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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적 감성동화 “나무가 되고 싶었던 소녀"(2회)
기사입력  2020/05/20 [15:13] 최종편집    김동석 동화작가

   눈이 녹으면서 살포시 싹이 났다.(2회)

 

 

  어젯밤 멧돼지 습격에 도토리 열매가 우수수 떨어졌다. 덩치 큰 아빠 멧돼지는 도토리가 가득 매달린 엄마 나무를 흔들었다. 떨어지는 열매를 보고 엄마 나무는 슬펐다. 아직 덜 익은 열매까지도 떨어지는 모습에 가슴이 찢어졌다. 그 뒤로 다 익은 도토리가 하나 둘 떨어질 때마다 엄마 나무는 소리쳤다.
 
  “아주 멀리 날아가야 한다. 아주 멀리.”
  도토리 열매들은 엄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멀리 가라는 거예요?”
  “엄마 곁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나도 엄마 곁에서 오래 살고 싶어요.”
 
  햇살을 받으며 노랗게 익어가는 도토리 열매들이 엄마에게 말했다.
  “안 돼! 아주 멀리 날아가야 해. 그래야 살 수 있어.”
  도토리 열매들은 엄마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바람이 불자 하나 둘 엄마 나무에서 떨어졌다. 멧돼지의 습격에도 잘 버티던 도토리 열매들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시간이 지날수록 더 이상 엄마 나무에 매달려 있을 수 없었다.
 

  “떨어지기 싫은데!”
  “엄마랑 같이 살고 싶은데!”
  “엄마는 너희들을 데리고 살 수 없어. 그게 자연의 이치란다. 그러니 더 멀리 날아가야 한다. 아래를 봐라. 옆에 있는 나뭇가지에 부딪치면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단다.”
 
  “엄마 밑으로 떨어지면 안 돼요?”
  “안 돼! 멧돼지와 다람쥐 밥이 된단다.”
  “그럼 멀리가면 괜찮아요?”
  “그래. 아주 멀리 날아가야 해. 엄마가 안 보이는 곳으로.”
  “엄마를 안 보고 살라고요?”
 
  “그래야 해.”
  “싫어요!”
  도토리 열매들은 엄마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도토리 열매들이 멀리 날아가기를 바랐다.
  “엄마 곁에 있으면 사람들이 와서 주어가고 동물들에게 먹히고 만다. 그러니 멀리 날아가라는 거야.”
 

 

엄마 말을 조금씩 이해한 도토리 열매들은 눈물을 머금고 멀리 날아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엄마 나무 아래로 툭 툭 떨어졌다.
  “이만큼이면 될까요?”
  좀 먼 곳에 떨어진 도토리 열매 하나가 엄마 나무를 보고 소리쳤다.
 
  “아니. 그곳도 멧돼지가 찾아낼 거야. 눈에 보이지 않아도 찾을 거야.”
  “나뭇잎 속으로 꼭 꼭 숨을 게요.”
  어린 도토리 열매는 나뭇잎 밑으로 몸을 조금 숨겼다.
  “멧돼지는 냄새를 잘 맡아서 걱정이다.”
  “그럼 어떻게 해요?”
 
  “멧돼지나 다람쥐들이 찾지 못하길 빌어야지.”
  “알았어요.”
  도토리 열매는 몸이 보이지 않게 땅속 깊이 몸을 숨겼다.
  “엄마! 보여요?”
  “아니.”
  이제 나뭇가지에는 도토리 열매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엄마 나무는 천천히 세어 보았다.
 
  “하나, 둘, 셋 ……, 다섯.”
  엄마 나무는 눈을 크게 뜨고 구석구석 찾았다. 하지만 도토리 열매는 다섯 개 뿐이었다.
  “잘 들어라. 너희들이라도 꼭 살아서 엄마 나무가 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주 멀리 날아가야 한다. 엄마가 보이면 안 돼. 떨어질 것 같으면 몸을 비틀어서라도 아래 가지에 부딪쳐야 한다. 그래야 멀리 날아갈 수 있어.”
 
  “네.”
  “어젯밤에도 멧돼지들이 동생들을 모두 먹었단다. 그러니 엄마 나무 아래로 떨어지면 절대로 안 돼.”
  “알겠어요.”
  밤마다 멧돼지들이 자주 나타났다. 싱싱한 도토리 열매를 먹으려고 왔다. 다람쥐들은 아직 나타나지도 않는데 땅에 떨어진 도토리는 모두 멧돼지의 먹이가 되었다.
 
  “엄마! 떨어질 것 같아요.”
  “나뭇가지 방향으로 떨어져야 한다. 아래를 봐!”
  “알겠어요.”
 
