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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뜬 채로, 피부 솜털까지 느껴지는"
(POET VIEW) 林 森 잠 못드는 밤 눈물 내리고
기사입력  2019/11/21 [01:03] 최종편집    림삼 / 시인

 

  

 

▲   pixbay.com





 

 

잠 못드는 밤 눈물 내리고

 

 

 

 

  

 林  森

 

  

나 눈감지 못한다

눈감으면 내 몸 보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슬며시 손뻗어

팔이며 목덜미만 쓰다듬는다

 

눈은 뜬 채로, 피부 솜털까지 느껴지는

간지럽고 까슬까슬한 그 감촉

얼마나 경이로운가

그리하여 잠 못드는 이 밤

다시 눈물 흐르지 않는가

다시 눈물 내리지 않는가

 

그렇군, 허허 그렇군,

그런데 눈물이라니,

어서 눈물 그치게나, 그대여

자, 그렇지,

그래,

잘 하고있어

그래, 그래, 어서 눈물을....

 

그런데 조금 졸리군

이제 그만 자는 건 어떨까 ?

그렇지, 그렇게 조용히, 조용히,

아주 편안히 잠들어보게나

그대여, 그렇지, 그렇게 조용히,

조용히....

  

 

詩作 note

가을비 치고는 제법 흥건히 거리를 적시는 비였다. 추적추적 이틀에 걸쳐 비가 내렸다. 애초 기상청 예보로는 조금 내리다가 그친다고 하더니 여지없이 이번 예보도 공갈빵이었다. 별 생각 없이 거리를 나섰던 사람들이 짜증난 얼굴로 종종걸음치는 모양새가 마치 쫓기는 자들의 조급함 그 자체였다. 필자도 금세 그친다는 예보를 믿고 길을 나섰다가, 손이 곱아 호호 불며 길에서 생으로 고생을 좀 했다. 사람이라는 게 참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켓은 폼으로 들고 다니기 일쑤였는데 순식간에 외투를 찾게 되다니.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참을성에 자조의 웃음 웃으며, 어쩔 수 없이 가까운 찻집으로 뛰어 들어가 몸을 녹이게 되었다. 계절이 가고 또 다른 계절이 온다는 것, 절기가 바뀌어진다는 사실, 그것은 어쩌면 우리네 삶의 변모하는 폼새와 닮은 꼴이다. 어차피 이미 다 알고 있는, 그리고 예측 가능한 미래인데도 매양 가슴 설레며 기다리게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사실과는 좀 색다른 내일이 열릴지 모른다는 기대와 호기심 등이 어우러져 막연한 기다림 속에 소망을 담게 되는 건, 필자만의 착각이나 망상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괴롭고 버거운 오늘 보다는 좀 더 나은 내일의 어떤 희망과 꿈이 있기에 이 현실을 견디고 감내하는 게 아닐까? 이번 고비만 참고 견디면, 이 고개만 무사히 넘어가면, 그 뒤에는 쨍하고 해 뜰 날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막연한 기다림이, 우리의 오늘을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인지도 모른다.

 

가을은, 그 중에서도 막 저물어가고 있는 늦가을은, 거리에 질펀하게 나뒹구는 낙엽을 바라보아야 하는 지금과 같은 이 계절은, 우리를 조금은 서글프게 한다. 웬지 모르게 낙엽이 진다는 사실은 살아있던 어떤 것이 저물어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생명력이 다하여 죽어가고 있는, 그런 기분에 도취되기 십상인 계절이다. 그래서 쓸쓸하고 외롭고, 또는 서글픔에 침잠하기 쉬운 절기인 셈이다. 그러나, 그렇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진정 가을은 생명의 계절이라는 것을. 떨어져 스러지는 낙엽이, 실은 봄에 피어날 새 생명을 위한 밑거름이 되어진다는 것을.

