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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지 명절’ 홀로! 어머니 크게 불러보아
<추석특집> 이춘명 ‘보름달 편지’
기사입력  2019/09/03 [16:33] 최종편집    이춘명

어머니, 추석입니다.

정월 대보름달을 바라보면서 만리재 가장 높은 곳에 동네 사람들과 나란히 섰지요. 뭐든지 들어 준다는 일년 중 가장 큰 달 하얀 달에 엄마 얼굴을 찾았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 달이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 것은 여섯 살 아이도 믿지 않습니다.

 

껍질 벗겨댄 토란을 한번 삶아내서 큰 마음 먹고 산 소고기 반근을 넣고 마늘을 빻아 끓인 국은 지금도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차례를 지내는 일도 없고, 가족 친지가 모이는 음식 장만을 하지 않아도 어릴 때 먹던 그 맛은 마흔 살 딸도 해마다 내가 해주어서 익숙해 있습니다. 뚱딴지라고도 하고 감자 같다며 무슨 맛이냐 묻는 어린 아이에게는 아직 긴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불린 쌀을 들고 방앗간에 줄을 서서 빻아올 때 해마다 자라는 나의 모습을 동네 어른들은 지켜 보았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떠나보내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나를 봐주었습니다. 굴레방 다리 아현 시장에서 솔잎 한 소쿠리를 사서 작은 시루에 한 켜씩 놓고 시루 밥을 붙이고 나면 추석 준비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송편을 잘 빚으면 예쁜 딸을 낳는다고 하여 검지와 장지를 누르며 크게 만들 때 정성을 쏟았습니다. 반달 모양으로 할 때는 끝부분을 잘 누르며 삶은 콩이나, 통깨를 넣어 만들며 엄마 얼굴을 만들어 보았던 며칠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 https://pixabay.com      

 

아직 어릴 때라서 부침은 할 줄 몰라 전판에서 고사리와 숙주를 넣은 두툼한 녹두 빈대떡 석장을 사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침을 꿀꺽 삼켰던 붉은 노을의 긴 걸음도 눈에 선합니다.

 

봉지 쌀로 햅쌀을 사서 아침밥을 하면 밥알이 찹쌀떡이 된 듯 달라붙어 쫀득쫀득 씹히는 맛이 좋았습니다. 숟가락으로 한 수저 푹 뜰 때 정부미 밥처럼 후루룩 밥그릇으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반 그릇만 먹어도 든든한 쌀이었습니다.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쌀 맛은 추석 하루 동안 먹는 고소한 밥맛이었습니다. 지금은 유기농 좋은 쌀이 많아도 그때의 맛과 질감은 없습니다.

 

미나리 줄기만 잘라 담그는 나박김치는 고춧가루를 물에 풀어 얇게 썬 무와 배추로 이틀 전부터 물에 담아 익으면 내가 만들었어도 내가 최고라고 자부하는 김치였습니다. 아직도 김치 담그는 손맛이 좋은 것은 열 살 때부터 김장을 100포기씩 해 온 실력입니다.

 

엄마 없이 자라는 동안 한 지붕 여러 가정이 부엌 없는 방마다 모여 살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먹어보며 물어보며 따라 해서 얻은 실력입니다. 지방에서 모인 사람들의 고향 맛을 배웠습니다.

 

 

조미료나 육수 소스가 있는 지금은 레시피 대로 하거나 즉석 반찬 배달 주문으로 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60년대는 간장, 소금, 된장, 고추장으로만 양념해도 흉내를 낼 수 없는 맛이었습니다.

 

일회용 비닐장갑 없이 순수 손맛 그대로였습니다. 며칠마다 해 먹을 수밖에 없던 때였습니다. 야채 채소를 사면서 어떻게 해먹느냐 물으면 장사하는 아주머니들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고급 선물 세트를 택배로 보내는 지금 그때를 생각하는 것은 책에서 읽고 배우는 아이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풍습입니다. 문득 추석이 가까이 오니 보름달을 그리며 편지를 씁니다.

 

어 머 니!

어머니를 지나고 할머니가 되어도 어색하지 않는 말, 어머니 불러 봅니다. 닫힌 입술 안에서 올해의 추석은 조금 달라지는구나 말해 봅니다. 동네에서 재래시장도 없어지고 청량리 청과물 시장에 가도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작은 거래는 드물답니다.

 

인사치례, 선물용이 즐비하고 종교적으로 차례 제사는 소수의 고집스런 전통으로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귀향보다는 연휴 동안해외여행 일정이 우선인 지금, 미리 장 보러 가는 내 또래들을 바라보며 편지 글을 씁니다.

 

계절을 잊은 햇대추, 햇밤, 햇사과는 수입 과일 뒤에 밀려 있습니다. 설빔 다음으로 새 옷을 얻어 입는 추석이었습니다. 주로 곤색, 밤색을 샀습니다. 때가 잘 묻지 않고 며칠씩 입어 빨래를자주 안 해도 좋은 어두운 색을 골랐습니다.

