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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한국 근대 ‘선교교육의 아버지’ 아펜젤러(상편)
기사입력  2020/12/28 [00:34] 최종편집    소정현기자

45일 부활주일 언더우드와 함께 제물포 도착

선교사들 한국어 교육 맡을 정도로 한국어 능숙

 

구습타파! 최초 근대식 교육기관 배재학당 설립

독립운동 산실서재필 윤차호 이승만이 대표적

 

▲ 아펜젤러는 188545일 부활주일에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서언해'를 손에 들고 제물포에 도착했다.

 

출생과 성장배경, 그리고 한국행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26~1902611)1885년 조선에 입국하여 활동한 미국 감리교(북감리회) 선교사이다. 한국어로는 아편설라(亞篇薛羅)라는 이름을 썼다.

 

아펜젤러(Henry G. Apenzeller)는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함께 미국 북감리교회에서 한국에 파송한 안수받은 최초의 선교사로서 한국 프로테스탄트 선교의 개척자로의 그의 선교활동과 사업은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눈부신 개척적인 것으로서 그의 공헌은 한국 교회사적으로는 물론 현대사적인 면에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1858-1902)185826일 미국 펜실베니아주 서더튼(Souderton)에서 스위스계 아버지와 독일계 어머니로부터 출생했다.

 

아펜젤러의 가문은 루터와 함께 아울러서 종교 개혁의 양대산맥인 스위스의 쯔빙글리(Zwingli)의 전통신앙을 이어받은 집안으로, 1735년 미국으로 이민해 살기 시작했다.

 

1차 대각성운동이 뉴잉글랜드 전역을 휩쓸던 17201740년대, 독일 이민자들은 펜실베이니아 여러 곳에 독일개혁교회를 설립했다. 100년 후인 1828년 찰스 피니가 이곳에서 설교하면서 놀라운 부흥이 임했다. 처음 설립된 독일개혁교회는 3,000명이 모이는 필라델피아 최대 교회로 성장했다. 아펜젤러의 아버지 기드온과 어머니 마리아가 출석하던 사우더튼의 독일개혁교회(Immanuel Leidy’s Church)도 이즈음 설립됐다.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난 아펜젤러의 머니는 독일어로 자녀를 양육했다. 그래서 아펜젤러는 12세까지 독일어가 편했다. 메노나이트파(Mennonites)와 개혁교회 전통에서 성장한 그는 부모의 뜻에 따라 펜실베이니아 웨스트체스터학교에 진학했다.

 

이 학교는 1812년 설립된 주 정부의 공교육 시범학교로 1871년부터 해마다 160명의 학생들을 선별해 교육시켰다. 메노나이트는 종교개혁 시기에 등장한 개신교 교단으로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는 재세례파의 일파다.

 

1883년 미국의 전국신학생 선교대회는 아펜젤러에게 해외선교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심어주었다.

 

개혁교회에서 감리교단으로 옮겨

 

아펜젤러는 이곳에서 공부하는 동안 웨스트체스터 제일장로교회를 출석했다. 그러던 1876106, 그는 특별 집회에서 뚜렷한 회심을 체험했다. ‘죄에 대한 회개, 성령의 내주하심, 믿음의 확신이 생겼다.

 

이후 1878년 펜실베니아 랭케스트에 있는 프랭클린마샬대학에 입학하면서, 그 지역에 있는 랭케스트제일감리교회에 출석하며 감리교인이 된 것이다. 1879420일에 좀 더 활동적인 신앙생활을 위해 감리교회로 교적을 옮겼다. 그는 스미스 목사가 시무하는 랭카스터 제일감리교회 기도모임과 성경공부에 참석하면서 그곳 영적 분위기에 매료됐다. 감리교가 개혁교회보다 더 편하게 느껴졌다.