 

낙엽이 지고, 낙엽 위에 또 다른 낙엽이 쌓이고, 그 낙엽이 썩어져 땅 속에 스미고, 그렇게 썩어진 낙엽이 새롭게 소생하는 싹으로 자라나는 윤회가, 비로소 가을에 시작되는 역사라는 걸 우리는 알아야 한다. 지난 10월에 출간된 신선한 책이 있다. ‘한지혜’의 ‘참 괜찮은 눈이 온다’ 라는 제목의 책이다. ‘나의 살던 골목에는’이라는 부제를 달고 태어난 이 책은 진솔하게 정겹고 다감하여 이 계절에 완전 어울리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아주 친절한 리뷰가 책의 소개 말미에 부록인 양 붙어, 마치 자매처럼 다정하게 어울려 눈길을 끈다.

 

10년도 훌쩍 지난 것 같다. 한지혜의 글이 담긴 ‘책’을 읽는 것은. 소설집 ‘안녕, 레나’ 이후 처음이다. 글을 많이 쓰지 않는 작가인가, 첫 소설집을 좋게 읽었던 터라 그 다음이 궁금했었는데, 그 다음은 쉽게 만날 수 없었다. 그러고는 필자의 기억에서 조금씩 희미해져 갔던 것 같다. 필자가 한국 소설을 부지런히 찾아 읽는 편은 아니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가 몇 해 전이던가? 어느 신문 칼럼에서 꽤 괜찮은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끄덕했던 기억이 난다. 글쓴 이를 보니 한지혜였다. “어? 이 사람이 그 한지혜인가?” 그랬다. 그녀였다. 어느 날 우연히 소식 끊어졌던 옛 친구, 굳이 연락을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 소식은 궁금했던 옛 친구의 안부를 듣게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후로 그녀가 쓰는 칼럼을 이따금 찾아 읽었다.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그 느낌, 담백하고 따뜻하고 그러면서도 할 말은 다 품고 있는, 그렇지만 누군가를 상처 주는 말과 글은 아닌 그런 글.

 

이 칼럼들은 책으로 엮어져서 나오면 괜찮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참 괜찮은 눈이 온다’ 라는 제목으로 얼마 전 세상에 선을 보였다. 책을 받아들고 읽기 시작한다. 프롤로그, 그러니까 ‘개천에 살았던 적이 있다’로 시작하는 그 글은 필자가 한지혜의 글을 다시 읽게 됐던 계기가 된 바로 그 글이었다. 이 책에서도 첫 번째 글로 실려 있어서 왠지 기분이 묘했다. 반갑다고 손짓해주는 것 같았다. 다시 읽어도 여전히 좋다. 비유도 상징도 아닌, 실제 ‘개천’에서 살았다는 고백. 이제 그녀는 개천에 살지 않는다. ‘용이 되어서 나오지는 못했지만 용이 되지 못한 것도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그 시절을 자라면서 그녀가 본 세상의 풍경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여전히 세상을 ‘그곳에서 배운 시선’으로 읽는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또한 자기만의 고유함일 것이라고.

 

이 책은 개천, 서울 변두리, 단칸방, 철거촌 등 한지혜 그녀가 살아온 풍경, 그리고 그 풍경이 가르쳐준 세상을 보는 법에 대한 기록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몸소 살고, 겪고, 버티고, 때로는 벗어나고 싶었던 삶과 공간에 대한 기록이라서 진실이 문장에서 고스란히 묻어난다. 요즘 미디어에서는 가난을 낭만화하고 또 어떤 부자들은 가난조차 ‘체험’하고 ‘경험’해 보는 하나의 놀이처럼 소비한다는데, 한지혜에게 그것은 삶 그 자체였다.

 

여섯이나 되는 가족들과 발도 뻗기 힘든 단칸방에서 살았던 기억, 골목에서 뛰놀던 기억, 이층집에서 자기만의 방을 꿈꾸던 기억, 그리고 그 가난하고 힘든 생활 속에서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책 속으로 도피하고, 책 속에서 다른 세계를 만난 기억…. 너무나도 가난해 지금의 부모는 친부모가 아니라 어딘가 다른 곳에서 부자로 살고 있는 진짜 부모가 있을 것이며, 그들이 어느 날 나를 데리러 올 것이라고 꿈꾸던 기억까지. 한지혜의 유년 시절은 그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거나 그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로 다가온다.

