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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曜 隨筆> 수필가 성민선 ‘최상의 행복’
“행복은 모든 인간의 의무다.”
기사입력  2020/12/30 [23:35] 최종편집    수필가 성민선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

 

▲ 수필가 성민선   

50대에 들어섰을 때 내가 불교를 접한 것은 누가 인도했거나 포교를 해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 책 한 권에 끌려서다. 그 책은 해인사 지족암에 계시던 동곡 일타 스님(1929~1999)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이다.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얼마나 그리웠으면 그 책 앞으로 바로 달려가서 붓다의 말씀을 안아드렸을까. 가톨릭 냉담자였던 남편도 이슬비에 옷 젖듯 어느새 같은 자리에 섰다. 우리는 같이 바라보고 나아갈 새로운 이정표와 목표점이 생긴 것이 행복했다.

 

아직 처음이라 갈 길이 멀 때였는데 나와 함께 성지 순례를 갔었던 스님이 예고 없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마침 저녁 식사 때여서 우리가 먹는 대로 아주 빈약한 저녁을 대접한 일이 있다. 한 번도 그때 어떻게 스님이 우리 집에 오시게 됐냐고 묻지 않았지만, 사실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날 스님은 A4 용지에 큰 글씨로 불교를 쉽게 설명 해주고 가셨다. 이고득락(離苦得樂), 발고여락(拔苦與樂), 자리이타(自利利他) 같은 것들이었다. 그때 생각하기를 불교가 인생의 고통과 즐거움에 대해 가르치고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로운 것을 가르치는 종교라면 안심하고 공부해도 되겠다 싶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을 두고 여러 경전과 스님들로부터 사성제(四聖諦), () 사상, 연기법(緣起法), 팔정도(八正道), 열반(涅槃) 그리고 상락아정(常樂我淨) 같은 교의를 배우면서 점차 불교가 행복의 종교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가르친다.

 

행복은 모든 인간의 의무다.”

 

그렇게 말한 승려가 바로 달라이라마 존자이다.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서 살아있는 관세음보살로 추앙받고 있는 달라이라마 스님은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다고 했다.

 

그는 자애와 연민으로 세상 사람들을 대하는 성인이며 조국 티베트를 잃은 디아스포라, 유민의 고통 속에서 절망하지 않고 정진하며 세계 사람들에게 행복을 퍼트리는 유쾌한 승려이다. 달라이라마뿐 아니라 티베트 스님들은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 자체가 용기 있는 일이며 태어난 이상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가르친다.

 

나는 애써 행복을 찾으려고 발버둥 치지 않게 되었다. 이미 행복한 존재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위가 없는 최상의 행복을 설하신 붓다의 가르침에 접하고 보니 내 안의 가장 가까운 곳, 타고난 본성 속에 깨달은 자 붓다(覺者)의 행복론이 이미 갈무리되어 있음을 알았다.

 

이미 2,600여 년 전 붓다에 의해 설해진 최상의 행복경은 존재하는 대로의 행복을 펼쳐 보이고 있다. 왜 그것이 행복인지 설명도 하지 않는다. 그냥 느껴보면 알 수 있는 행복, 시대가 달라져도 변함없는 행복이 거기에 제시되어 있을 뿐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영원한 것인지. 입을 벙긋하면 이미 그르친다는 선가(禪家)의 개구즉착(開口卽錯)도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우리 집에서는 설이나 추석 때 불교식으로 차례를 지내면서 부처님께 감사하고, 모인 가족들이 길지 않은 최상의 행복경’(빨리어로 Maha Mangala Sutta)을 함께 읽는다. 아이들이 따라주는 것이 고맙다.

 

상도 선원의 미산 스님이 현대사회에 맞게 공들여 번역한 내용에 공감이 가는 모양이다. 부모인 우리가 간 다음에 저희들이 어떻게 할지는 모르지만 그건 우리가 간여할 문제는 아니다. 저희들이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최상의 행복경을 알려 주고 들려준 것만으로도 족하다.

 

거창한 것부터 소소한 것까지

 

최상의 행복경에는 행복의 종류가 다양하다. 거창한 것부터 소소한 것까지 크기도 모양도 다르고 다채롭다. 그런데 그 하나하나가 모두 최상이라는 절댓값으로 매겨지고 있으니 더군다나 그 행복 하나하나가 머리로 헤아려야 알 수 있는 형이상학적인 행복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 생활에서 느낄 수 있고, 손에 잡히는 행복이니 인간이 행복하지 않기도 어렵겠다 싶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살다가는 자체가 대단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처음 이 경전은 모든 존재들이 업()에 따라 거치는 여섯 개의 세계인 육도(六度) 중 천상에 사는 천인(天人)들이 부처님께 찾아와서 어떻게 해야 최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느냐고 여쭙는데서 시작된다.

 

천인들은 지은 공덕이 많아 하늘에 태어났지만, 그 복이 다하면 천상을 떠나 육도의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태어나야 하는 존재이기에 그들에게도 최상의 행복은 알아두어야 할 법() 즉 진리인 것이다.

 

붓다는 먼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매한 사람들과 사귀지 않고/ 현명한 사람들과 가까이 하며/ 훌륭한 스승들을 공경한다.”

