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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전’ 서독으로 파견된 임옥진 간호사의 인터뷰(2부)
기사입력  2019/12/10 [16:35] 최종편집    임옥진

독일 모라비안 진젠도르프 경건주의 신앙을 이어받은

이들은 복음주의 신앙으로 온전히 보살펴주셨습니다

 

 

독일어 영어, 통역과 번역등 자신감과 인맥 넓힌 계기

폭넓게 만난 분들 기쁨과 행복으로 내삶을 풍요롭게

 

 

1970년대 파독 간호사 생활을 담담히 회고하는 임옥진 여사    

 

당시 서독에서 기독교 신앙과의 만남은 힘든 여건 속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만끽했던 것으로 필자는 회고하고 있다. 당시 신실한 크리스천들과의 인연 및 교우에 대해 진솔하게 말씀하여 달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사춘기 시절부터 저는 삶과 존재의 의미, 왜 사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토록 선망하던 독일이었지만 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도덕적으로 그렇게 자유분방한 나라에 가서 어떻게 나를 지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컸습니다. “내가 어느 오지에 배정될지도 모르잖아? 나를 이끌고 붙들어 줄 부모, 친지. 스승, 좋은 한글서적도 없잖아?”

 

그 때 탐독했던 김형석 에세이집이 생각났고 그 중에 성경은 모든 사람이 읽고 그 교훈을 따라야할 양서이다. 절대자는 존재한다.” 등의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성경과 찬송을 구하는 거야. 그래서 어디로 가든 성경을 나의 지침서 삼는 거야라는 결론에 이르니, 자연스레 성경과 찬송가를 구입하여 독일 행 가방에 소중히 챙겨 넣었습니다. 창조주께서 인간에게 본질적인 신앙심을 제게도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는 독일 베를린의  자유대학병원 두곳 중의 하나인 클리니쿰 베스텐드에 배정되었습니다. 첫날 함께 배정받은 우리 네 사람은 병원장의 아침 식사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바싹거리는 빵 브로치헨에 달콤한 꿀과 마밀라데를 얼마나 발라 먹었던지요? 아무튼 만 20세 아가씨의 눈에 독일의 모습은 모든 것이 신기했습니다. 새롭게 배우고 알아가는 생활이 마냥 좋기만 하였습니다.

 

수개월이 지난 후 이 좋은 곳에 취업도 되고 과분하게 의식주가 넘치도록 해결이 되었는데 뭐지? 그런데 나는 왜 살고, 목적이 뭐지?”라는 의문이 문득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중  대학시절 죠이클럽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네 살 위 심영숙 언니와 믿음과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몇 몇이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독일의 모라비안 진젠도르프 백작의 경건주의 신앙을 계승한 신앙 공동체 후예 분들과 조우하게 되었습니다. 심영숙 언니가 한국에 있을 때 영국의 제임스 선교사로부터 독일의 오토벤더 할아버지의 주소를 받아와 연결되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독일은 목회자의 급여를 국비로 지급하는 루터교회가 국교입니다. 지 교회에서 독립적으로 제정을 관리하는 교회는 독립교회라고 하며, 우리교회는 그 독립교회 연대(형제교회, 침례교회, 감리교회, 오순절교회 등)에 속해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우리를 복음주의, 경건주의 신앙으로 양육해 주셨습니다.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서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23)는 말씀처럼,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 눈과 귀를 통해 마음에 들어오는 유혹들을 멀리하도록 감시하고 다스리도록 교훈하셨습니다. 심지어 가판대의 잡지나 TV도 요주의 대상의 하나이어서 독일에서 생활할 때 TV를 아예 소유해 본 적이 없습니다.