 

그러나 작가는 그 가난하고 힘겨웠던 시절을 마냥 그리워하거나 낭만적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그런 시기를 거쳐 자신이 한 사람으로 어떻게 성장했는지, 어떤 시선을 가진 작가가 되었는지 담담히 기록할 뿐이다. 어린 시절의 그녀는 동네에서 하나 둘 집이 철거되는 현장을 지켜본다. 포클레인이 지나갈 때마다 벽이 흔들린다. 그런데 그녀는 그 처참한 공간에서 남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철거 현장. 부서진 담장 사이에서 꽃무더기를 볼 줄 아는 사람, 그리고 그 벽들을 바라보며 벽 속에 꽃을 가두고 있는 인생에 대한 비관적인 상징일지, 아니면 모든 벽도 저마다 꽃을 품고 있다는 낭만적인 상징일지, 그 둘 모두를 헤아릴 줄 아는 시선을 키워 온 사람. 그런 그가 작가로서 성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기에 ‘빛과 어둠’이 모두 담긴 글을 쓸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작가는 분꽃을 보며 ‘꽃이 핀다고 모두 열매를 맺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겸허함을 느끼기도 한다. 영 활짝 피지 않아 모자란 꽃 취급을 했던 분꽃은 알고 보니 밤에 피는 꽃이었다. ‘누가 뭐라 하든 제가 피어야 할 시간에 맞춰 부지런히 피고 지는’ 분꽃- 요즘 통 글을 쓰지 못하고 있던 필자에게 이 말은 위로이자 따끔한 충고로 다가온다. “누가 뭐라 하든 피어야 할 시간에 부지런히 피어야지!”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했다.

 

이처럼 주변에서 선택받고 화려한 조명을 받는 존재들보다는 꽃을 피우고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분꽃 같은 존재에 더 애정을 지닌 작가의 이 다정한 위로는, 요즘의 필자처럼 삶이 버겁고 좀 낙담한 이들의 마음에 분명 포근한 함박눈처럼 스며들 것이다. 함박함박 떨어지던 눈이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말하는 듯 했다던 작가의 이야기처럼, 이 책은 실패로 침울했던 필자에게 ‘괜찮다고’ 속삭이며 마음에 내려준 함박눈과 같았다.

 

‘이룸의 7가지 법칙’이라는 세간의 유명한 제언이 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사람은 일시적인 난관 너머의 이면을 바라볼 줄 아는 내면의 눈을 가지고 있다. 내면의 눈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지 않는다. 강한 결단력으로 난관을 극복하는 사람은 항상 자신의 목표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이 법칙을 소개한다.

 

첫 번째로 ‘통제의 법칙 (The Law of Controal)’이다. 자신이 삶을 제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긍정적인 느낌을 갖게 되지만, 외부의 어떤 것이 자신을 제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다. 심리학에서는 ‘통제의 원천 이론’이라고 부른다. 거의 모든 스트레스와 불안, 긴장 그리고 이로 인한 신체 질환은 자신의 삶의 영역을 제어할 수 없다고 느끼거나, 실제로 제어할 수 없을 때 초래된다는 것이 이론의 핵심이다.

 

두 번째는 ‘인과의 법칙 (The Law of Cause and Effect)’이다. ‘우주의 철칙’이라고도 한다. 세상에 우연한 일이란 없다. 뿌린대로 거두듯이 모든 결과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삶에 원치 않는 결과가 생겼다면 원인을 추적해 제거하라. 어둠을 탓하기 보다는 한 자루 촛불을 켜라.”라는 ‘스코틀랜드’ 속담이 있다. 적절하게 인용할 수 있는 말이다.

