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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한국 근대 ‘선교교육의 아버지’ 아펜젤러(하편)
기사입력  2021/01/02 [15:52] 최종편집    소정현기자

정동제일교회! 한국 개신교 가장 오랜 예배당

1976‘19세기 건축한국 사적 256호 지정

 

17년 사역선박충돌 사고 ‘44세 애석히 순교

아들 헨리 딸 엘리스조선 돌아와 헌신 사역

 

 

▲ 선교사 아펜젤러는 동방의 한 작은 나라, 아직 어둠에 잠겨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예수의 빛으로 밝히기 위하여 죽는 순간까지 이타적 사랑을 실천한 이 땅에 심겨진 한 알의 밀알이었다.

 

한국 최초의 고딕식 정동제일교회

 

헨리 아펜젤러가 18851011일에 정동에 있는 자신의 사택에서 한국인 감리교 신자들과 함께 처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성찬식을 거행한 것을 정동제일교회의 시초로 삼고 있다. 정동제일교회는 한국 최초의 감리교 교회 중에 하나이다.

 

아펜젤러는 18879월 전적으로 예배만을 볼 수 있는 교회용 건물을 구입해 이를 수리하고 교회이름을 베델예배당(Bethel Chapel)이라 하였다. 1894년에는 교인수가 200명을 넘어섰기 때문에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현대식 예배당을 건축하기로 하고, 18959월에 착공하여 1897년 성탄 주일인 드디어 1226일 붉은 벽돌로지어진 예배당을 헌당했다. 국내외의 헌금으로 그 당시 서울에서 천주교성당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봉헌한 것이다.

 

벧엘예배당은 한국 최초의 고딕식 예배당이며 한국 개신교 예배당으로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교회 내부는 평천장(平天障)에 별다른 장식 없이 간결하고 소박하며 기단(基壇)은 석조(石造)이고 남쪽 모퉁이에 종탑을 세웠다. 건물은 벽돌쌓기로 큰 벽체를 구성하고 아치 모양의 창문을 낸 고딕 양식의 교회당이다.

 

이 예배당은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당시 최대의 건물이었으나 1914년 대부흥운동으로 교인수가 2천명 이상으로 늘어나자 1926년 모퉁이 주춧돌을 종각 남쪽 모퉁이 서편으로 옮겨놓고 동으로 10, 남으로 14, 60평형을 증축하여 175평 건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6년에 문화공보부가 19세기 건축물인 붉은 벽돌 예배당을 대한민국의 사적 제256호로 지정함에 따라 이 건물을 헐고 새로 지을 수 없게 되었다. 1년간의 보수공사를 거쳐 2002년 부활절에 재봉헌하였다.

 

▲ 최병헌은 충청북도 제천출신으로 책으로 처음 기독교를 접한 뒤, 1888년 아펜젤러를 찾아가 성경을 얻어 공부했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벌어졌을 때, 아펜젤러는 이곳에서 추모예배를 드렸다. 1918년 우리나라 최초로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하고 성가대까지 구성해 제대로 된 예배를 드렸다. 1922년에는 최초의 여름성경학교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정동제일교회의 초대 담임목사는 아펜젤러선교사가 맡았고, 1902년에 최초로 한국인 최병헌 담임목사가 담임을 맡게 되었다. 교회 앞 마당에는 정동제일교회를 세운 아펜젤러와 최초의 한국인 담임목사였던 최병헌의 흉상이 있다. 왼쪽은 아펜젤러 선교사, 오른쪽은 최병헌 목사의 흉상이다.

 

최병헌은 충청북도 제천출신으로 책으로 처음 기독교를 접한 뒤, 1888년 아펜젤러를 찾아가 성경을 얻어 공부했다. 1893년 세례를 받고 아펜젤러 목사의 신약 성경의 한국말 번역에 적극 협력하였고 배재학당에서 한문을 가르쳤다.

 

최병헌은 원래 한학자였다. 그는 기독교에 입교하기 전에 이미 동양사상에 능통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893년에 그가 5년간의 성경연구를 끝내고 기독교에 입문한 후에는 동양의 여러 종교사상들을 다시 연구하고 평가하는 일에 일생을 헌신했다. 그는 모든 종교(萬宗)를 하나님의 창조세계 안에 있는 문화현상으로 보았으며, 그 모든 종교는 결국 그리스도 안에 성취된다고 보는 입장을 취했다.