 

아펜젤러는 1878년에 랭카스터에 있는 개혁교회의 프랭클린 앤 마샬 대학(Franklin and Marshall College) 인문학과에 진학했다. 유명한 교회사가인 필립 샤프가 오랫동안 봉직하던 곳이다. 1787년 독일개혁교회가 설립한 이 대학 인문학과는 입학 때부터 높은 수준의 고전어 실력을 요구했다. 독일 이민자들이 세운 대학이라 독일문학, 특히 괴테문학 연구가 활발했다.

 

그는 대학에서 헬라어와 라틴어는 물론, 문리 역사 심리학 독어를 수강하며 인문학의 기초를 다졌다. 훗날 그가 한글 성경번역과 문서선교에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인문학적 소양 덕분이었다.

 

아펜젤러가 1882년 문학사(B.A.) 학위를 받고 졸업하게 된다. 아펜젤러는 이제 프랭클린 마샬대학을 졸업하고 가을에 감리교 계열의 뉴저지 소재 메디슨의 드루신학교(Drew Theolgocial Seminary)에 입학하여 3년의 정규과정을 마치게 된다.

 

당시 그곳은 역사가 짧았지만 강력한 영적훈련소였다. 학교 카탈로그에 졸업생 한 사람 한 사람이 언제 회심했는지를 기록할 정도로 회심을 중시했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24명의 동료 졸업생 모두 회심을 경험했다. 그가 해외선교 비전을 구체화한 것은 신학교 2학년 때였다.

 

그는 1883102529일 하트포트에서 전국 31개 신학교 350명의 학생 대표들이 모여 제4회 전국신학생 선교대회를 개최할 때 드루신학교 대표로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마침 언더우드도 미국 뉴저지주에 소재한 뉴브룬스위크 신학교 대표로 참석했다. 선교대회는 아펜젤러에게 해외선교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심어주었다.

 

즈음하여 아펜젤러는 18841217일 엘라 제이 닷지(Ella J. Dodge)와 결혼했다. 이어 아펜젤러는 감리교 한국선교부(the Korea Mission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의 첫 선교사로 파송을 받게 된 것이다. 아펜젤러는 1885114일 드루신학교 교수들과 학생들의 축복을 받으며 한국으로 향했다.

 

22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파울러 감독에게 안수를 받고 갓 결혼한 아내 엘라 닷지와 함께 이튿날 아라빅호에 몸을 실었다. 그 배에는 스크랜턴 의사 부부와 그의 모친인 메리 스크랜턴 여사도 동승했다.

 

18852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아라빅 배에 승선하여 227일 일본 요꼬하마에 도착을 하였다. 이미 일본에서 성공적으로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맥클레이 선교사의 환영을 받고, 그의 집에 얼마동안 머물면서 조선에 관한 많은 정보를 입수하였다.

 

24일간의 항해를 거쳐 227일 일본 요코하마에 도착한 이들은 35일 맥클레이 선교사 자택에서 제1회 한국선교사회를 조직했다. 여기엔 개화파 거두 박영효와 성경 번역의 선구자 이수정도 참석했다.

 

때마침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파송을 받고 요꼬하마에서 이수정으로부터 한글을 배웠던 언더우드(H. G. Underwood)를 만나 함께 조선에 갈 준비를 했다. 이수정이 이미 출간한 마가복음서를 한글로 번역한 책을 한 아름씩 안고 조선으로 떠나는 제리호 배에 승선을 하였다.

 

부산에는 42일에 도착하였고, 45일 부활주일에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서언해를 손에 들고 언더우드와 함께 제물포에 도착했다.

 

아펜젤러는 자신의 일기에 이런 내용의 글을 써 놓았다. “우리는 부활절에 이곳에 도착했다. 오늘 사망의 빗장을 산산이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주께서 이 나라 백성들이 얽매여 있는 굴레를 끊으사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빛과 자유를 허락해 주옵소서!”