 

세 번째는 ‘신념의 법칙 (The Law of Belief)’이다. 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할수록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믿으면 큰 어려움에도 좌절하지 않지만, 성공에 운이 달렸다고 믿으면 작은 실패에도 좌절하고 만다. 말할 필요도 없이, 낙관적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미래를 설계하고 창조한다. 그들은 긍정적이고 쾌활하며, 세상을 밝고 살기 좋은 곳이라고 믿는다.

 

네 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기대의 법칙 (The Law of Expectations)’이다. ‘같은 학생이라도 선생님이 높은 기대를 하는 학생이 성적이 더 좋다.’는 ‘피그말리온 효과’가 이에 해당한다. 자신에게 스스로 기대하는 정도가 바로 자기 성장의 한계이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기대, 상사의 직원에 대한 기대, 자녀와 배우자에 대한 기대,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주위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며 삶 전체가 바뀔 것이다.

 

다섯 번째는 ‘인력의 법칙 (The Law of Attraction)’이다. 인간은 살아있는 자석이다. ‘두 대의 피아노 중 한 대를 치면 다른 피아노도 같은 소리를 낸다.’는 ‘공명의 원리’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을 끌어들이고, 풍요로움을 생각하는 사람은 돈을 벌 수 있는 아이디어와 기회를 끌어당긴다. 생각이라는 씨앗을 뿌리면 행동이 열리고, 행동은 습관을, 습관은 운명을 결정한다.

 

여섯 번째는 ‘상응의 법칙 (The Law of Correspondence)’이다. 외부 세계는 내부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다. 외부 세계를 영구히 바꾸는 유일한 길은 내면을 바꾸는 것 뿐이다. 스스로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내가 소중히 여기는 이들로부터 존중을 받으며 살기 위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가이다.

 

마지막으로 ‘마음 등가의 법칙 (The Law of Mental Equivalency)’이다. 생각이 곧 사물이다. 인간이 생각을 지배하지만, 생각이 다시 우리를 지배한다. 생각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이 모든 혁명은 자기 내부의 생각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7가지의 법칙을 잘 돌아보고 틈이 날 때 마다 숙고하여 자신의 삶에 조명이 될 수 있도록, 늘 갈고 닦는다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어떤 어려운 일도, 어떤 즐거운 일도 영원하지 않다. 모두 한 때이다. 한 생애를 통해 어려움만 지속된다면 누가 감내하겠는가? 다 도중에 하차하고 말 것이다. 좋은 일도 그렇다. 좋은 일도 늘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러면 사람이 오만해진다. 어려운 때일수록 낙천적인 인생관을 가져야 한다. 덜 갖고도 더 많이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전에는 무심히 관심 갖지 않던 인간관계도 더욱 살뜰히 챙겨야 한다. 더 검소하고 작은 것으로써 기쁨을 느껴야 한다.

 

삶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은, 어떤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일이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당했을 때 ‘도대체 나는 누구지?’ 하고 자기 존재를 확인해야 한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직위나 돈, 재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따라 삶의 가치가 결정된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삶을 누리고(生), 하루하루 육체적 정신적으로 변화하면서 늙어가고(老), 갖가지의 병마와 싸워 이를 극복해야 하고(病), 급기야는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며 죽음을 맞이한다(死). 이 네 가지가 모두 고통이기에 이를 가리켜 ‘사고(四苦)’라 한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이 네 가지 고통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또 다른 고통 네 가지가 존재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언젠가는 반드시 헤어져야 한다(愛別離苦).’ ‘원한 가진 사람과는 반드시 만난다(怨憎會苦).’ ‘갖고 싶은 물건은 그것을 얻기가 매우 어렵다(求不得苦).’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이 오관은 모두 좋은 것만 원한다(五蘊盛苦).’ 하는 네 가지 고통을 말하는 것이다. 앞의 네 가지 고통과 뒤의 네 가지 고통을 합하여 ‘팔고(八苦)’라고 한다. 그러니 인간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 고통에 허덕이다가, 결국 기진맥진 기운이 다 되면 원래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여덟 가지 고통 중에서도 우리 인간을 가장 크게 괴롭히는 것이 ‘오온성고’다. ‘오온’이란 ‘눈, 귀, 코, 입, 몸’의 다섯 가지를 말한다. 눈은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이익이 되는 것만 보려고 한다. 귀는 좋은 소리, 자신에게 유익한 소리만 들으려 한다. 입은 맛 있는 음식, 값 비싼 것만 먹으려 한다. 몸은 편하려고만 한다. 이 오온성고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본다. 결국 오온은 욕심으로 가득 채워진 것이다.

