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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曜 隨筆> 한복용 ‘내가 선택한 방식들’
“종종 무턱대고 부딪히는 쪽을 택했다”
기사입력  2020/12/18 [01:18] 최종편집    한복용 수필가

 

▲ 한복용 수필가  

 

감이 오면 무작정 저지른다.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재는 편이 아니다. 감이 오면 무작정 저지른다. 손해를 보기도 하지만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여행을 하거나 영화를 볼 때, 또는 독서를 할 때, 사전정보를 접하지 않는다. 나의 방식은 그냥 부딪혀보는 것, 일단 마주하고 보는 것이다. 먼저 알아보고 다가가면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무모하다고 할 수 있지만 호기심은 기대 이상으로 확산된다. 오해하고 오독(誤讀)하면서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기도 한다. 그 방식이 무식에 가깝긴 해도 남들 다 하는 쪽은 시시했다. 이런 방식은 중학교 1학년 음악 시간에 처음 경험했다.

 

음악 선생님은 음반 하나를 가져와 우리들에게 들려주며 감상문을 써보라 했다. 나는 처음 듣는 연주곡을 감상하며 글을 썼다. 아마도 그때 나는 한적한 시골의 전경을 묘사했던 것 같다.

 

바람이 등장했고 새소리가 있었고 금방이라도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만 같은 태양의 위태로움을 그렸지 싶다. 감상문을 제출한 후 선생님 말씀을 들으며 나는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숙였다. 그 곡은 카미유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였다. 반 친구들은 알고 있었던 듯 고개를 끄덕이며 선생님 말씀에 경청했다.

 

다음 음악시간에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선생님께서 내 감상문을 친구들 앞에서 읽으셨다. 연주곡과 전혀 관계없는 감상문이지만, 내 글을 읽으면서 선생님이 빠져들었다고 하셨다. 다 읽고 보니 그 연주곡에 맞는 것 같다고도 하셨다.

 

무작정 부딪칠 때의 설렘

 

그런 경험 때문은 아니었지만, 나는 종종 무턱대고 부딪히는 쪽을 택했다. 그중 여행이 그랬다. 국내여행은 물론 해외여행을 할 때도 나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

 

나의 무모함에 그럴듯한 변명을 달자면, 그럴만한 시간이 모자라서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보다는 무작정 부딪칠 때의 설렘이 좋았던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의 낯선 기분은 여행지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사람을 만날 때도 그랬다. 어떤 사람이냐고 미리 묻지 않는다. 선입견을 피하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묻는다는 자체가 만나는 사람에 대한 결례라는 생각에서였다. 처음 만나는 사람은 몇 마디 대화를 통해 계속 만나야 할지 아닐지가 정해진다.

 

가령 말이 쓸데없이 많다거나, 갑자기 호의적으로 다가올 때 이쪽에서 주춤하게 된다. 그 사람의 말하는 입을 보거나 제스처, 손가락 길이를 보기도 하는데, 특히 얼굴상에 관심을 둔다. 입 주변에 무엇이 묻었거나 언행이 산만하면 곤란하다. 의상은 단정했으면 싶고 손톱은 짧게 정돈되어야 좋다.

 

영화를 선택할 때 평점을 보지 않는다. 추천을 받지도 않는다. 그래서 영화는 실패할 때가 많다. 좀이 쑤시는 것을 견뎌가며 상영이 끝나기를 기다리기도 하고, 상영 내내 졸다가 나올 때도 있다.

 

요즘에는 아니다 싶을 때 그냥 일어서서 나온다. 책 선택은 더 말할 바가 못 된다. 내 취향에 맞는 번역자나 출판사에 따라 결정된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 문학에 문() 자도 몰랐던 때 설렘부터 앞세웠던 나는 그 대가로 페널티를 부여받아야만 했다. 아주 쉽게 접근한 죄. 파면 팔수록 어렵다는 것을 얼마 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무모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이런 취향에 대해 무모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여행 갔을 때 그곳의 문화를 몰라 실수를 하거나 답답할 때도 있지만 오히려 새롭게 접하는 일상들이 즐겁다.

