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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는 꽃잎…길 어긋나 못 만날까”
(POET VIEW) 林 森 산새는 꽃잎은
기사입력  2019/10/30 [11:04] 최종편집    림삼/ 시인

 

  

 

www.pixabay.com



산새는 꽃잎은 

 

  

 林  森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산새는 슬퍼 길 떠납니다

목이 아파 우는 것도 잊은 채

훌쩍 훌쩍 그냥 길을 떠납니다

 

산새가 길 떠나는 것을 보며

꽃잎은 슬퍼 잎 떨굽니다

가슴 아파 지는 것도 잊은 채

너울 너울 그냥 잎을 떨굽니다

 

저물어 가던 해가

산 끝머리 꼬리 걸고

아쉬운듯 바라보다

이윽히 포기하여

제 갈 길 가고 나면

장님처럼 더듬 더듬

구름 남아서

 

떠나가는 산새 보고,

떨어지는 꽃잎 보고,

 

길 어긋나 못 만날까

안타까워 머리 풀고

모였다 흩어졌다

그 하늘가 그 자리만

밤 새 돌면서

 

산새 한번 불러보고,

꽃잎 한번 찾아보고,

 

산새가 꽃잎 그리워

이듬해 봄 살며시 알에서 나와

산새의 이름으로

꽃잎 찾을 때,

꽃잎이 산새 보고파

이듬해 봄 살포시 얼굴 내밀어

꽃잎의 이름으로

산새 부를 때,

 

한번 떠나간 그 산새는

아니 돌아왔습니다

한번 떨어진 그 꽃잎은

아니 피어났습니다

훌쩍 훌쩍 떠나간 산새 그리워

너울 너울 떨어진 꽃잎 보고파

 

꽃잎은 피다 지운 잎을 떨굽니다

산새는 울다 울다 길을 떠납니다

  

 

 

詩作 note

 

이 시는 림삼 제 4시집지구 반대편의 메아리에 수록되어 있는 시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한참 제 2의 사춘기에 빠져 방황할 때 적은 시라서인지 제법 감수성이 엿보인다. 요즘 시간 날 때 마다 예전의 시첩을 뒤적이면서 추억여행을 즐겨보고 있는데, 생각 보다 지난 추억에 빠지는 재미가 아삼삼하다. 아무도 모르는 필자만의 그 시절, 그 삶들이 기억의 편린으로 다가드는 것이, 마치 잘 생긴 파노라마를 감상하는 폭이다. 실상 그렇다 하여 무언가가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그 추억에서 새삼 건질 것이 무에 있겠느냐만, 아무튼 틀에 박힌 일상에서 상상의 일탈을 맛보는 것도 신선함이며 상큼함이다.

 

꽃잎을 대하고 서서, 떠나는 산새를 바라보다가, 둘 사이의 애틋한 사랑과 이별을 깜냥껏 생각해낸 필자의 그 시절 깜찍함이 퍽도 대견스럽다. 또한 지금은 아예 엄두도 못낼 낭만과 감정의 폭포에 온 몸이 젖어드는 것 같아, 소름도 조금은 돋는 모양새가 낯 설긴 하다. 수십년 세월 지난 지금, 그 시절 어딘가에서 살던 산새의 삶이, 그 계절 어디 쯤에서 피어났던 꽃잎의 사정이 호기심을 자극할 리는 없지만, 그 뒷 얘기가 딴에는 궁금하기도 하다. 언제나 우리네 일상에 깃들어 있는 사랑 이야기들이, 이별의 사연들이, 남의 것만은 아니고, 무수히 반복되는 필자의 것이거늘, 어찌 세월 흘렀다고, 시절 지나쳤다고 무심할 수 있으리.

 

사는 것이 그렇더라. 살아보니 알겠더라. 애초 마음 먹은대로 살아지는 것도 아니고, 살고 싶다 하여 또 그리 되어지는 것도 아니라서, 삶의 반 이상은 대충 흐르면서, 떠내려가면서,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면서 그리 살아가야 한다는 걸, 이만큼이나마 살아내고 보니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더라. 그리고 또 알게 되더라. 현실에 연연하여 아등바등 살아봤자 지나고 나면 한 줌 모래처럼 흩어지는 꿈이고, 스러지는 거품처럼 허무한 옛 사연일 뿐이라는 거, 그렇게 과거는 가고, 오늘이라는 지금 이 회한의 시간만 남아 있더라.

