 조직이라 원래 뒤를 눌러서 뮬형태의 신발로도 신을 수 있었지만 어려서부터 그런 부분에 예민하게 교육받으며 자란 탓일게다. 게다가 마침 그날 일을 하면서도 맘이 불편한 일이 생겼다.

 

학생치아검진을 하던 중, 입속은 하루이틀이 아닌 오랜시간 켜켜히 쌓인 치석덩어리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15년도 채 살지 않은 그들 입속에서 충치가 번져가고 있는데, 코에 귀에 심지어 혀에까지 피어싱이라고 주렁주렁 달아서 멋을 내고 있는 아이를 만난 것이다.

 

멋을 내기전에 몸을 청결하게 해야 한다고 자극적인 말로 행동의 모순을 알려주고 싶은 엄마의 맘이 일었지만 애써 참았다. 요즘 여중생들은 성인 치과의사인 나보다 더 짙은 색 립스틱과 화장으로 겉모습을 꾸미면서 정작 꾸미기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위생은 신경쓰지 않는 것이다.

 

얼마 전 양쪽 귀와 코의 연골 포함하여 열 개가 넘는 피어싱을 했지만 정작 입에서는 구취가 폴폴나는 학생에게 피어싱의 감염가능성에 대해 조언을 한 적이 있다.

 

피어싱보다 양치질이 먼저라는 내말에 큰 상처를 받았다며 집에 가서 펑펑 울며 엄마에게 일렀는지 그 어머니는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그 치과의사가 정규직이냐 계약직이냐를 들먹이면서 치과의사면 이빨이나 잘 검사하면 될터 오지랖 넓게 남의 딸한테 이래라 저래라 해서 딸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며 강력하게 항의를 하는 바람에 월급받는 나는 전화를 걸어 부모의 꾸지람을 한참 들은 후 사과를 해야 했다.

 

관심종자(관종) 라는 아이들의 신규어를 갖다 붙이지 않아도 그런 방식으로 겉모습에 몰입하는 것이 애정결핍이나 자존감의 결핍이라고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부모가 아이에게 그릇된 울타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치질은 소홀히 하면서 혀에 피어싱을 하는 것이 정녕 아이의 개성 있는 의사결정이므로 존중해 줘야 하는 것인가? 부모와 아이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데, 3자인 검진의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것은 의미 없기 때문에 나야말로 구강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보다 해야할 최소한의 일만 하는 방향으로 조금식 방향을 트는 것은 필자도 사람인지라 계속 상처받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매일 거슬리는 것들에 대해 속내를 비치지 않거나 그 문제의 핵심을 내 문제가 아닌 그들의 문제로 맡겨두는 것이 하루를 편히 사는 방법이기도 하다. 선한 의도이고, 객관적 사실이라 하더라도 나 아닌 타자를 바꾸려드는 것은 여러모로 순리에 역행하는 것이다.

 

▲ 우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것들에 매달려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당신을 괴롭히고 있는 그 문제는 분명 그럴 것이다. 

 

엉성한 듯 보여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요즘 우리 아이들은 중학생 2, 3학년인데 같은반 엄마들은 사춘기의 아들과 부딪히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사랑하기에 미래를 위해 지금을 참아내라 하고 씁쓸하고 고생스럽지만 옳은 길을 가게 만들 의무를 갖고 있는 부모로서 삐딱하게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아이들과 같이 사는 것은 상당한 인내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오감 발달에 좋다고 하여 갓 뛰어다니기 시작한 아들을 데리고 체험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다. 밀가루를 허공에 뿌리며 놀거나 얼굴과 발바닥으로 물감을 뭉개고 벽에 맘껏 칠하기, 점토와 화장품 등으로 온갖 장소에 떡칠을 하며 노는 것이 주된 활동이었던 그 교육기관에 처음 발 딛었을 때 큰 아들은 섣불리 그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호기심과 탐색과정을 방해하지 않으며 키우려고 화장대와 씽크대 하부장을 모두 아이들에게 내어주고 마음 내려놓는 수련을 오랫동안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자리에서 슬며시 바닥에 깔려있는 큰 비닐 커버의 접힌 부분을 펴는걸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집으로 와서 곧바로 항균모래를 한포대 사서 아파트 베란다에 깔아주었다. 더 많이 자연 속에서 뒹굴게 하고 바깥놀이에 공을 들였지만 아이는 아마도 엄마의 유전자를 타고 난 데다 내가 알아채지 못했던 행동들을 유심히 관찰하며 배웠었나 보다.

 

아이가 어릴 때는 무릎으로 기어다니기 때문에 바닥은 물론 아이 손닿는 부분은 하루에도 몇 번씩 쓸고 닦아냈다 양말을 신고 자박자박 걸어다닐 무렵이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됐는데 직장맘이었기에 혹여 부족하지는 않을까 싶어 좀 더 깨끗한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은 욕심에 시간을 쪼개 청소할 수 있는 각종 아이디어 청소기구와 용품들을 한동안 사들이곤 했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자라고, 아이들과 함께 초등학교를 다니던 무렵 예상치 못하게 뇌종양에 걸리게 되면서 욕심이 저절로 의미 없어지는 마법을 겪게 되었다.