  가장 큰 도토리 열매가 엄마 나무에서 곧 떨어질 듯 엄마에게 말했다.
  “점프를 해. 멀리 있는 큰 나뭇가지 방향으로.”
  엄마 나무는 크게 소리쳤다.
  “네.”
  대답하는 순간 도토리 열매는 떨어졌다.
  ‘톡톡! 톡! 톡! 톡!’
 
  큰 나뭇가지에 부딪치고 옆 소나무 가지에 또 부딪쳤다.
  ‘톡! 토토독!’
  소리가 작아지더니 도토리 열매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엄마 나무에 매달려 있던 나머지 도토리 열매들도 눈을 크게 뜨고 봤지만 순간 일어난 일에 놀라울 뿐이었다.
 
  “어디로 갔지?”
  “모르겠어.”
  “나도 못 봤어.”
  “엄마는 봤어요?”
  “아니.”
 
  엄마 나무는 가지를 길게 뻗으면서 떨어진 도토리 열매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까?”
  엄마는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엄마를 부르지 않고 보이지 않아서 안심이 되었다.
  “엄마!”
 
  멀리 떨어진 도토리 열매는 소리쳤다. 엄마 나무가 보이지 않아서 조금 무서웠다.
  “여기가 어딜까?”
  도토리 열매는 눈을 살짝 뜨고 주변을 살폈다. 큰 소나무가 많았다. 파란 하늘이 잘 보였다.
  “멀리 왔을까?”
 
  도토리 열매는 혼자서 하늘을 보며 말했다. 엄마를 불러도 대답이 없으니 멀리 온 것 같았다.
  “안녕!”
  “깜짝이야.”
  등 뒤에서 거미 한 마리가 갑자기 나타난 도토리 열매에게 인사했다.
  “안녕.”
  “어디서 왔니?”
  “저쪽 도토리 마을에서.”
  “도토리 마을은 반대쪽인데.”
 
  “그래?”
  “응.”
  “그럼 그쪽에서 온 걸 거야.”
  “어디서 온 것도 모른단 말이야?”
  “잘 모르겠어.”
  “반갑다.”
 
  “나도 반가워.”
  도토리 열매는 거미 친구가 생겨서 안심이 되었다.
  “여기서 뭐하는 거야?”
  “먹이를 사냥중이야.”  “어떤 먹이?”
 
  “파리, 모기, 잠자리, 나비, 매미, 하루살이 등등.”
  “사냥해서 뭐하려고?”
  “그게 내 밥이야.”
  “그렇구나.”
 
  거미줄을 치고 먹이를 사냥하는 것을 처음 본 도토리 열매는 신기했다. 엄마가 주는 수액만 먹고 자란 도토리 열매는 거미가 사냥하는 모습을 보고 배우고 싶었다.
  “잘 숨어야 할 거야.”
  “왜?”
  “이곳은 멧돼지가 지나가는 길이야.”
  “정말?”
 
  도토리 열매는 순간 두려웠다. 엄마 나무에 상처를 입히고 많은 도토리 열매를 먹어치우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멧돼지 소리만 들어도 무서웠다.
  “땅 속으로 숨을 게.”
  “알았어.”
  “내가 그 위에다 거미줄을 칠게.”
  “좋아. 나만 잡아먹지 않으면.”
 
  “도토리는 먹지 않아.”
  “다행이다.”
  “곧 겨울이 오니 흙 속 깊이 들어가야 해.”
  “깊이 숨으면 널 볼 수 없잖아.”
 
  “나도 따뜻한 동굴로 들어갈 거야.”
  “그럼 언제 볼 수 있어?”
  “따뜻한 봄이 오면 볼 수 있어.”
  “따뜻한 봄!”
  “응.”

  거미가 떠나자 도토리 열매는 흙 속으로 몸을 숨겼다.
  “엄마는 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을까 차가운 공기가 온 몸을 얼게 만들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고 눈이 내렸다.
 
  “좀 더 깊이 들어가야겠어.”
  도토리 열매는 추운 겨울을 땅 속 깊은 곳에서 보냈다. 가끔 햇살이 비출 때는 몸을 깨내서 말리기도 하면서 지냈다.
 
  하얀 눈이 며칠 동안 계속 내리기도 했다. 바람이 무섭게 불더니 머리 위에 있던 거미줄도 날려버렸다. 추운 겨울은 하루하루 지나갔다. 아직도 골짜기와 큰 나무 아래는 하얀 눈이 쌓여있었다.
  “봄이 오면 저 눈도 녹을까?”
  겨울 동안 눈이 왔다 녹고 또 왔다 녹는 것을 봤다. 도토리 열매는 너무 신기한 자연의 모습에 놀라웠다.
 
