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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曜 隨筆>송 마 나 ‘늙은 벌레의 행복’
기사입력  2020/12/24 [23:01] 최종편집    수필가 송마나

그레고리 잠자’(Gregor Samsa)

 

▲ 수필가 송마나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난 그레고리 잠자’(Gregor Samsa)는 자신이 흉측스런 벌레로 변해 버린 것을 발견했다.

 

그 유명한 카프카의 변신첫 문장이다. 그 벌레는 꿈틀거리며 기어다니는 귀여운 벌레가 아니라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혐오하는 곤충이다. 다리가 여러 개고, 등판은 딱딱하고, 배에는 주름이 있는 바퀴벌레 같은 갑충이다.

 

12, 나는 잠들지 못하고 몸을 뒤척인다. 입안이 소금밭처럼 버석거린다. 살며시 일어나 바스라질 것 같은 몸피를 이끌고 더듬더듬 부엌으로 기어간다. 찔끔찔끔 마신 물이 말라붙은 식도를 뚫고 느릿느릿 흘러내린다. 그 길은 꿀꺽꿀꺽 마셨던 물이 넘쳐흘렀던 옛길이다. 환갑이란 정오가 지나면서 시간은 불가항력적으로 빨리 흐른다. 이때부터 시간은 낡은 육체 안에 벌레를 키워나간다.

 

풋내 나는 열무김치 맛을 잃어버렸다. 씁쓸 오묘한 커피 향기를 잃어버렸다. 눈이 침침한지는 오래되었다. 좋아했던 책에 눈길이 멎어도 문장들은 흐릿한 왕국으로 떠나간다. 애써 붙잡아보아도 그들은 뿌연 안개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그들이 떠나면서 흘렸던 사유의 파편들을 유리잔에 남은 포도주처럼 음미하며 홀짝거려야 한다.

 

목소리도 이상해졌다. 누가 불러 대답하는데 곤충처럼 찍찍거리는 소리가 났다. 목소리가 사라져버렸다. 말을 잃고, 언어를 상실한 것이다. 예전에 직립 보행을 했던 탓에 재채기는 의지와 상관없이 터져 나온다. 이때 비말 입자를 타고 튀어 오른 지저분한 언표(言表)들이라니.

 

어린아이의 얼굴은 아직 언어로 조각되지 않은 얼굴이다. 나의 얼굴은 비루한 언어들의 잡화상이다. 시간의 낙인이 찍힌 나의 얼굴은 불타버린 지푸라기 같은 형상이다. 아무리 나의 언어를 긁어모아도 불탄 지푸라기는 무게가 나가지 않는다.

 

사회나 가족으로부터 소외

 

변신에서 그레고리 잠자가 갑충으로 변한 것을 사회나 가족으로부터 소외되는 현상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주인공이 어두운 나락으로 떨어지는 부정적인 상황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이런 고정된 생각이 내 귓가를 끊임없이 울려대는 북소리가 되어 밤잠을 설치게 한 건 아닐까?

 

설령 세상 밖으로 밀려날지라도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은 세상의 기원으로 현존하는 것을. 내 비록 불모의 외로움 속에 누워있지만, 혹시라도 심연에 벌레의 작은 알이 잠겨있다면 그것을 부화하여 살찌우리라. 어쩌면 그 벌레가 탈각하여 자유롭게 날아오를지도 모르니까.

 

들뢰즈도 카프카처럼 벌레-되기를 주목했다. 그렇다면 벌레-되기를 들뢰즈가 말한 대로 리좀’, ‘탈영토화’, ‘도주선같은 개념으로 포착하면 안될까? 옛것을 읽고 배우되 그 영토에 뿌리내리지 않고 새로운 탈주선을 만들어 그것을 가로질러 간다.

 

리좀(Rhizome)은 줄기가 뿌리와 비슷하게 땅속으로 뻗어나가는 뿌리줄기다. 그것은 다른 줄기의 어디든 달라붙어 연결될 수 있고, 또 다른 줄기가 맞대어 이어질 수 있지만, 접속한 줄기들이 어느 한 점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리좀은 나무가 갖고 있는 계통적인 질서가 아닌 뿌리혹들의 자유로운 발아다. 덩이뿌리는 어떤 지점에서든 물, 바람, 동물과 같은 외부 요인과 접촉하여 새로운 줄기를 생성한다.

 

나무는 혈통 관계지만 리좀은 결연 관계로 선을 만들되 점을 만들지 않는다.”(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천개의 고원, 김재인 옮김, 새물결 2001. 54.)

 

되기는 존재가 아닌 생성에 관한 사유라고 할 수 있다. ‘되기devenir/생성은 무에서 유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에서 다른 존재로 변이되는 것이다. 어떤 것들과 만나고 섞이면서 이전의 상태가 소멸되고 다른 종류의 상태가 출현하는 것이다.