 

그래서 필자는 이제 작심해본다. 어차피 10월의 막바지, 가을의 문도 닫을 때가 도래하고 있다. 이제 몇 날 몇 밤 지내고 나면 다시 소슬바람 뒤에 줄 서있는 송곳바람이 살을 파고 들텐데, 그러면 긴 긴 겨울의 숨결과 다시 한 철 내내 함께 호흡하며 부대껴야 할텐데, 이 가을의 아쉬움과 한탄일랑은 이 쯤에서 대강 갈무리하고, 새로운 절기를 맞을 채비에 차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상책이리라 여긴다. 그러한즉 가을이여! 보내줄 것이니 갈 길을 가려무나. 고운 추억들 책갈피에 채곡이 낙엽으로 잠재우고, 다시 펼쳐보일 내일에는 한껏 행복했던 추억록으로 그제사 살그머니 되새김해주렴.

 

가을을 보내면서 의식에 양식을 보태주는 책을 찾다가 발견한, ‘놓아버림이라는 제목으로 2013년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판된 서적을 발견하였다. 부제라 할 수 있는 제언은 내 안의 위대함을 되찾는 항복의 기술(Letting go, the Pathway of Surrender)’이다. 앞 뒤 잴 것도 없고, 긴 말도 필요 없었다. 단지 놓아 버림으로써 완전히 항복하라!”는 선전포고다. 제목을 대하는 순간 곧바로 긴장이 되었다. 게다가 덧붙여진, 독자가 작성한 후기의 내용이 퍽 인상적이었다. 저자의 생각과 맥락을 같이 한다 여겨지면서 더욱 필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래서 즉각 정독을 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놓아버림을 읽고, 가을을 보내는 이즈막에 퍽 의미 있는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저자인 데이비드 호킨스(David Roman Hawkins)’ 박사는 정신과 의사이자, ‘마더 데레사가 상찬(賞讚)한 세계적인 영적 스승이기도 하다. 책의 헌사가 이 책의 내용을 간결하게 말하고 있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서 높은 큰 나 앞에 가로놓인 걸림돌을 치우는 일에 이 책을 바칩니다. (Dedicated to removing the blocks to the Higher Self on the path to Enlightment)’

 

우리는 어려서부터 무엇인가를 성취하려면 힘들게 일하고’, ‘뼈 빠지게 일하고’, ‘땀 흘려서 일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으면 자랐다. 하지만 숱한 고통과 노력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왔는지 보면, 우리는 여전히 죄책감을 느끼고, 타인의 비판에 상처받으며, 타인이 맞장구 쳐주기를 바라고, 적개심 때문에 속이 곪는다. 호킨스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내면의 걸림돌을 놓아버리면 비로소 마음 속 큰 나의 진실이 눈부신 빛을 발하며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평화로 가는 길 또한 저절로 나타날 것이다.”

 

깨달음을 가로막는 일상의 장애가 어떤 것인지 밝혀내고, 이 장애를 극복할 수 있게 해 줄 기법을 그는 항복 기제라고 제시하면서 기존의 노력 기제를 대신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의 말을 계속 들어보겠다. “해결은 부정적인 것을 공격하는 데서가 아니라 긍정적인 것을 육성하는 데서 일어난다. 궁극적으로 지혜란 나를 약하게 만드는 것을 피하는 단순한 과정으로 환원될 수 있다. 이 연구가 고통, 괴로움, 실패의 근원을 해소하는 데, 그리고 우리들 각자의 인간 의식 진화가 기쁨의 수준까지 오르는 데 보탬이 되기를 희망한다.”

 

항복 기제는 매우 간단하고 어떤 가르침에도 의존할 필요가 없다. 준비해야 할 것도 없고 바꾸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저 놓아버리는 것으로 나의 본질을 흐리는 감정의 에너지를 소멸시키는 것이다. ‘놓아버림은 무거운 물건을 떨어뜨리듯 마음 속 압박을 갑작스레 끝내는 일이다.’ 그것은 내가 놓아버리겠다는 의지를 선택하기만 하면 항복은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것이다. 감정 자체는 모든 사람이 끊임없이 안정을 추구하도록 몰아가는 기본적 공포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일반인이 감정을 다루는 방식은 크게 억제, 표출, 도피 세 가지다. 세 방식 모두 감정을 다루는 올바른 길이 아니다. 가장 건강한 방법은 감정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이 책 놓아버림은 호킨스 박사가 연구해 온 모든 이론을 아우르는 결정적 방법론이며,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가치 있는 경험을 제공해 준다. ‘놓아버림은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언제든지 행할 수 있는 것이며, ‘항복 기제는 삶의 모든 영역에 유용하게 적용된다. 그 성취는 건강과 창조성, 경제적 성공, 감정 치유, 직업적 성취, 인간관계, 영적 성장 등 전인적인 행복을 누리는 기쁨으로 이끌어준다고 호킨스 박사는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짐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라!’는 주제로, 통찰명상수행자 잭 콘필드가 저술한 놓아버림과는 궤를 달리하는 책이다. 동제목인 놓아버림은 태국, 미얀마, 인도 등에서 승려로 수행한 후, 1974년부터 세계 곳곳에서 명상수행을 지도한 잭 콘필드의 저서로, 참된 행복을 갈망하는 우리에게 자신이 얻어낸 깨달음을 건넨다. 그 책은 복잡하고 미묘한 마음의 작용을 단순하고 명쾌하게 드러내며,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하나하나 짚어주고 있다. 나아가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스트레스를 줄이고 평화를 되찾아 행복으로 가는 순탄한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소개하는 이 책과는 유사하면서도 다른 특징적 요소가 상존한다.