 

19025, 김창식과 김기범에 이어 최병헌은 한국감리교회의 3번째 목사가 됐다. 그리고 그는 1903, 아펜젤러 타계 후 한국감리교회의 대표적인 교회인 정동제일교회 담임목사가 됐다. 목회활동 중에도 신학 활동을 계속했는데, 1907년부터는 신학월보에 셩산유람긔’(聖山遊覽記)를 연재했다. 1912년에는 이를 단행본으로 엮어 성산명경’(聖山明鏡)이란 제목으로 출판했다.

 

정동제일교회 담임목사로서 12년 동안 재직했고, 1927년 병으로 사망하였다. 최병헌 목사가 부임하면서 정동교회의 지도력은 선교사들로부터 한인 목회지로 완전히 전환된다. 최병헌 목사가 일생동안 신학적 기초로 삼은 것이 재래종교와 기독교와의 만남의 문제를 어떻게 해명하는 것에 초점 맞추어졌다. 이렇듯 최병헌 목사는 당대 최고의 신학자요, 철학자요, 문인으로서 예수신학의 기초를 집대성한 분으로 널리 추모된다.

 

대한민국 독립에 명료하게 기여

 

▲ 교회 앞 마당에는 정동제일교회를 세운 아펜젤러 흉상이 있다.

정동제일교회에서는 서재필, 이승만, 윤치호, 주시경, 이상재, 남궁억 등이 중심이 되어 독립협회 지회가 결성되었는데, 만민공동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수구파의 모략으로 독립협회는 해체되고 중요한 인물들이 투옥되었다. 그는 감옥을 순례하며 구호와 전도활동을 하였는데 이때 이승만, 이상재 등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배재학당의 초기 학생이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한때 이 교회의 장로로 사역한 것도 기억할 만한 일이다. 이화학당의 학생이던 유관순은 이 교회의 신도였으며, 그의 장례식 또한 이 교회에서 치러진 점으로 미뤄볼 때 정동제일교회가 우리나라의 독립에도 명료하게 기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79415, 감리교 선교 100주년을 기념해 새 예배당을 봉헌했다. 벧엘예배당과 통일감을 주기 위해 붉은색 벽돌을 사용했고 지붕 역시 검은색으로 완공했다. 새로 지은 예배당 1층에 아펜젤러기념박물관을 건립해 생전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각종 기록 등 한마디로 아펜젤러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고인이 번역한 최초의 신약성경, 휴대하고 다닌 성찬기 등도 전시되어 있다. 소재지는 서울시 중구 정동길 46, www.chungdong.org이다.

 

선박충돌 사고 ‘44세의 나이로 순교

 

아펜젤러는 한국에서 선교활동 중 19026레이놀즈미 남장로회 선교사가 개최하는 성서번역위원회에 참석차 목포로 가는 중 군산 어청도 앞바다에서 선박 충돌사고를 당하고, 44세 나이로 순교한다. 당시 상황을 소급하여 정리하여 본다.

 

조선에서 활동하던 각 교단의 선교사들로 조선성서번역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성서번역을 담당한 아펜젤러, 언더우드는 서울에서 선교활동을 하였으나 장로교회의 월리엄 데이비스 레이놀즈’(William Davis Reynolds)는 전라남도 목포에서 목회 사역에 임하였다.

 

그 동안 각자 번역한 초안을 갖고 독회(讀會)를 해야겠는데, 레이놀즈는 그렇게 오랫동안 교회를 비우고 목포를 떠날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서울에 있는 번역위원들이 목포에 가서 독회를 열자고 합의를 보았다.

 

레이놀즈는 미국 남장로교회에서 파송된 선교사·성서 번역가·교육자·신학자였다. 1894년 조선에 들어온 이후, 호남지역의 교회와 학교를 통해 선교활동을 하였고, 1910년에 출판된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의 번역작업을 주도하였다. 신학교 재학 중 레이놀즈는 18919월에 있었던 전국 신학교 해외선교 집회에서 언더우드 선교사와 윤치호로부터 한국선교에 대한 강연을 듣고 한국 선교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언더우드는 예정대로 목포로 내려갔고 아펜젤러는 예기치 못한 일본인들과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하여 한 주간 늦게 제물포를 출발하는 배를 타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아펜젤러의 삶의 마지막이 될 줄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611일 정오, 아펜젤러는 오사카상선회사 소속 구마가와마루(球磨川丸)라는 배에 승선하여 항해하고 있었다. 11일 밤 먼 여행길에 자신의 한국어 어학선생이자 성경번역 일에 동역해 온 그의 조수겸 비서 조한규와 정신여고에 재학 중인 목포 출신의 여학생과 함께 타게 된다.