 

두 번 접어 입을 길이와 몇 년 자라는 동안에도 입을 수 있을 크기와 폼의 옷을 사면 입어보고 걸어놓고 아끼던 가을이었습니다. 흰 운동화까지 얻어 신는 추석은 밖에 나가 뛰어 다니며 친구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은 날이었습니다.

 

추석 대목장 바글 바글대는 시장 통 사이 사람들 틈에 끼어 밀려다니면서도 외로움은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 모든 일을 혼자 해야 하는 추석은 늘 쓸쓸했습니다. 흥정하고 잔뜩 사서 양손에 들고 와서 다듬고 자르고 삶고 끓이고 맛보는 혼자의 시간은 엄마를 찾는 시간이었습니다.

 

대화마을 입구 삼거리 캠핑장입니다. 카라반 15번에 입실했습니다. 먹거리 재료와 식수만 준비하여 캠핑카 안에서 2일 동안 힐링하는 시간입니다. 피크닉 테이블, 데크에 그늘막, 모기장까지 설치되어 있습니다.

 

명절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완행 기차 입석표조차 없어 짐칸 위에 엎드려 가거나 연결문 앞에 쪼그리고 가던 어린 날을 지금 아이들은 이해를 못합니다.

 

추석 명절에 가족이 있거나 없거나 바쁜 일정을 빼든지 그렇지 않든지 아이들 데리고 가족 여행이나 둘이 오거나 혼자 오는 각각 다른 모습들이 숙박 시설, 워터 파크, 시민 공원에서 많이 보는 지금 캠핑장에도 명절 연휴동안 각지에서 각각의 사연으로 하나 둘 모이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찾아서 큰집을 가거나 형제를 만나러 친구를 보러 차표를 예약하는 설렘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알록달록 선물 꾸러미를 들고 가는 자식들 보다 손자 손녀를 보러 올라오는 어르신들을 터미널이나 역전으로 마중 가는 아들딸들이 흔히 보이는 세상으로 변했습니다. 그것은 그다지 외로움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갈 수 있는 곳에서 쉬고 타향살이 하는 사람들도 형편대로 사람들 속에 있다가 다시 직장으로 가는 잠깐의 충전 기간이 명절 연휴입니다. 명절은 여행으로 누리는 문화가 되고 있습니다.

 

거주지에서 1시간 정도 오는 거리에서 구름 낀 경기도 한부분에서 까치와 매미와 귀뚜라미가 떠드는 합창으로 계절은 건너가고 있습니다. 낯모를 이웃들의 기대어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오후는 평화 그 자체입니다.

 

명절에 모여 형제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형제들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명절 증후군으로 부부가 다투기도 하고 아이들 한복 차림의 어색함에 웃던 때가 겨우 5년 전의 이야기였습니다. 아마도 점점 명절에 모이자 하는 말은 서로의 눈치를 주는 일로거북스럽게 변하고 있습니다. 휴가 때 방학 때도 만나지 못하여 집안 애경사에 모이는 행사로 바뀌고 있습니다. 어머니, 나흘의 추석 명절 연휴에 어떻게 쉬는냐에 9월은 시작됩니다.

 

집이 소유가 아니라 공유하며 거주하는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카라반을 대여하는 것도 이제는 일상이 된 지금 명절은 부담이 아니고 즐김으로 바뀌는 것은 정상적인 흐름입니다. 그렇지 못한 어떤 형편들이 다 다르지만 곳곳에서 모이는 모습들은 의무와 도리가 아닌 가족부터 살피는 주관적 선택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나부터 내 가족부터 위함이 목적이 되고 있습니다.

 

긴 노동속의 짧은 유급 휴가의 자유입니다. 제사 대행 서비스, 제사 상차림 검색, 제사 음식 배송 등으로 여자들에게는 노력의 수고가 줄어든 것도 분명 합니다. 시간도 산 사람들의 편리로이용되고 있습니다.

 

 

▲ 이춘명 칼럼니스트

노점에서 동네 골목에서 보이던 명절의 모습은 닫힌 집집마다 과거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보름달 가득 채워지는 늙은 자식은 어머니가 살았던 그 나이보다 20여년 더 살고 있습니다. 오늘의 이 모습도 5년 후, 10년 후, 지금 5살 아이가 제 아이들을 데리고 지내는 추석날에는 또 다른 역사가 될 것입니다.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의 추석 명절을 어떻게 쪼개어 쉬느냐가 지금 우리의 목록입니다. 차도가 막히는 속도는 고향길이 전부가 아닙니다.

 

명절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많은 이들의 땀과 인내로 텅 빈 서울에서 같이 보던 그 언덕에 홀로 서서 같이 보던 그 보름달을 보면서 크게 불러도 아무도 막지 않는 어머니를 불러 봅니다.

잠시 허전한 도심지의 명절에 달은 유난히 길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https://pixabay.com

 


원본 기사 보기:해피! 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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