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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감성, 분노’는 어른들의 자화상
<이춘명 칼럼> ‘동화 읽는 어른’
기사입력  2019/07/13 [00:54] 최종편집    이춘명 칼럼니스트

날마다 나는 그림책을 읽는다.

 

이춘명 칼럼니스트

그림책을 읽는다. 동화를 읽는 어른이다. 매일 읽는다. 나의 유년을 꺼내고 나를 하루를 찍는다. 다시 어린이가 된다. 3세대가 사는 나의 집에서 가장 어른으로 가장 어린 아이의 키 높이를 맞추려 다시 그 나이로 돌아가는 날마다 나는 그림책을 읽는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서울에서 유일한 아동 특화 구역- 이다. 한 블럭을 빙 둘러서 재개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뒤쪽으로 꿈의 숲이 있다. 수유, 미아 사거리, 중랑천, 청량리로 가는 차선이 거미줄로 연결되어 있다. 집 근처에 초등학교와 도서관이 있다. 그런 곳에서 살고 싶었다. 꿈은 이루어졌다. 손을 뻗으면 행복이 찌릿 하는 곳에 산다.

 

아침에 등교하는 아이들 소리, 주말에 공원으로 나가는 가족들의 발소리, 대낮에 옹기종기 모여드는 도서관 열람실, 그 곳에서 나는 개관 시간 9시에 첫 발을 들여놓는 익숙한 얼굴이다. 유아용 코너에 앉아 한참동안 고른 책을 대출하는 아침 시간은 이미 나를 익혀주고 있다.

 

7월 중순이다. 삼복더위가 시작한다. 장마철이 지났다. 예상보다 적은 비로 마른 장마는 가뭄을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다.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이 작년 폭염 대피령을 자꾸 잊게 한다. 6개월 잘 살아 왔다. 짭짤했다. 신년에 세운 계획들을 미리 들추지 않는다. 그날그날 낭비하지 않으려는 시간을 채우면 어느새 이만큼 살았구나 하는 보람을 느끼게 한다.

 

하루를 채우는 소소하고 확실한 계획은 묵묵히 당하는 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다. 아침부터 움직이면서 동선을 잡고 꼭 해야 할 일을 하면서 가장 어른다운 채움들이 나를 성찰하고 나를 잘 늙게 하는 순서가 된다. 가정에서 중심을 잡고 정당한 교통 정리에 충실한다.

 

정신을 젊게 하는 방법으로 나는 그림책을 읽기 시작 했다. 선호하는 작가나 출판사는 정해지지 않았다. 수상작이나 외국 도서를 선택하지도 않는다. 처음으로 시작하는 동화 읽기는 6개월 전부터이다. 지금은 우수 아동 도서를 선정해 주는 모임의 선배들의 멘토에 따라 차분히 읽고 있다. 올해 전반기의 중간 평가는 A+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림책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내 삶의 실천 사항 대부분이 양육에 관한 일이다. 돌봄에 추가하는 보조 항목들은 그 주변에 있다. 그것을 위한 노력으로 시간을 쪼개고 있다. 오늘까지 100% 성공을 하고 있다.

 

생계에서 물러난 나이이다. 남아있는 삶의 방향은 나에게 맡긴 아이를 잘 돌보고 지키는 일이다. 그 일을 위한 가장 우선된 일이 동화를 읽는 일이다. 내 나이 60이 넘고 60살 아래에 있는 아이를 위해 6단계 내려가는 방법이 된다.

 

고리타분한 옛일을 잡고 있는 노인이 아니다. 미취학 아동의 깨끗함까지 내려오려 노력한다. 교과서에도 참고서에도 없는 양육에 관한 레시피는 동화 속에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읽고 있다. 을 때 마다 한 단계씩 내려가는 나를 발견한다. 동화는 나의 허물을 벗겨 주고 있다.

 

아이들의 눈과 생각을 찾으려고 한 권을 반납 일자까지 읽고 읽고 또 읽는다. 어떻게 살아 왔나의 질문에 그림책을 읽는다 라는 답은 엉뚱할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봄을 나고 여름을 나고 가을을 설레게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찾지 못할 생의 해답을 하나씩 발견하고 있다.

 

아동 도서를 읽는 모임에 가입한 봄은 나를 천진난만한 걸음으로 재촉하게 해주었다. 책을 읽고 발제 글을 쓰고 같이 모여 토론하고 이런저런 양육에 관한 애로 사항과 경험을 나누는 시간은 엄마들이 잊고 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한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그 나이 때의 감정을 들여다보게 한다. 각자 태어나고 자라고 겪은 일상이 다르기 때문에 한 권의 책을 놓고 열 사람이 이야기를 하면 열 가지의 스토리가 탄생 한다. 그런 날의 하늘은 달라 보인다.

