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은진 칼럼니스트

물잔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반만 물이 차 있는 물 컵을 보고 긍정적인 사람은 “물이 반이나 남았네” 라고 하고 부정적인 사람은 “컵에 물이 반 밖에 안 남았네” 했다는 이야기.

지난 여름이 무더웠고 가을 태풍이 농부들을 애태웠지만 그럼에도 곡식은 무르익고 과일이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 왔기에 노력한 만큼 주심에 감사하며 함께하는 한가위가 다가왔다.

달력의 빨간 글씨에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직장인들은 과연 휴일이 며칠이나 되는지 담배에 이미 손가락 꼽아서 세어놨고, 반면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사는 이들은 연속된 휴가가 길어질수록 한숨이 늘 수도 있겠다.

살아보니 모든 현상이 양날의 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해결방법을 주시는 법률스님의 답변으로 맘을 달래는 나는 여러 사례의 공통적인 답변이 바로 그 부분이라 생각된다.

네가 그것으로 인해 마음이 어지럽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과감하게 끊어내면 되는데, 그렇게 하자면 분명 아쉬운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스트레스를 주는 그것으로 인해 네가 받고 있는 달콤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달콤한 것을 먹고 싶다면 스트레스를 참아내던지 스트레스를 못 참겠다면 달콤한 것을 포기하라는 우문현답은 어디에나 적용되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몇 해 전부터, 일찍이 분가하여 자식손자들과 명절을 보내시는 형님들 덕에 명절에 내려가도 우리가족만 어머니와 조촐하게 보내는 터라 차가 극심히 막히는 추석명절 당일을 피해 부모님을 찾아뵙고 제사음식이 아닌 더 맛있는 음식을 해먹고 가까운 곳에 나들이라도 하면서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고 오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명절에 형식이 빠지니 담백하고 덜 피곤하지만 조금은 심심하던 차, 이번 명절에는 증조부 대의 친지들을 찾아 다 함께 모여 맛난 음식을 나누어 먹었는데, 처음 얼굴을 뵙는 어른들도 있어서 어색함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핏줄이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맛있는 음식이 많아서였을까? 많은 사람이 모인만큼 다양한 많은 음식을 하고 모두가 머물고 잘수 있는 곳을 미리 예약하고 또 모여서 노는 것에도 준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누가 진두지휘하지 않아도 알아서 각자 위치로 가서 자연스럽게 역할을 해내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 배려하면서 숫자를 세기도 번거로운 많은 사람들이 잘 먹고, 웃고 떠들며 왁자하게 잘 놀았다.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때쯤 연로하신 시어머니 대신 시고모님께서 남은 음식을 바리바리 싸주시는데 진공포장 못지않게 비닐 팩의 공기를 빼고, 얼음 팩까지 넣어서 알뜰살뜰 챙겨주시는 모습은 친정엄마가 생각났다.

조촐한 시댁식구에 익숙해져 있어서 대식구가 걱정스러웠던 처음과 달리 몸은 좀 고되었지만 그것은 유쾌함에 순식간에 사라지고 차가 막혀 집으로 오는 길이 길었지만 오는 내내 에너지를 주고 있었다.

바로 그때 법률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내 몸이 피곤하다면 그로 인해 내 맘을 채우는 것이 있음을 알게 해주신 것이다. 물론 결혼한 지 15년차인 며느리로 가까이에서 들여다봐야만 알 수 있는 많은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육체적 노동보다 시누이의 까칠한 말 한마디, 섭섭한 남편의 태도, 동서간의 비교가 사람을 더 지치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게 시댁과 남편의 존재가 그런 스트레스를 채워주는 요소가 될 수 있는지 귀경길에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법률스님이 말씀하실 것이다. 그런 것들을 참지 못하겠다면 인연을 끊어내면 그만일 것이라고.

■ 프로필

2012년 예술세계 등단

현) 안양 샘병원 치과의사

대한여자치과의사협 이사

10기 EBS 스토리기자

yeji3929@daum.net

https://blog.naver.com/yeji3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