 

여기에 보울비라는 미국인도 함께 타는데, 보울비는 운산금광(평안북도 동부에 위치)에 있다가 건강이 좋지 않아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구마가와마루의 항해는 비교적 순조로웠다. 맑은 날씨 가운데 해상 상태도 잔잔했다.

 

기소가와마루(木曾川丸)로 이름 붙여진 다른 선박과 일행이 타고 있던 배가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밤이 깊어졌고 밤 11시쯤 맞은편에 배 한 대가 오고 있었다. 기소가와마루(木曾川丸) 배였다. 아펜젤러가 탄 배의 우측을 쓸면서 충돌한 것이다.

 

▲ 근대 교육의 산실이 된 배재대학교(배재학당) 일명 아펜젤러대학     

 

배가 침몰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배를 버리고 탈출하기 시작했다. 사실 아펜젤러에게는 탈출과 생존의 기회가 있었다. 당시 사고에서 생존한 미국인 보울비의 증언에 의하면, 갑판 가까운 곳에 객실이 있던 그는 신속히 탈출하고서도 끝내 배를 떠나지 못했다. 아래 선실에 있던 조한규와 조선인 여학생을 구출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미 물이 허리까지 차오르는데 그는 떠날 생각을 안 했다. 침몰하는 뱃속에서도 자신의 목숨보다 조선인들의 목숨을 지키는 게 최우선인 것처럼 보였다. “빨리 나오세요. 시간이 없습니다!” 일행의 간곡한 외침조차 소용이 없었다. 결국 아펜젤러는 두 사람과 운명을 함께 했다.

 

아펜젤러가 탄 배는 46명의 승객 중 18명이 행방불명 됐다. 안타깝게도 아펜젤러도 그 행방불명 명단에 포함된 것이다. 이 때 아펜젤러의 나이는 44살이었다. 한국에 27살 때 들어왔으니 17년 동안 선교사로 일한 것이다.

 

아펜젤러의 장례식은 1902629일 주일에 치러졌는데, 장례식에서는 이 일로 민족 구원을 위한 애국 애족활동을 기리기 위해 애국가가 불렸고 태극기가 게양되었다. 그는 존스가 회고록에서 술회한 것처럼, 그의 생애를 다하여 끝까지 노력한 것은 한국인을 염려하고 돕는 것이었을 만큼 죽는 순간까지 한국인을 사랑하였던 한국의 영원한 친구였다.

 

아펜젤러의 한국 사랑은 1897813일 조선의 개국기념일에 행한 한국에 대한 주한 외국인의 의무’(The Obligation of Foregin Residents to Korea)라는 연설에서 잘 드러난다. 이 연설은 아펜젤러가 독립협회에서 강연했던 내용으로 한국에 주재했던 다른 어떤 외국인보다 한국 문화와 국가에 대한 존경과 자부심이 잘 드러냈다.

 

우리는 한국을 믿어야 합니다. 한국은 극동의 이탈리아로 멋진 나라일 뿐 아니라 인구도 적지 않습니다.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은 우리 외국인의 역할에 달려 있습니다. 외국인은 한국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국을 올바르게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지난 발자취에 드러난 뛰어난 사상들은 평화의 사상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에도 동일하게 한국을 지지하고 믿어야 합니다.”

 

이처럼, 아펜젤러의 인생과 가르침은 조선 교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조선인들을 위하여 살았고, 조선인들을 위해 일하였다. 조선인들은 그의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되었고, 또한 깊은 애정으로 그를 대하였다.