 

▲ '복음주의자유교회연합'(Evangelisch freikirchlische Gemeinde)에서 파송된 선교사님들은 참으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한국 간호사들을 돌보기 위해 독일에 있는 복음주의자유교회연합’(Evangelisch freikirchlische Gemeinde)에서 파송 받은 분들 가운데는 베를린에서 디아콘니 슈베스터(Diakonie Schwester, 침례교회 소속) 요한나와 이르마가 있었고, 하노버의 엘리자벧, 렘샤이트의 에리카(부루더 게마인데 소속)가 있었습니다. 베츨라어(Wetzler) 기독교 방송국의 룻트 프라이도 함께 하여 많이 도와 주셨습니다.

 

고위 공직자(고등법원 검사장 출신)이신 하페(Happe) 장로부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한한 사랑과 헌신으로 간호사들을 위해 수고해 주셨습니다. 그는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매주 토요일 성경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 역시 여기에서 통역을 전담하는 역할을 맡아 한층 큰 보람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또한 나기 장로부부, 보이델 장로부부, 막달리나와 베안트부부, 호프좀머, 루디아, 게어다와 우줄라 등 많은 분들이 날로 수가 더해 가는 한국 간호사들을 보살펴 주셨습니다.

 

한편, 브라질 정글에서 1968~2010년까지 43년 동안 사역하셨던 김성준 선교사님은 19765월 중순 3개월 동안 독일을 방문하여 신실한 믿음 생활에 자극을 주셨습니다. 연세대에서 언더우드 선교 상도 받으시고 현재는 남서울교회의 많은 배려 속에 생활하고 계십니다.

 

베를린 고등법원 검사장 출신 '하페 장로님'의 통역을 도맡아 했던 필자

 

 

19768월 브라질에서 김성준 선교사님이 독일을 방문했을 때, 사역자들과 간호사들이 함께 한 사진 

 

그리고 영국의 원대혁(Drek Earl), 네덜란드의 길기수(Kees Glas) 선교사님들이 오셔서 주로 수련회를 통해 성심껏 사역해 주셨습니다. 이 분들은 3세계의 오지 선교의 길을 활짝 연 선구자였던 챨스 스터드(CT Studd)가 설립한 WEC(세계기독 선교회, 1918년에 시작되어 희생, 믿음, 거룩, 교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50개국에서 모인 1,700여명의 선교사가 75개국에서 사역하고 있다.) 선교사로 한국에 오셔서 10년 이상 선교하셨던 분들입니다.

 

세계기독 선교회(WEC)를 창립하여 제3세계의 오지 선교의 길을 활짝 연 선구자였던 챨스 스터드    

 

 

 

연세대에서 브라질 사역으로  '언더우드 선교상'을 받으신 김성준 선교사님 부부

 

 

 

키스 글라스 선교사 부부   

 

 

키스 글라스 선교사의 파견 소식을 알린 1957년도 WEC잡지 3-4월호 기사

 

 

챨스 스터드(CT Studd)가 설립한 WEC(세계기독 선교회)   

그 후 간호사들이 귀국함에 따라 요한나언니의 경우는 1983년 만 52세의 나이에 한국으로 건너 오셨습니다. 한국어를 배우시고 한국인 가정에서 생활하시면서 흩어져 살고 있는 간호사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영적 구심점이 되어 주셨습니다. 35년 동안 한국에서 선교하시다가 무려 86세의 나이인 201548일에 독일로 귀국하시어 1년이 경과된 즈음인 201678일 소천하실 때까지 파독 간호사를 위해 선교적 사명에 혼신의 힘을 다하셨습니다.

 

이처럼, 독일에서의 믿음생활은 가슴 벅차고 그야말로 꿈처럼 아름다운 생활이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역사한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의 충만함과 기쁨의 생활은 병동의 동료들과 환자들에게 그대로 반영되었고 가족을 향한 편지에도 적용되었습니다. 그 시기를 함께한 동료 간호사들은 자금도 한결같이 그 아름다웠던 때를 이야기하고 그리워합니다.