 

오온의 진정한 발달은 욕심만을 지닌 것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주위를 항시 바르게 인식하는 능력이 출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실천으로 옮겨지기는 정말 어렵다. 언제나 눈은 의식적으로 자제한다고는 하지만 나와 무관한, 또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일에는 별로 눈을 돌리고 싶은 의욕이 없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새벽 잠에서 깨기가 무섭게 그 날 신문을 들추었지만 요즈음은 컴퓨터로 눈이 먼저 간다. 그런 다음엔 메일함에, 그리고 자주 드나드는 카페에 눈을 돌린다. 이럴 때에 제일 실망스러운 것은, 꼭 왔을 것으로 믿었던 메일이 보이지 아니할 때, 카페 게시판에 실릴 줄 알았던 글이 보이지 아니할 때, 카페에 온 방의 참여자 이름에서도 보이지 아니할 때에, 눈은 촛점을 잃었다고나 할까, 피로를 느끼게 된다. 그런 것 하나도 자제하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게 감정을 지닌 사람들의 모습인가 보다.

 

귀로라도 좋은 소식을 듣고 싶은데 하루 종일 귀에 들려오는 것은 소음공해일 뿐, 기다리는 전화벨은 울리지도 아니할 때 청각은 불쾌감과 허전함을 겪어야 한다. 코로는 좋은 냄새, 향내만을 맡고 싶은데,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인간의 향내를 맡고 싶은데, 수백 수천 리를 격해있는 사람들에겐 그저 하늘을 떠도는 상상일 뿐, 그러는 사이에 입맛은 떨어지고, 육신은 반신불수로 허덕이게 되는 것이다.

 

오온은 주어진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고 싶지만 인간사회는 너무나도 큰 장벽을 쳐 놓고 있는 셈이다. 언제 어느 때나 되어야 우리의 몸과 마음은 정말로 자유로워져 오온 성고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정말로 요원한 일이다. 이럴 때에는 사랑의 향기가 묻어나는 사람, 따스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얘기 하면 즐겁고, 만나면 부담 없는 편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힘들 때 손 내밀어 일으켜 세워주는 고마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나를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 없는, 단지 우정이란 가면을 쓰고서라도 다가서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그런 만남이 먼 훗 날 같은 길을 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기에, 서로가 있는 듯 없는 듯 멀찍이서 그저 바라보면서라도 곁에 머물러 주길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점점 더 낮 보다는 밤이 길어지고 있다. 이제 해 뜨는 시간도 차츰 늦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이상스레 숙면을 취하기가 쉽지 않다. 아마도 이런 저런 잡생각이 꽉 들어차서 한 밤 중에도 뇌가 쉬질 못하기 때문이리라. 어떤 때는 안타까운 생각에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보려 별 짓을 다 해보지만 별무소용이다. 그럴 때는 과감하게 잠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마음의 안정을 꾀하려 들기도 한다.

 

어차피 잠 못드는 밤이라면 가슴 속으로 흐르는 눈물을 혼자만의 애환이나 고민으로 끌어안고 끙끙댈 것이 아니라, 차라리 밤하늘의 넓디 넓은 별자리에 훌훌 흩어 뿌리며, 깊어가는 가을밤의 운치에 생각을 맡기면, 마치 강을 따라 유영하는 연어의 회귀처럼 보람과 소망이 올올이 자라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이 밤도 잠 못들고, 하얗게 지새고 있지만 조급하지도, 갑갑하지도 않으니, 곧 필자의 아침 밝아올 것을 예감하기 때문이다. 밝은 햇살로 세상 비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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