 

부처님 가르침의 특징은 제일 중요한 것을 맨 먼저 자리에 놓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해탈에 이르는 여섯 가지 실천 덕목을 말하는 육바라밀(六波羅密) 가운데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보시 바라밀인데 보시가 나머지 다섯 가지의 기초가 된다는 의미가 있고 그 하나만으로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처럼 최상의 행복 가운데 제일 수승(殊勝)한 윗자리가 우매한 자를 멀리하고 현명한 사람들과 가까이하며 훌륭한 스승들을 공경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부처님뿐 아니라 동서고금의 성인, 종교인, 철학자, 사상가들이 인간의 근본 과제로 제시했던 너 자신을 알라.”를 풀 수 있는 방편이 되겠다.

 

우매한 자가 누구인지는 달라이라마가 답해준다. 우매한 자는 같은 실수를 또 하는 사람이다. 현명한 이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 자기 실수를 인정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가 곧 현인이고, 훌륭한 스승이 될 수 있다. 우매한 사람들과 사귀지 않는 것만도 이미 지혜로운데, 현자와 스승들을 가까이 공경하는 삶을 살면 더 바랄 무슨 부족함이 남아있겠는가.

 

그 다음 부처님의 말씀이 이어진다. “알맞은 곳에 살며/ 공덕을 쌓고/ 스스로 바른 서원을 세우고 산다.”

 

이는 삶을 잘 살고 있는 현명한 사람들의 존경스러운 자세이기도 하다. 남들을 돕고 사는 유복한 개인적 삶에서 더 나아가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대승적 발원을 세우고 그 발원을 꼭 이루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우고 사는 것이다. 서원은 발원한 것을 반드시 실현하겠다는 다짐이다.

 

이하의 말씀들은 특히나 요즘의 현대인들에게도 꼭 맞아 들어가는 말씀들이며 또한 수행의 지침이 되는 말씀들이어서 일반인이나 수행자나 모두 귀 기울여볼 만하다.

 

기술을 숙련하고 많이 배우고 계율을 잘 지키고 늘 실천하며, 유익한 언어 생활하는 것

동반자 부모자녀 잘 돌보는 것

베풀며 정의롭게 살고 있으며 친지를 보호하고 보살피는 것

남에게 비난받을 행동 하지 않는 것

악함을 멀리하고 술 절제하며 덕행을 쌓아가고 복을 짓는 것

존경과 겸손함을 길러가면서 만족과 감사함의 마음으로서 알맞은 때에 따라 법문을 듣는 것

인내와 용서 관용 온화함으로 진지한 태도 갖춰 수행을 하며 선지식 친견하여 법을 논하는 것

열심히 정진하고 청정히 살며 거룩한 진리세계 관조하여서 궁극적 열반 세계 실현하는 것

세상의 온갖 일에 동요치 않고 안온과 담담함이 충만하여서 슬픔과 욕심에서 자유로운 것 등.

이렇게만 수행하고 살아간다면 그 어떤 경우에도 좌절치 않아 언제나 평온함이 함께할 것이며 그것이 더없는 행복이라 하였다.

 

▲ 저 많은 행복 가운데 어느 한 가지를 느낄 수 있다면 많은 다른 것들이 저절로 같이 따라오는 것 같다 

 

어느 한 가지를 느낄 수 있다면

저 많은 행복 가운데 어느 한 가지를 느낄 수 있다면 많은 다른 것들이 저절로 같이 따라오는 것 같다. 어떤 조건 속에서도 위와 같은 마음과 자세를 갖는다면 행복은 공기처럼 우리들의 생활 속에 깃드는 것이라 할까.

 

비록 현재 행복한 조건보다 고통의 조건이 더 많고 크다고 할지라도 그 고통 속에는 행복의 씨앗이 들어있다. 연기법의 차원에서 행복의 씨앗을 심고 노력으로써 행복을 가꾸는 자에게 결과로서 행복의 열매를 맛볼 수 있음을 부처님은 은연중에 말씀하신다.

 

행복도 고통도 그 실체는 변하지 않는 영원이 아니라 공()이며 무상(無常)임을 알면 영원한 행복이나 영원한 불행은 없다. 이 사실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궁극적으로 행복도 고통도 따로 없고 행복에 대한 집착과 고통에 대한 집착에서 모두 탈피할 수 있다. 그것이 중도(中道)이고 무심(無心)이며 열반(涅槃)이고 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고 부처님은 가르쳐주시는 것 같다.

 

감히 사족 하나를 달고 싶다. 최근에 만난 친구 하나. 내 얘기를 언제나 들어주고 어떤 얘기도 지지해주며 그녀에게만은 못할 얘기, 부탁하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는 그런 절친 하나를 두게 된 것이 내겐 또 하나의 최상의 행복이란 걸! 그런 친구가 가까운 곳에 있어 전화 속에서 어느 때건 도움이 필요할 때 나를 도와주고 있어서 행복하다.

 

 

프로필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

한국산문으로 등단(2012)

수필집: 징검다리꽃, 섬세한 보릿가루처럼

현재 한국산문작가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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