 

책을 읽지 않는다고 채근하고 영재부에 합격할 것인지에 촉각을 두던 것들은 중요하지 않게 되고, 아이들이 고등학교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갈 때까지만 지켜보고 싶어졌다. 군대갈 때까지, 결혼할 때까지, 아들이 결혼하고 첫 손주를 볼 때까지 욕심은 몸이 나아질수록 커져갔다.

 

수술이 기적적으로 성공적으로 끝나 편마비나 부작용 없이 퇴원하고 표준치료까지 끝났지만 오로지 정상적인 생활로의 귀환에 신경을 쓰느라 아이들은 엄마가 집에 있어도 엄마 없는 아이들처럼 자랐고, 그 빈자리는 생계를 책임지는 남편이 직장생활과 겸해주었다.

 

자연스럽게 생활의 모든 일에 완벽성을 기하기 어려워진 사실을 그 때서야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살아가는데 있어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스스로 씻고 추운날씨에 얇은 옷을 입고 나가면 고마운 같은 반 학교 엄마들이 옷을 물려주고 아픈 걸 알고 이웃들은 반찬을 수시로 날라주었다. 꼼꼼히 기록하고 계획하며 다이어리에 빽빽하게 분단위로 스케줄을 적어가며 놓치는 것 없이 살아갔던 방식과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처리해나가는 것이 별 차이가 없다니 놀라운 발견이었다.

 

아픈 몸으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미세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치과진료를 하지 않게 된 것도 큰 역할을 했다. 내가 없으면 휘청거릴거라 생각했던 치과도 남편이 제법 잘 운영해갔다.

 

아이들을 키우고 사회생활을 하며 내가 맡은 일을 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치과진료만큼의 조심스러움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획이 아니라 그때그때 맞춰서 행동하는 방식이 아이들을 키우는 것에도 적용이 되었다.

 

어느 스님의 말씀처럼 사춘기가 오면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말에 위안을 삼으며 그저 삶의 주기를 따라 남들처럼 건강하게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도 공부를 잘하지 못해도 그저 대견할 뿐이었다.

 

오히려 아이들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발 동동 구르는 또래 엄마들에게 그 아이들의 장점을 끄집어내어 다독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남편은 아이들의 성적에 조바심을 내고 있고 최소한 나중에 기회는 가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자고 한다.

 

미국 서부로 가족여행을 가서 봤던 일주일 가량의 여행 일정 중 가족 구성원 모두 디즈니랜드를 제치고 최고의 경험으로 꼽은 것은 바로 라이언 킹 뮤지컬이었다.

 

삶의 수레바퀴라는 돌고 돌아 나를 넘어서고 다시 만나게 되는 나 그런 원리로 우리 모두는 삶과 자연 속 한 조각이라는 웅장한 노래로 시작할 때부터 이 작품 심상치 않다 생각이 들었는데, 내한 공연 때 거금을 들여 다시 본 공연에서는 친절하게 한국어 자막이 제공되었고 영어를 다 알아듣지 못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이지만 자막을 통해 대사하나하나를 곱씹게 되니 작품 속 더 큰 진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욕심을 내기 시작하는 내가 얻은 큰 메시지는 라쿠나 마타타! 왕위를 노린 삼촌사자의 모함으로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누명을 쓰고 쫓겨난 왕위 계승자였던 어린 사자 심바잔뜩 풀이 죽어 낯선 정글을 헤매이다 만난 동물 친구들 품바와 티몬은 심바를 격려하며 하쿠나 마타타라는 노래를 알려준다.<편집자주 스와힐리어 Hakuna matat는 말 그대로 옮기면 문제 없다라는 뜻>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라는 마법 같은 주문! 만약 당신이 어떤 일이 걱정되어 가슴이 답답하다면 그것이 죽음을 앞둔 것만큼 절실한 문제인지 혹은 자식이 아파서 고통스러워하는 것만큼 큰 문제인지 비교해서 한번만 찬찬히 생각해보기 바란다.

 

그 문제는 죽고 사는 문제일 가능성이 없지만 설사 그와 비슷한 문제인 경우라 할지라도 그 시간 또한 지나고 나면 당신을 더욱 단단하게 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어떤 현자는 우리가 하는 걱정의 대부분이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거나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닌 무의한 것들이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것들에 매달려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당신을 괴롭히고 있는 그 문제는 분명 그럴 것이다.

 

하쿠나 마타타라고 나직이 주문을 외우며 극한의 상황이 아닌 지금에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 프로필

 

2012년 예술세계 등단
현) 안양 샘병원 치과의사
대한여자치과의사협 이사
10기 EBS 스토리기자
yeji3929@daum.net
https://blog.naver.com/yeji3929  

 

 


원본 기사 보기:해피! 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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