 

대참사에 앞서 아펜젤러는 1900928, 그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안식년을 맞이했다. 그가 미국 뉴욕으로 귀국할 때 선택한 경로는 일본 나가사키, 중국 상하이, 홍콩, 스리랑카, 아테네, 홍해, 이집트 수에즈, 나폴리, 로마, 스위스, 런던을 거쳤다. 그는 여행지에서 예배를 드릴 때마다 줄곧 한국의 정동제일교회 예배를 상기하며 내 마음은 언제나 한국의 예배를 그리워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아펜젤러는 서울, 평야, 인천, 수원, 공주, 대구, 전주 등지로 여행하며 전도활동을 수행하였다. 한국에서의 아펜젤러의 사역은 그의 사역기간 5년 동안 체중이 180파운드에서 131파운드로 줄어들었을 정도로 열정적인 것이었다.

 

1903616, 그가 설립한 배재학당에서는 아펜젤러의 순교 1주년을 맞아 500여명의 교직원 학생, 그리고 교계 유지들이 모여 추도예배를 드렸다. 추도예배에 참여한 사람들은 새삼스럽게 그를 잃은 슬픔과 허전함을 경험하였기에 그 자리에서 울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아펜젤러의 언행의 착함이 사람 마음속에 깊이 파고든 것을 짐작할 만하다. 1935년에는 아펜젤러 기념비가 정동제일교회에 세워졌다.

 

아펜젤러는 동료들과 손을 잡고 조선 보고지’(The Korean Repository)를 공동으로 편찬하였는데 전질 5권으로 이것은 1902년까지 영어로 쓰인 조선에 관한 중요한 문헌으로 남아 있다.

 

▲ 한국 개신교 예배당으로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정동제일교회 전경

 

이펜젤러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였다.

 

아펜젤러의 유고 당시 아내는 젊었고, 자녀들도 마찬가지였다. 13녀 중에 큰 딸 애리스는 17, 외아들 헨리는 13, 둘째딸 아이다는 11, 그리고 막내 메리는 9살이었다. 이들이 아버지의 선교 사업을 계승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물론 그들은 성장한 후에 조선으로 돌아와 아버지가 생전에 이루지 못한 선교, 교육 사업을 계승하여 발전시켰다.

 

아펜젤러의 장남 헨리 D 아펜젤러’(Henry Dodge Appenzeller, 1889~1953)1920년 배재학당 교장에 취임하여 20년간 학교 발전에 기여하였고, 1940년 일제의 압력에 의해 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으나 해방 후 다시 내한하였다. 한국 전쟁 때는 기독교세계봉사회 한국 책임자로 전후 한국사회의 복구와 한국교회의 부흥에 공헌하였다.

 

장녀 앨리스 아펜젤러’(Alice Rebecca Appenzeller, 1885~1950)도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이화학당(현 이화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교장으로 일하면서 이화학당을 발전시키는 데 큰 업적을 남겼다. 막내인 메리 엘라 아펜젤러 (Mary Ella Appenzeller, 1893~1963) 역시 이화학당의 교수로 한국선교에 헌신하였다.

 

이처럼, 서울 정동에서 태어난 그의 아들 헨리와 딸 엘리스는 대를 이은 선교사로 조선에 돌아와 헌신적으로 사역하다, 해방 후 대한민국이 건국하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아버지를 따라 이 땅에 묻혔다. 조선인들을 최후까지 사랑한 위대한 생애는 그렇게 완성됐다.

 

결국, 앨리스와 헨리는 아버지와 같이 양화진에 묻혔다. 양화진외국인묘원(서울시 마포구 양화진길 46/(02)332-9174)에는 고인의 묘소와 함께, 대를 이어 한국선교사를 지낸 장녀 엘리스와 장남 헨리 부부의 묘소도 마련되어 있고, 1989년에는 배재학교 총동창회에 의해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추모비도 세워졌다.

 

아펜젤러가 사고로 숨진 어청도 바닷가 부근인 전라북도 군산 아펜젤러순교기념교회’(군산시 내초안길 12)와 충청남도 서천 아펜젤러순직기념관’(서천군 서면 서인로 225번길 61)이 건립되어 그를 추모하고 있다.

 

동방의 한 작은 나라, 아직 어둠에 잠겨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예수의 빛으로 밝히기 위하여,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사르던 선교사 아펜젤러는 결국 이 나라의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다. 죽는 순간까지 이타적 사랑을 실천한 아펜젤러는 확실히 이 땅에 심겨진 한 알의 밀알이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요한계시록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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