 

저자인 호킨스 박사는 영적으로 진화한 상태와 의식 연구 및 참 나로서의 신의 현존에 대한 각성이라는 주제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했다. 그는 1952년부터 정신과 의사로 일했으며, ‘미국 정신과 학회의 평생회원이었다. 1973년 노벨상 수상자 라이너스 폴링과 함께 펴낸 분자교정 정신의학은 이후 수많은 정신과학 연구자들에게 자극을 주는 기념비적 저서가 되었다. 수많은 영적 진실이, 설명의 부족으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오해받아 온 것을 관찰한 호킨스 박사는 인간의 의식 수준을 1부터 1000까지의 척도로 수치화한 지표인 의식 지도를 제시했다.

 

신체운동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 의식 지도의 탄생 과정과 그 의의를 담고 있는 의식 혁명을 시작으로 나의 눈’, ‘호모 스피리투스’, ‘진실 대 거짓’, ‘내 안의 참 나를 만나다’, ‘의식 수준을 넘어서등의 저서를 연이어 출간하며 세계적인 영적 스승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하버드 대학옥스퍼드 포럼캘리포니아 의대등에서 강연을 했고, ‘바바라 월터스 쇼를 비롯한 다수의 TV 방송에 출연했다.

 

인간 경험을 의식 진화의 관점에서 재맥락화 하고 마음과 영, 양자에 대한 이해를 생명과 존재의 기층이자 지속적 근원인 내재적 신성의 표현들로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강연 활동과 저술 활동을 펼쳤다. 2012919일 호킨스 박사는 행복과 사랑, 환희, 성공, 건강,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깨달음에 이르는 여정이 좀 더 수월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이 책 놓아 버림을 마지막으로 애리조나 주 세도나에 있는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대 학자의 정신 세계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복잡하고 다단한 현대를 살아가면서 수많은 난관과 어려움에 봉착하여 방황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그리 두꺼운 분량은 아니니 가을이 가기 전에 한 번씩 구독을 할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우리 옛 말에 경이원지(敬而遠之)’라는 말이 있다. 겉으로는 공경하는 체 하면서 속으로는 멀리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세상 물정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였을 때에는 친구가 아주 많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친구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든다. 삶이 각박하다보니 마음이 부족하고 생각이 변한 탓이다. 그래서 형식적인, 업무적인 인간관계가 늘어나고 일회용적 만남이 익숙해졌다. 덴마크의 위대한 철학자 키에르 케골사람 행복의 90%가 인간관계에 달려있다.”고 했다. 경이원지(敬而遠之)한 만남이 아닌, 마음과 마음이 연결된 만남은 나와 이웃의 행복을 더 풍요롭게 한다.

 

보통의 경우 대부분 그리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필자의 경우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참 어렵게 느껴지곤 한다. 굳은 습성들이 오래면 오랠수록 다른 사람들과의 어울림에 큰 걸림돌이 되는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관계를 맺으려면 부딪치고 쓸리고, 그리고 마모되어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건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 과정이 번잡하고 귀챦게 느껴져서 미리 다가가기를 포기하게 되고, 또 다가오는 이들이 두렵기조차 하다.