 

고정된 의미를 재생산하는 통념에 반하여 예전과 다른 의미를 창출한다. 낡은 이념으로 굳어있는 체제의 벽을 헐어 있다에서 되다로 새로운 물결을 생성하며 흘러간다. 그것은 세상을 버리고 길을 떠나는 방랑이나 방황이 아닌 기존의 세계로부터 벗어나려는 열린 탈주선이다. 일상적인 사회와 가족, 그 위계질서와 오이디푸스적인 양태에서 벗어나 탈영토화하는 삶을 말하는 것 같다.

 

그레고리 잠자는 여동생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려고 거실로 기어나갔다. 그리고 이렇게도 음악 소리에 감동을 느끼는 자도 동물 이란 말인가? 내가 바라던 미지의 양식(糧食)에 이르는 길이 열리는 것같다.”고 읊조렸다.

 

그레고리의 벌레-되기가 음악과 결부되어 이중의 탈영토화가 펼쳐진다. 잠자는 나야말로 사람이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먹어야 하는 미지의 음식이 음악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나도 잠자처럼 사람이 아닌가? 내가 먹어야 하는 미지의 양식은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전에 먹지 않았던 것을 먹을 때, 내가 전에 읽었던 책과는 다른 책을 읽을 때, 내가 이전에 말했던 언어와는 다른 언어를 토해낼 때, 예전에 없었던 그 무엇인가가 내 각질과 영혼 속에서 새롭게 생성되어야 한다. 그것이 나의 미지의 숨결이 되리니.

 

벌레가 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 전에 그레고리 잠자는 누이동생이 원했던 바이올린을 연주하도록 그녀를 음악원에 보내려는 계획을 품고 있었다. 그러면 누이동생이 감동의 눈물을 쏟을 테고, 그레고리는 그녀의 목에 입맞춤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말이 좋아 입맞춤이지 흡혈이다.

 

갑충이 사람의 목에 입을 맞춘다. 말이 좋아 입맞춤이지 흡혈이다. 뱀파이어는 부모가 뱀파이어라서 뱀파이어인 것이 아니다. 뱀파이어는 생식세포에 의존하여 번식하는 것이 아니라 신경세포의 혈류를 타고 확산된다. 자신의 존재를 혈연에 의한 수직적인 관계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흡혈의 욕망은 수평적으로 번져나간다. 뱀파이어에게 물리면 뱀파이어가 된다. 그레고리가 누이동생을 물었다. 물린 여동생이 그레고리가 된다.

 

들뢰즈도 카프카론에서 뱀파이어의 흡혈을 철학적 논의에 삽입하지 않았던가. 요즘 뱀파이어는 트렌드의 하나가 되어버렸다. 소설이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뱀파이어들은 하나같이 꽃미남으로, 이들은 어둠 속에 머물지 않고 인간 사회에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활보한다. 뱀파이어가 흡혈하는 피는 생명의 정수(精髓)이며, 활기(活氣)의 순환이다. 글을 쓰기 위한 창조적인 힘이다.

 

누구나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권력 체계 속에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겨내며 살아가야 한다. 새로운 피를 흡혈해서라도 기필코 살아가는 것은 생의 충동이며 삶의 욕망이다.

 

사회와 가족이란 압력과 관성에 묶여있던 타율적인 존재가 자신에게 내재된 힘, 의지, 욕망을 흡혈하여 자율적인 존재로 바뀌어간다.

 

탈주자들은 박제-되기를 거부하며 낡은 허물을 벗고 새롭게 태어난다. 극렬한 삶의 억압 속에서도 그것을 뚫고 탈주하여 새로운 영토에서 유목하는 그레고리 잠자는 결코 패배자가 아니다. 잠자의 아버지가 그토록 싫어하던 아들이 죽었다고 기뻐하며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딸[잠자의 여동생]이 바로 그레고리 잠자가 아닌가.

 

새벽 3, 이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잠자가 벌레로 변신하여 공허하고도 평화롭게 죽어갔던 시간이다. 아니, 그레고리 잠자는 흡혈이라는 뱀파이어-되기로 거듭 변신하면서 리좀의 뿌리줄기처럼 세상을 향하여 뻗어나갔다.

 

나는 잠자처럼 가는 다리로 기어서 책상 앞에 앉는다. 내가 먹어야 하는 미지의 양식을 발견한 것이다. 늙음이란 시간의 지층에서 문학 이란 탈주선을 타고 탈영토화한다. 나는 문학 세계의 내밀한 정수에서 전복적인 사유를 흡혈한다.

 

굳어있는 위계적인 지식을 해체하고 낡은 신체를 초월하여 글감이 꿈틀거리는 출구로 나아간다. 예술은 시간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글 쓰는 흡혈 에너지가 멈추지 않는한 늙은 벌레는 행복하다.

 

송마나 프로필

2016에세이문학으로 수필 등단

2017한국산문으로 평론 등단.

共著

(), 인문학에 빠지다

불교로 읽는 고전문학

모과 한 알

보다 느끼다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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