 

하루를 맞이하고 마감하는 마음의 자세가 점점 고아지고 있다. 글을 보고 그림을 그린 책과 그림을 먼저 그리고 글을 쓴 글, 그림만 있는 책, 글만 있는 책 각각 주고 있는 메시지가 다르다. 전부 아동 문학이라고 전재한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표현한 책을 동화라고 말하고 싶다.

 

 

 

동화를 읽는 어른으로 첫 장을 보고 다시 뒷장에서 멈출 때 이미 천국의 느낌이 와 닿는다. 삶의 찌든 계산적인 머릿속이 말끔히 청소되어진다. 어떻게 살았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커다란 주제도 한 권의 그림책에서 요점 정리가 다 된다.

 

그동안 문학의 여러 장르를 갔다. 남들 흉내도 많이 냈다. 나를 그 바닥의 얼룩을 묻혔다고 거들먹거렸다. 사는 게 뭐 별거야 거기서 거기지하는 오만도 있었다. 이만큼 살아 와서 뭐 어떤 것이든 우습게 아는 착각도 있었다.

 

아직 많이 읽지 못하는 아동 도서 속에서 쉽지만 어찌 보면 유치하지만 뭐 그렇고 그런 시시한 아이들 이야기지 하던 외면에서 아 니 구 나라는 뉘우침에 많이 부끄러웠다. 앞으로의 진로는 정해진다.

 

그동안 거쳐 온 습작의 전용 노선은 나에게 동화이다. 동화를 읽고 동화를 쓰고 동화를 들려주는 어른이 되고 있다. 말을 잘 하는 내 5살 아이가 글을 잘 읽는 3년 후쯤 같이 긴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칠면조가 되고 있다.

 

나는 단발머리 초등생으로 돌아간다.

 

아침 햇살이 고요히 문을 열고 있다. 나는 단발머리 초등생으로 돌아간다. 슬며시 미소를 보내며 책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흠뻑 시간가는 줄 모르게 몰두한다.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의 자유 시간에 나는 내 집 근처 도서관 2층 열람실 의자에 앉아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다. 가족을 기다리는 빈 방에서 메모지와 연필을 쥐고 있는 시간이 나는 꿀맛이다.

 

세끼 밥만 해결 되면, 한 평 누울 자리만 보장되면, 늘 기도 했다. 꿈은 이루어진다. 지금은 생존을 위한 시간보다 건강하게 늙는 시간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젊은 정신을 위한 주사위던지기를 하고 있다. 이대로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잘 살아왔다. 잘 살고 있다.

 

몇 년 후엔 나의 식량과 거주와 건강까지 맡아 돌봐줄 약속이 살아있는 동안 내내 지켜질 것이다. 무너지지 않는 약속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당연히 잘 살 것이다. 눈에 보이는 듯 하다. 인생의 3분의 2를 지나가면서 나는 나의 뒷모습을 평가해 본다. 그 정도면 됐어 칭찬해 준다. 나의 앞모습은 핑크빛일 게다. 이미 지금 달구어져 가고 있다. 왜냐하면 그림책의 주인공이라서.

 

탄생 1500, 생후 49개월 되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어른 두 사람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젊은 인력은 기초 생활을 책임지고 퇴직자는 가정으로 돌아와 홈그라운드 수비를 맡고 있다. 주 양육자의 부족한 정서와 접촉을 채우기 위해 나는 그림책으로 화살을 돌렸다.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하나씩 바로 잡아주는 정답 찾기가 된다. 진작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목적을 위한 삶이었다. 목적을 보충하는 책만 읽었다. 그때는 최선이다, 탁월한 선택이다 하였던 것은 홀씨가 되어 잊혀졌다. 상황에 맞는 유리한 골라보기였다. 이제 후반전은 그리 하지 않아도 된. 바쁘게 가지 않아도 된다.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기쁘게 받고 나에게 다가오는 행복과 불행, 웃음과 서러움을 그림책 한권을 뗄 때마다 딱 부러지게 마감시키고 있다.

 

조금씩 늙은 모습이라도 찰랑거리는 젊음의 운전대를 돌리고 있다. 사람들이 갸웃거리며 다시 한번 쳐다본다. 할머니가 동화책을 읽고 그림책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 그들의 잣대에 어울리지 않다고 본다. 나는 책에 시선을 꽂으면서 그들의 시선이 따가운 것을 실감한다.

 

정면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이야기가 감성이, 분노 표출이 어른들의 자화상이라는 걸 굳이 서술하지 않는다. 이 여름 나는 그림책의 바탕 화면 속에서 마냥 뛰어 놀고 있다. 그리고 무사히 귀가해 주는 나의 사랑 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들려주기도 모자라는 시간을 아끼고 있다. 나는 어제까지 잘 살아 왔다. 내일도 분명 잘 살아갈 것이다.


원본 기사 보기:해피! 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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