 

자기 포장에 열심을 내다보면 또 왠지, 알고 나서 실망을 주게 될 것도 지레 염려가 되고 그렇다. 자기 관리라고 하던가? 어쩌면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그 세월만큼의 순수성을 잃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꼭 가식이라 매도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포장된 모습보다 더욱 설득력 있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된 모습이란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세월이 주는 덧옷의 무게를 털어내고 순수의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된다면 삶이 참 너그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움직이지도 않고 어떤 기운도 느낄 수 없지만 씨에는 생명이 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을지라도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죽어 있는 돌맹이와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죽은 것과 같은 씨를 살리는 것은 농부의 손에 의해서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땅을 부드럽게도 하고 적당한 물을 주면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씨는 농부에 의해서 어두움이 깊은 땅 속에 들어가야 하며, 여린 새싹은 굳은 땅을 뚫고 나와야 하는 고생이 있어야 하고, 좋은 나무로 자라기 위해서는 비바람과 타는 듯한 햇볕의 시련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영혼이라는 씨에 생명을 탄생 시키는 것은 섭리다. 이해하기 힘든 고생과 시련이 지나가고 나면 어느새 든든히 서 있는 영혼이라는 거목이 보이는 것이다. 바로 인생의 영혼이다. 거목으로 서 있는 영혼을 보는 사람은 세상의 시련과 고생이 결코 힘들지만은 않는 것이다. 이미 다 경험했기 때문이다. 섣불리 판단하지도, 쉽사리 포기하지도 않는 꾸준함과 당당함은 이런 진실과 의미를 이미 다 경험하고, 체득했기에 쌓을 수 있는 값진 자산이며 자양분이 되어진다.

 

청아하다는 말은 삶을 아름답고 귀하게 하는 사이다같은 말이다. 청아한 새소리는 귀를 맑게 하고, 청아한 꽃향기는 눈을 맑게 하고, 청아한 촛불자락은 영혼을 맑게 하고, 청아한 님의 향기는 마음을 즐겁게 한다. 청아한 바람결은 대숲을 일깨우고, 청아한 음악성은 멈춘 영혼을 일깨우고, 청아한 빗줄기는 잠든 대지를 일깨우고, 청아한 범종소리는 온갖 중생을 일깨운다. 청아한 물줄기는 생명의 원천이요, 청아한 폭포수는 굽이치는 힘살이요, 청아한 호숫빛은 드높은 기상이요, 청아한 파돗결은 은은한 발판이다.

 

청아한 태양은 타오른 불꽃이요, 청아한 달빛은 어둠의 이정표요, 청아한 별빛은 영원의 약속이요, 청아한 마음은 진리의 표상이다. 이렇듯 노래 가사같고 시 구절같은, ‘청아한이라는 표현은 많은 단어들에게 살며시 덧붙어, 힘을 주고 빛을 준다. 우리의 삶에서 청아한 느낌과 향기가 샘 솟듯 솟아난다면, 이 세상에 청아한 기운이 그윽하게 퍼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가을 하늘에는 청아한 구름이 둥실 떠 있고, 가을 바람은 청아한 갈대 숲을 지나며 우리에게 향수와 추억을 심어주고 있기에 이 계절은 청아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음이다.

 

청아한 마음은 겸손에 닿아있다. 겸손은 만물의 미덕이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으면 자꾸자꾸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자. 그러나 선물을 주었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말자. 우울의 늪에 빠진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것은 위로가 아니라 밝은 웃음이다. 동정하려고도, 힘을 주려고 애쓰지도 말고, 그저 활짝 웃어주면서 밝은 모습을 보여주자. 자신을 돋보이려고 기를 쓰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눈에 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돋보이게 해주는 사람이다. 있을 때는 눈에 띄지 않지만 없을 때는 눈에 띄는 사람이 되도록 하자.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은 사람들을 위한 일인가? 아니면 단지 사랑받기 위한 일인가? 좋은 친구를 찾기보다 좋은 친구가 되어 주자. 도와줄 사람을 찾기보다 도와주는 사람이 되자. 우리가 알다시피 영어의 ‘understand’라는 것은 아래에 서서 이해하는 것이다. 인간관계에 강한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아래로 내려간다. 남을 타고 오르려 애쓰는 사람일수록 추락의 우려가 심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높이 오른다는 것은 상대적인 가치이지 절대적인 만족의 척도는 아니다. 그렇기에 생각하기 나름인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 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사람들은 작은 상처를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 뿐이다. 그것이 보통의 인간이다. 그러나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상처는 상처로밖에 위로할 수 없다.