 

▲  한국 전통식 예복으로 단장한 아펜젤러 선교사

 

우선 순위 한국어 습득에 매진

 

그의 이름을 예수라 부르십시오. 그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1887년 성탄절 아펜젤러가 한국어로 처음 설교하면서 택한 성경구절이다. 그는 평생 마태복음 121절 말씀을 붙들었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한국어 습득을 무엇보다도 우선 순위에 두었다. 그는 조선 말로 글을 썼다. 그는 한국어 습득에 매우 힘들어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특히 선교 첫해에는 정착하기 위해 해야 될 일들이 산적해 있음에도 한국어 연습을 게을리하거나 미루지 않았다. 연이은 언어 소통의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이내 한국어에 매진하였다.

 

이후에 아펜젤러는 한국에 왔던 신임 선교사의 한국어 교육을 전담할 정도로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게 되었고 한국어에 정통하여 한·영 문법, 사전 등을 수정·보완하게 된다. 특히 선교사들의 성서 번역을 아펜젤러가 주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 서적, 교육 관련 서적의 번역, 유창한 설교는 선교를 향한 열정과 그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다.

 

그는 유창하고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복음전도자요 설교자였다. 성경 언어와 독일어는 물론 프랑스어까지 능숙하게 읽어낼 정도의 탁월한 어학 실력은 성경 번역에 유감없이 발휘됐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고린도전후서 창세기 신명기를 비롯한 많은 신구약 한글성경이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17년 전 조선 땅에 첫 발을 내딛은 이후 한글 성경번역은 아펜젤러가 가장 열정을 쏟은 사역 중 하나였다. 아펜젤러가 도착하기 전, 조선인들은 이미 자기 말로 된 성경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만주에서 활동하던 로스 선교사가 번역한 이 성경은 이북 사투리가 워낙 심하게 섞여있어 보편적인 사용이 어려웠다.

 

아펜젤러는 1890대한성교서회’(현 대한기독교서회) 회장으로 취임하며, 앞서 자신이 설립한 삼문출판사를 통해 성경출판과 번역 그리고 각종 선교잡지 보급에 열을 올렸다.

 

1890년 로스역 성경 개정판인 누가복음젼을 출판하고, 다시 1892년에는 마태복음젼을 출판하였다. 1893년 언더우드 선교사를 비롯한 다섯 명이서 성경번역자회를 구성하였다. 마침내 1900년 한글 신약전서가 완성됐다. 190099, 정동제일교회에서는 완역된 신약성서를 봉헌했다. 아펜젤러 사후 9년 만인 19113월 구약전서 번역이 완성되며, 조선인들은 완성된 한글 성경을 손에 쥘 수 있었다.

 

▲  한국 근대 선진교육의 효시가 된 배재학당 학생들

 

민족선각자 배출의 산실 배제학당

 

아펜젤러가 우선적으로 착수한 교육사업의 중요성은 두 가지 면에서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그 첫째는 복음전파의 한 방편이었고, 그 둘째는 그 당시 개화기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한 나라의 새로운 지도자 양성이라는 점이다.

 

아펜젤러의 선교활동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그의 선교교육활동이었다. 아펜젤러는 한국에 있어서의 선교활동을 시행함에 있어서 교육사업을 우선적으로 시작하였다.

 

18857(고종 22), 아펜젤러는 한 달 먼저 도착한 스크랜턴 선교사/의사(William Benton Scranton, 1856~1922)의 집 한 채를 빌려 교실을 꾸며 학생 둘만으로 학당을 시작한다. 고종은 이듬해인 1886년 배양영재(培養英材)의 줄임말인 배재(培材)를 넣어 배재학당이란 교명과 편액을 하사한다. 이것이 오늘날 배재중고교, 배재대학교의 전신임은 잘 알려져 있다.