  “눈은 따뜻한 햇살을 이길 수 없구나!”
  소복이 쌓인 눈이 따뜻한 햇살에 녹아내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도토리 열매는 햇살의 가치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봄이 빨리 오면 좋겠다. 거미도 보고 싶다.”
  햇살에 녹아내린 눈이 땅을 적셨다. 도토리 열매를 덮은 흙도 물컹물컹 해지더니 도토리 열매를 부플 게 만들었다.
  “내 몸이 부풀어 오른다. 어떡하지?”
  도토리 열매는 온 몸이 부풀어 올라서 무서웠다.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들렸다.
 
  “왜 이러지?”
  따뜻한 햇살은 대지에 남은 눈을 녹이기 시작했다. 도토리 열매가 숨은 주변의 눈도 다 녹였다. 도토리 열매는 몸 어딘가가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다.
  “아프다!”
  도토리 열매가 벌어진 틈 사이로 작은 잎이 솟아났다.
  “싹을 틔웠구나!”
 
  동굴에서 나온 거미가 이제 막 태어난 도토리나무를 보고 말했다.
  “응.”
  “이제 나무가 되었구나!”
  “정말?”
  “그래. 신비롭다.”
 
  “고마워.”
  오랜 기다림 끝에 도토리 열매에서 싹이 났다. 도토리 열매에서 잎이 나오는 것을 처음 본 거미는 한 참을 쳐다봤다.
  “내가 나뭇잎을 가지고 와서 덮어줄게. 아직 추우니까.”
  “고마워.”
  거미는 멀리까지 가서 나뭇잎을 가지고 와서 어린 도토리나무를 덮어주었다.
 
  어린 도토리나무는 엄마 나무가 멀리 날아가야 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이렇게 나를 키우려고 멀리 가라고 했구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엄마 향기가 나는 듯해서 어린 도토리나무는 마음속으로 엄마를 불렀다.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를 엄마를 부르고 또 불렀다.
 
  “엄마!”
  하지만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엄마 곁에서 살겠다고 한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내가 나무가 되다니 믿어지지 않아.”
  어린 도토리나무는 파란 잎이 신기해 보고 또 봤다.
  “이 모습을 엄마가 보면 좋아할 텐데! 내가 빨리 크면 엄마가 보일거야. 동생들도 보고 싶다.”
 
  도토리나무는 아침 일찍 일어나 따뜻한 햇살을 맞이하고 열심히 운동도 했다. 그리고 아치 이슬을 먹고 비가 오면 물도 많이 마셨다.
 
 가끔 거미가 오면 함께 노래도 부르며 놀았다. 나비와 꿀벌도 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무럭무럭 자랐다.
 

도토리가 싹이 났다.

먹히지도 않고,

오랫동안 땅 속에 남아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마침 누군가에게 살짝 밟혔는지

눈이 녹으면서 살포시 싹이 났다.

<작가의 도록에서>

 

  도토리가 싹이 났다.
  먹히지도 않고,
  오랫동안 땅 속에 남아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마침 누군가에게 살짝 밟혔는지
  눈이 녹으면서 살포시 싹이 났다. 

  

“세상에 도토리나무다! 나도 나무가 되고 싶었는데?”
 진달래꽃이 만발하던 봄날 숲으로 달려간 소녀는 도토리 열매가 싹을 틔운 것을 봤다.
  “안녕하세요.”
  “나도 나무가 되고 싶은데…….”
  나무가 되지 못한 소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그럼 내 곁에서 나무가 되어주세요.”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제는 나무가 될 수 없어.”
  “그렇군요.”
  “겨울을 잘 이겨냈구나. 무럭무럭 자라서 도토리 열매를 많이 선물해주기 바란다.”
  “네. 무럭무럭 자랄게요.”
  도토리나무는 크게 대답했다. 사람들에게 도토리묵을 맛있게 먹게 해주고 야생동물들의 식량을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무럭무럭 자라고 싶었다.
 

  우리는 한 그루의 도토리나무라도 잘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처럼 신비로운 생명의 탄생을 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자연이 주는 혜택을 잊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꽃향기가 가득한 봄날, 어린 도토리나무는 오래오래 낮잠을 잤다. 그리고 꿈속에서 엄마를 만났다.
  “엄마!”
 

  “나무가 되었구나! 축하한다.”
  엄마는 어린 도토리나무를 꼭 안아주었다.


원본 기사 보기:해피! 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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