 

세상의 숨겨진 비밀들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몹시 불행한 일이다. 그것은 마치 평생 동안 똑같은 식단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식이요법 환자의 불행과 같은 것일 수 있다. 인생은 짧다. 그러나 삶 속의 온갖 괴로움이 인생을 길게 만든다. 소소한 불행에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는 거대한 불행 앞에서 차라리 무릎을 꿇어버리는 것이 훨씬 견디기 쉬운 법이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실수는 되풀이된다. 또한 그것이 인생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만 보고 달려가듯 살아간다. 힘든 인생살이에서 전진, 진보, 속도, 빠름이 분명 필요하지만 가끔 쉬어간다면 삶은 더욱 윤택해질 것이다. 시간의 흐름과 끊음을 조화롭게 잘 이루어내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향기를 아는 사람이라 하겠다. 성현들은 흔히 잘 사는 사람을 대나무에 비유하기도 한다. 대나무는 여느 나무와 달리 한 뼘 정도의 가느다란 두께를 가지고 하늘 높이 치솟으며 자라난다. 그런 대나무는 아무리 심한 태풍이 불어도 부러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형성된 마디 때문이다. 만약 마디 없이 직선으로 무조건 자라기만 한다면 그 대나무는 쉽게 꺾이고 말 것이다. 성장과 마디의 신비한 조화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던 일을 멈추고 매듭지어 줄 때가 요청된다. 그것이 마디의 역할을 한다. 하루 일과를 마무리할 때나 일주일, 혹은 한 달 단위로 매듭을 짓고 다시 시작해 보는 것도 좋겠다. 또한 지금처럼 한 계절이 저물어가고 다음의 절기를 기다리고 있는 이 시점도 마찬가지다. 그런 인생의 마디가 많아질수록 어떠한 고통과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무난히 버티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삶의 마디란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을 해본다. 성장의 멈춤, 나아감의 정지... 하지만 단지 정지와 휴식만의 의미가 아닌, 되돌아봄의 의미로 생각을 한다면 마디야 말로 더욱 발전되어질 내일을 위한 자기 점검으로 이해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지금까지 이루어 낸 성과로

내일의 결과를 가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날들이 우리에겐 어떤 마디였을까? 단지 정지했던 마디였는지, 아니면 다시 시작하는 날들을 위한 자기 점검과 충전의 마디였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아마도 하루 마다 주어지는 마디가 앞으로는 조금은 다른 모양새의 마디가 되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그냥 적당히 보내도 무방한 날들이지만, 대나무의 마디라는 의미를 생활에 적용을 한다면 어쩌면 그 가치가 소중한 우리 삶의 가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을이 가고 있다. 가을이 저물어가고 있다. 가을이 지고 있다. 이 가을의 끝자락에는 다음 계절이 우리를 기다리고 서있다. 모두 우리 삶의 마디들이다.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근원이며, 힘이 되어주는 삶의 얼굴이다. 그 얼굴이 곧 마디다. 필자는 그리 믿는다. 이 가을에 또 마디 하나 만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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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희대 * 고려대 * 광운대
* 국민대 * 동국대 * 명지대
* 삼육대 * 상명대 * 서강대
* 서경대 * 서울대 * 성균관대
* 세종대 * 숭실대 * 연세대
* 외국어대 * 중앙대 * 한성대
* 한양대 * 홍익대
* 서울교육대 * 서울산업대
* 서울시립대 * 한국체육대
* 방송통신대
 
 
 
 
<은행>
* 한국은행 * 국민은행 * 우리은행
* 신한은행 * 하나은행 * 외환은행
* 기업은행 * 씨티은행 * 제일은행
* *HSBC * 경남은행 * 대구은행
* 광주은행 * 부산은행 * 전북은행
* 제주은행 * 농협 * 수협
* 신협 * 새마을 * 우체국
* 산업은행
<카드사>
* 비씨카드 * 삼성카드 * 현대카드
* 롯데카드 * 국민카드 * 우리카드
* 신한카드 * 농협 * 씨티카드
 
 
 
 
* 서울대병원 * 연세대세브란스
* 고려대의료원 * 삼성서울병원
* 삼성의료원 * 경희의료원
* 한양대병원 * 인제대백병원
* 가톨릭중앙의료원 * 이화여자대의료원
* 하나로의료재단 * 서울적십자병원
* 원자력병원 * 한국산재의료원
* 차병원
 
 
 
 
* 로엔 * SM * YG
* JYP * B2M * CCM
* YMC * DSP * GYM
* 큐브 * 스타십 * 빅히트
* 울림 * 티에스 * 티오피
* 젤리피쉬 * 스타제국 * 플레디스
* 엠에스팀 * 페이스엔 * 벨액터스
* 쟈니스 * IOK * 쇼브라더스
 
 
 
 
* CJE&M * 인디스토리
* 쇼박스 * 데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