 

아펜젤러가 18866월에 창설한 배재학당(培材學堂,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은 고종 지어준 이름으로 정부에서 인가받은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이었다. 그는 배재학당의 당훈을 慾爲大者 當爲人役크게 되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다른 사람의 부림을 받아야 한다로 정하고 구 시대의 봉건적 지도상이 아닌 새 시대의 지도자상을 지향하는 교육을 실시하여 마침내는 새로운 나라 건설에 이바지하고자 하였다.

 

이 민족 앞에 아펜젤러는 케케묵은 중국의 학식에 짓눌려 있던 젊은이들 대신에 유능한 양성소에서 근대적 삶을 영위할 자질을 갖춘 수백 명의 교사들이 아펜젤러에 의해 배재학당(培材學堂, The Hall for the Rearing of Useful Men)에서 배출되었다.

 

그러기에 배재학당의 교육 목적은 기독교인 양성과 근대 국가의 인재를 배양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배재학당에서는 성경과 영어를 비롯하여 인문·사회·자연과학 등 근대 교육의 교과목을 가르쳤다.

 

교과목은 한문·영어·천문·지리·생리·수학·수공·성경 등이었다. 이러한 교과목 외에도 배재학당에서는 체육시간에 서양식 운동인 야구·축구·정구·농구 등도 소개하였다. 또 특별활동 시간에는 연설회·토론회 등도 장려하였다.

 

이렇게 출발한 배재학당은 그후 날로 늘어가는 학생을 수용하기 위하여 큰 교사(校舍)가 필요했다. 1887년에는 서울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 르네상스식 벽돌 건물로 교사를 짓기 시작하여 1888년에 완공하고 교장으로 이후 줄곧 봉사하였다. 아펜젤러의 배재학교 보고서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학생들 가운데 가장 우수한 학생들은 기독교인이다. 이것은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리고 배재학당에서는 처음부터 학생들에게 복음(福音)에 대하여 의무적으로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학교생활에서나 가르치는 모든 학과에서 의식 혹은 무의식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기에 학당훈(學堂訓)으로 욕위대자당위인역(欲爲大者當爲人役)’, 즉 크게 되려는 사람은 마땅히 남에게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내세운 것도 성경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태복음 202628)라는 예수의 교훈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 후 이 당훈은 배재의 정신이요, 교육의 목표이며, 실천이고, 또 생활이 되었다.

 

아펜젤러는 배재학당 안에 협성회라는 토론회를 조직하고 독립협회의 서재필, 윤치호 등을 강사로 초청해서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의식과 독립 정신을 고취시켰다.

 

배재학당 협성회(協成會)는 서재필(徐載弼)이 동교(同校)에서 개화운동의 한 방법으로 지리학을 강의하게 된 것을 기회로 이루어졌는데, 그 창립 목적은 첫째 충군애국지심(忠君愛國之心)을 기르고, 둘째 회원의 친목을 도모하며, 셋째 서로 협조하여 학습과 선행을 이루며, 넷째 전국 동포를 계몽하자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배재학당 안에 삼문출판사라는 인쇄소를 만들고, 서재필 윤치호 등과 함께 독립신문을 편집하였다.

 

이승만은 배재학당 시절부터 아펜젤러의 제자로 사제관계 이었고 서재필이 귀국하여 배재학당에서 가르치게 되면서부터 이승만은 또한 그의 제자가 되어 만민공동회에서 활약하다가 만민공동회에 대한 총 검거령이 내려지고, 18991월 체포되어 6년간의 옥고를 치르게 된다.

 

18991228일 이승만이 아펜젤러에게 보낸 서신이다. 존경하는 선생님께 제 부친께서 선생님의 크신 도움에 감사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우리 집이 아주 곤경에 처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황량한 겨울이기 때문에 이곳 어둡고 축축한 감방은 요즈음 너무나 춥습니다. 대부분의 수형자들은 의복과 음식, 그리고 모든 것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선생님의 자비로 저는 지금 옷이 충분하며, 그래서 추위가 더 이상 저를 괴롭히지 못합니다. 다시 한번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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