 

가이드의 설명이 없어도, 대화가 통하지 않아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해도 그저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곳을 걷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가끔은 하릴없이 빈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해변을 걷기도 하고 재래시장을 배회하기도 한다.

 

사진기에 담아온 그때 그 풍경들은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남들이 그 나라 그 도시의 어떤 이야기들을 할 때 나는 그들이 지나친 골목에 대해 앙증맞은 풀에 대해 길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에겐 그런 경험들이 소중하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내가 거닐었던 골목골목이 눈에 가득 들어찬다. 큰돈 들고 가서 고작 가져온 것이 그 정도냐고 물어도 할 수 없다.

 

좋은 말인 줄 알고덤벼들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수필을 알고 수필로 등단한 자가 아니다. 문학을 하고 싶었던 참에, 얼떨결에 선배 수필가의 손에 이끌려 수필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내게서 수필가적 소양이 보인다고 했다. 그게 좋은 말인 줄 알고 무턱대고 덤벼들었다.

 

문학에 문() 자도 몰랐던 때 설렘부터 앞세웠던 나는 그 대가로 페널티를 부여받아야만 했다. 아주 쉽게 접근한 죄. 파면 팔수록 어렵다는 것을 얼마 되지 않아 알게 되었다.

 

그저 있었던 일을 기억에 의존해 나열하면, 쓰고 싶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옮겨 적으면 되는 줄 알았다. 부족한 독서량이 글쓰기에 있어서는 재앙에 가까운 것임도 알았다. 습작이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운 작업인 줄도 뒤늦게 터득했다.

 

나보다 나중에 시작한 이가 나를 제치고 앞서갈 때의 무력감이라니. 이렇듯 쓰디쓴 고배를 몇 잔 마시고 또 마셔도 내가 어디쯤에 와 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내세울 건 없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픔이 있은 후에 그 상처에 딱지가 생기고 살이 단단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새로운 나를 발견할 때마다 스스로 대견하다. 쭉정이로 시작한 내가 빈 콩깍지 안에 조금씩 알맹이를 키우고 있지 않은가. 알고 있다고 어설프게 깝작대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다.

 

아예 몰랐기에 새로운 것들을 담을 수 있었다. 남들보다 더디지만 차근차근 나를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은 더 없는 보물이 되었다.

 

지금도 나는 예상하지 않은 시간 안에 있다. 전혀 계산하지 않은 밤과 밤 사이에 있다. 창밖에 음식물 쓰레기 나르는 차가 도착한 시간은 언제나처럼 그 시간이지만 나는 소리를 듣고 시간을 확인한 후에야 그렇다는 것을 알 뿐이다.

 

인생은 그런 것이 아닐까. 짐작할 뿐 경험하지 못한 시간을 걷는 일. 아직 살아보지 못한 시간을 위해 걸어가지만, 그 시간들이 전혀 두렵거나 무서울 필요가 없는 것. 기다리고 있던 시간과 공간을 맞이하기 위한 설렘이 있는 것. 그렇기에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는 대로 걷게 되는 것 말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알 수 없는 일과 시간들이 내 앞에 펼쳐질지 모르지만 나는 그 일들을 만나기 위해 기꺼이 내딛어야 할 오늘의 첫발을 움직여본다. 한 발짝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을 나의 새로운 세계가 궁금해지는 밤이다.

 

프로필

2007에세이스트에서 수필, 2016인간과 문학에 평론 등단

隨筆集 : ‘우리는 모두 흘러가고 있다’ ‘지중해의 여름’ ‘청춘아! 아프지 말자

꽃 에세이집 꽃을 품다

()한국수필문학진흥회 이사, 인간과문학파 회원, 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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