 

 

임옥진 여사는 독일어와 영어 재능이 남달라 그곳에서도 존경받으며, 여러 현장에서 귀하게 쓰임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독일에 도착하여 괴테어학원에서 석 달 동안 수업하면서 한국 떠나기 전 영어의 ABC 격인 아 베 체와 문법, 얼마간의 생활 용어를 공부한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후 자유대학병원에서 유럽연합(EU) 간호사자격 취득공부를 하다 보니, 독일어를 더 준비를 하게 되고 독일어 구사 능력이 한층 향상된 것 같습니다.

 

필자가 수학한  '아비 미션너리 잉글리쉬 스쿨'(Abbey Missionary English School) 

 

 

 

'필자의 영적 보금자리' 웨일스 신학교(The Bible College of Wales)

 

영어는 독일어와 다르지만 비슷하기도 해서 독일에서 독학하기가 쉬웠습니다. 이후 런던으로 건너가 영어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아비 미션너리 잉글리쉬 스쿨’(Abbey Missionary English School)과 웨일스 신학교(The Bible College of Wales)에서 수학하게 되었습니다. 귀국 후 제대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여 다시 한 번 여유 있고 흥미롭게 영미권 언어를 심화시킬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독일생활과 영국생활을 통해 제가 얻은 가장 의미 있고 소중한 자산이 있다면 그 중 하나는 그 과정을 통해 만난 사람들입니다. 특히 결혼 후 가족이 영국에서 유학하며 알게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도 영국인 친구들은 지속적으로 소식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한 번 만나서는 주님 안에서 가족 같은 영원한 친구가 되어 친밀하게 전화, 편지, 이메일로 교류하며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이들은 평생 내 삶을 풍요롭게 하고, 기쁨과 행복을 선물하는 매우 소중한 분들입니다.

 

독일에서는 한국어와 독어, 한국에서는 영어나 독어가 필요할 경우통역을 할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영어와 독어 서적, 논문 등 부탁해 오는 다양한 번역 활동에도 참여했습니다. 최근에는 인연을 맺고 있는 회사의 동남아국들의 수출 상담회에도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아마 언어적 소통이 불가능했다면 누릴 수 없는 특권이라 여겨집니다. 언어를 통해 자신감과 세계관이 열리게 되고 무엇보다 외국어는 인맥관계를 크게 확장시켜 준 것 같습니다.

 

결혼 후 다시 유학길에 오른 임옥진 여사와 최종철 부군 

 

한국에 귀국하여 부군과 다시 영국 유학생활을 하신 것으로 아는데?

 

부모님은 천사같이 여기는 귀한 딸이 드디어 귀국을 했지만 32세 노처녀의 혼인 문제가 최우선 고민거리였습니다. 저는 귀국하여 한국 어린이전도협회’(CEF) 서울지회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서울지회를 방문한 한 청년 신학생이 저를 보자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 이 사람이 누구야? ~무 좋다. 알면 알수록 그 사람 참 대단한 보물이잖아?!” 자기는 사람 볼 줄을 알았다고 지금도 여전히 자부하는 3살 연하의 열혈 청년은 그렇게 급하게 밀어부처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허니문 베이비로 예쁜 딸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결혼 후 약 2년이 경과된 19841월 초, 남편은 영국으로 유학길을 먼저 떠나고, 저는 부모님의 독일 방문과 함께 합류하기로 하였습니다.

 

독일에 거주하는 동생은 그 당시 여러 해 전부터 부모님을 독일로 초대하고자 하는 열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여행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어서 동생의 일정에 맞춰 스케줄을 조정하였습니다. 드디어 6개월이 경과된 19847월 초 저는 부모님을 동반하여 딸과 함께 독일과 영국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그 동안 딸들이 말하던 독일의 이모저모를 직접 보고 느끼면서 감개무량 해 하셨습니다. 독일 여행 후 부모님은 사위가 머물고 있는 런던으로도 여행하게 되셨습니다.(3부에서 계속됩니다.)

 

임옥진 프로필

독일 베르린 자유대학병원 근무

英國 The Bible College of Wales 졸업

한국여자신학교 영어교수

<역저> ‘영적인 싱글

하나님의 능력과 연결되는 믿음

당신의 교회는 준비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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