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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曜 隨筆> 수필가 최 종 ‘용문사 은행나무’
“강렬한 의지와 생기를 뿜어내는자태”
기사입력  2021/01/06 [20:20] 최종편집    수필가 최종

천연기념물 제30용문산 은행나무

 

▲ 수필가 최종  

전철이 용문역에 도착했을 때는 겨울비가 한 방울 씩 떨어지고 있었다.

 

다시 이곳에 온 것은 작년 봄에 봤던 은행나무의 발가벗은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그때 은행나무 앞을 천천히 물러나 뒷걸음치면서 한눈에 본 은행나무 전경은, 긴 수염 점잖게 쓰다듬는 할아버지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연상하게 했다.

 

비가 추적거리는 역 앞에서 차를 기다리는데, 마침 한 대의 택시가 내 앞에 섰다. 냉큼 타고 용문사로 가자고 했다. 빵모자 밑으로 하얀 머리칼이 길게 자란 멋쟁이 운전기사 할아버지는 너무 속도를 내며 달렸다.

 

그는 차 안에 흐르는 빠른 리듬의 노래보다 더 빠르게, 어디서 왔느냐 무엇 하러 가느냐, 심문하듯 말했다. 말이 몹시 하고 싶은 사람처럼 보였다. 연세가 어떻게 되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말이 길어질 것 같아 참았다.

 

주차장에 내려 20여 분 천천히 걸어갔다. 사천왕문을 지나서 용문사 경내에 들어가니 장대한 위용의 은행나무가 나를 압도했다. 천연기념물 제30, 용문산 은행나무다. 잎이 다 떨어진 나무는 어느 부분도 곡선이 없었다.

 

굵은 가시처럼 위로 옆으로 똑바로 뻗은 가지는 높은 기개를 품고 있는 듯했고, 어떤 추위에도 끄떡하지 않을 강렬한 의지와 생기를 뿜어내는 모습이었다. 나무의 높이와 밑동 크기와 잔가지의 무성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듬지는 하늘을 찌를 듯하며 옆으로 길게 뻗은 가지도 이파리가 달리지 않아 흔들림이 없었다. 높이 42m, 가슴 부분 둘레 14m, 밑동 둘레 약 15.2m이고, 옆으로 뻗은 가지는 동쪽 14.1m 서쪽 13m 남쪽 12m 북쪽 16,4m이며, 최장 가지는 28m란다.

 

가지들이 밑으로 너무 쳐져서 여기저기 기둥을 세워 받쳐주었다. 우리나라 은행나무 중 가장 오래되었고 동양에서도 가장 큰 은행나무다. 나이가 무려 1,100세쯤 된다고 한다. 용문사 창건연대와 관련해서 산출해보면 1,500년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의견도 있다. 어떻게 이처럼 오랜 세월을 살아올 수 있었을까.

 

나무뿌리는 지상에 자란 줄기만큼 많고 길다고 한다. 이 은행나무 줄기와 가지를 생각하면 뿌리가 어떠할지 짐작이 간다. 1000년을 훨씬 지난 세월동안 은행나무가 이토록 튼튼하게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길고 튼튼한 뿌리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터이다.

 

이곳에서 50m 안팎으로 한쪽에는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해우소(解憂所)가 있다. 줄기는 뿌리로부터 수분과 영양 공급을 충분히 받았기에 천 년이 지나도록 건강하고 웅장한 나무로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쉼 없이 든든하게 뒷받침해주는 뿌리가 없었다면 어떻게 나무가 잘 자랄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낙엽귀근(落葉歸根), 세월이 흐르면 나뭇잎은 떨어져 뿌리로 돌아간다. 나무를 키우고 도왔던 뿌리에게 거름이 되어주어 보은하는 것이겠다.

 

30년 전 이 은행나무는 중병에 걸렸는데, 식물학자들이 모여 의논하고 연구한 결과 가지를 쳐서 줄이는 처방을 했다고 한다.

 

당시 나무 높이는 60미터가 넘었지만 위로 20미터를 잘라내고 옆으로 뻗은 가지 수도 줄이고 짧게 잘랐다는 것이다. 가지가 너무 많으면 공급된 영양소와 균형이 맞지 않아 전체가 병들 수 있기에 이런 처방을 한 것이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계속 잘 성취해간다고 그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 솟기만 하면, 큰 바람을 어찌 견뎌내며 어떻게 길고 많은 가지와 줄기에 영양소를 공급할 것인가. 분수에 맞게 커가고 분수에 맞게 살아야 바람을 맞아도 쉽게 넘어지지 않고 버텨낼 수 있는 법이다.

 

세종대왕은 이 나무를 귀하게 여겨 정3품 당상관 품계를 주었고, 지금은 은행나무 옆에 86m 높이의 피뢰 철탑을 설치하여 벼락으로부터 나무를 보호하고 있다. 매년 약 350의 은행을 수확하며, 생물학적으로도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된다고 한다.

 

▲ 우듬지는 하늘을 찌를 듯하며 옆으로 길게 뻗은 가지도 이파리가 달리지 않아 흔들림이 없었다. 높이 42m, 가슴 부분 둘레 14m, 밑동 둘레 약 15.2m이고, 옆으로 뻗은 가지는 동쪽 14.1m 서쪽 13m 남쪽 12m 북쪽 16,4m이며, 최장 가지는 28m란다.

 

심었던 나무를 베어버리지 않았다면?

 

할아버지는 앞뜰에 은행나무 한 구루를 심었었다. 내가 열 살쯤 될 때였다. 20대 초반에는 나무가 제법 자라 내 팔 굵기보다 더 굵었고, 키도 2미터를 훌쩍 넘어 자랐었다. 20대 후반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 때 그 집은 마을 사람에게 넘겼다. 그때 은행나무는 제법 나무다운 모습을 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가늘고 키가 그리 크지 않은 나무였다.

 

30대에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옛날 고향 집을 찾아간 적 있었다. 은행나무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어찌 그리 섭섭했는지,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왜 어머니는 시골집을 마을 사람에게 넘겨버렸는지 원망스러웠다. 지금도 고향집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할아버지가 생각나고 연이어 그 은행나무가 떠오른다.

 

어디를 여행하다가 큰 은행나무를 보면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당신이 심었던 나무를 베어버리지 않았다면 얼마나 자랐을까. ‘저 정도는 자랐을지 모르지.’ 마음이 무겁고 안타까웠다.

 

그럴 때면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앞뜰 텃밭 귀퉁이 은행나무는 놀랄만한 거목이 되어 할아버지 모습과 겹치며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지금 그 은행나무가 풍채 좋은 모습으로 살아있다면 언제라도 돌아갈 든든한 마음속 고향집이 거기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용문산 은행나무 앞에서 한없이 왜소해져버린 자신을 느낀다. 내년 봄이면 은행나무는 다시 무성한 이파리를 달고 풍채를 뽐낼 것이다.

 

겨울이지만 나무는 전혀 추위를 느끼지 않은 모습이다. 곧 진초록 새싹을 틔울 것만 같다. 이 세월을 견디어온 나무가 너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오래 버텨 살아온 모든 것은 남다른 무엇이 있을 것이다.

 

최종 프로필 / ‘월간문학등단(수필). 한국수필가협회,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원.<隨筆集>‘깨갱’ ‘온종일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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