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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는 자연스러운 감정, 적절한 ‘표출을’
기사입력  2019/07/23 [00:33] 최종편집    정상연 한의사

화를 내지 못하게 억누르는 대한한국 자화상

화의 억제결국 사람에 대한 증오로 이어져

명분 겸비하며 겸허한 태도로 분노 표출해야

 

 

깊은 아량으로 참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  정상연 한의사   

한국 사회에서 화를 내는 것은 암묵적으로 금지되어있다. 대중 앞에서 화를 내는 것은 아직 본인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미숙함으로 비춰진다. 개인 간 화내는 것은 더욱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매우 무례하며 관계를 끝내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시중 서점에는 마음의 화를 다스리는 비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즐비하다. 대부분의 책들은 상대방이 나의 화를 돋우더라도 깊은 아량으로 참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상대에게 화를 내는 것은 수()를 말리는 어리석은 짓이고, 결국 나의 화가 나 스스로를 공격한다고 한다.

 

수많은 종교인도 화를 내는 것의 폐해를 널리 설파하고 다닌다. 화를 낼수록 개인의 관계는 단절되고 이웃은 원수가 되며 나라 간에는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니, 그 누가 맘 놓고 화를 낼 수 있겠는가?

 

물론 마하트마 간디나 마더 테레사 같은 분들은 스스로 화를 억제할 수 있고,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그러한 까닭에 이치를 깨우치고, 마음 약한 민중을 보살필 여력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를 포함한 평범한 사람은 완벽하게 화를 제어할 능력이 없다. 직장에서 기껏 완성해놓은 프로젝트의 공로를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상사가 독차지하는 억울한 일을 당해도 우리는 그저 가슴 속 화를 억지로 삭일뿐이다.

 

이와 같이 한국인들은 풀어지지 않은 화를 품고 평생을 살아간다. 늘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는 화병 환자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간디나 테레사 수녀님을 존경하고 본받으려 노력하지만, 실상은 인간관계에서 늘 문제를 겪고 심지어 건강도 위태위태하다.

 

더 이상 화를 내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갖지 말자. 화는 인간이 느끼는 여러 감정 중 하나라는 것을 이해하자. 슬픔, 기쁨 등과 같은 수준의 감정일 뿐이다. 따라서 슬픈 사람이 눈물을 흘리고 기쁜 사람이 웃는 것처럼 분노를 느끼는 사람은 화를 내야한다.

 

나는 더 이상 남자친구의 무관심에 화가 나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술 주정에 화가 나지 않는다.”라며 아직 분노는 스스로 조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사람사이의 관계가 단절될 때 비로소 화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더 이상 남자친구나 아버지와의 애정이 남아있지 않고, 또 앞으로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도 상실한 상태여야만 분노가 일지 않는다. 상대방과 정상적인 관계일 때 그리고 앞으로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싶을 때, 그 사이에선 반드시 갈등과 분노가 발생한다.

 

화는 자연스러운 감정임을 역설

 

 

▲ 한국인들은 풀어지지 않은 화를 품고 평생을 살아간다. 늘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는 화병 환자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일본의 후쿠다 다케시 박사는
아무도 화내지 않는 가정은 아무도 창을 열지 않는 가정과 마찬가지로 건강하지 못하다.”라고 주장하면서 화는 자연스러운 감정임을 역설했다. 또 만약 화가 나는데도 상대에게 양보한다는 것은 매우 건강하지 못한 상태라고 했다.

 

여기서 잠시 후쿠다 다케시 박사의 주장을 받아들인 한 사람의 예시를 들어보겠다. 홍길동씨는 분노가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 그동안 억눌렸던 화를 표출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억울했던 마음을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매우 신이 났다.

 

매일 아침 식사를 시리얼로만 준비해주는 아내가 타겟이 되었다. 홍길동씨는 쌀밥을 국물에 말아먹는 것이 좋은데, 아내는 언제나 바쁘다는 핑계로 아침을 대충 차려주는 것이 늘 서운했다. 신혼일 때에는 아침에 된장찌개도 먹고 미역국도 먹었지만 최근 2년간은 매일이 시리얼이다.

 

아침이 밝자 평소처럼 시리얼을 내준 아내에게 홍길동씨는 화를 내보았다. 2년간 마음에 쌓인 응어리가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억눌렀던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이 뿜어져 나왔고, 아내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았다. 한바탕 소동을 벌인 후 아내는 잃어버린 이성을 찾지 못했고, 그날 홍길동씨는 화를 낸 것을 후회하며 집에서 쫓겨났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결과를 우려해서 늘 화를 내지 못하고 마음을 억누르고 있다. 괜히 본전도 못 찾을 짓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화를 드러내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역풍일 뿐이다.

 

화를 내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심리를 드러내는 것에 목적이 있어야 할 뿐, 쌓아둔 분노를 폭발시켜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를 바로잡아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나의 분노만 표현해야 한다. 절대로 나의 분노가 상대방에 대한 증오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

 

화가 폭발하는 상황을 피하려면, 분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평소에 적절한 순간에 화를 표현해야 한다. 홍길동씨처럼 2년간 쌓아둔 분노는 언젠가는 폭발하여 나와 상대방을 다치게 할 시한폭탄이다. 결국에 터져버릴 폭탄을 만들지 않고, 그때 그때 마음을 드러내어 관계와 상황을 모두 개선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영국의 윌리엄 세익스피어는 분노에 대해서 관계 개선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 말하면서, 올바르게 화를 내기 위한 전제 조건 두 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자신이 해야할 일이나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 한다. 둘째, 겸허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만일 직장에서 자주 늦는 부하직원을 혼내려면 첫째, 본인이 늘 제 시간에 출근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둘째, 자신을 뽐내려거나 상대방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어야 한다. 이러한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된 상태에서 부하직원의 잘못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다면, 매우 긍정적인 결과가 뒤따를 것이다.

 

제대로 표출되지 않은 분노는 건강에도 커다란 악영향을 끼친다. 연구에 따르면 화병으로 고통 받는 중년여성의 비율이 65%에 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화병은 단순히 가슴이 답답하고 열이 위로 뻗치는 증상에서 끝나지 않고 다른 질환들을 속발시킨다.

 

분노의 축적은 교감신경 항진과 과립구의 활성을 통해 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의 만성대사성 질환과 아토피, 천식, 루프스와 같은 자가면역 질환의 발생을 촉진한다. 또한 분노로 인해 간장(肝臟)과 심장(心腸)의 기운이 울체되면 전신 순환력이 떨어지고 곳곳에서 통증이 빈발한다.

 

이제 더 이상 화는 무조건 막아야 할 감정이라는 오해에서 벗어나자. 다만 다른 사람에게 큰소리로 호통을 치거나 증오를 드러내며 비난하는 것은 화내는 게 아니다. 화는 기분을 전하고 더 나은 상황을 만들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화를 올바르게 내는 훈련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는 까닭에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하면 어색한 순간이 찾아오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단지 욱해서 단순한 감정의 발산으로 끝나더라도 계속 연습해서 냉정함을 되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 말해야 나의 요구가 전달될지 차차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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