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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작가 朴又木’ 혈맥(血脈) ‘가야의 샛별’(2회)
기사입력  2021/01/12 [16:23] 최종편집    작가 朴又木
▲ 작가 朴又木    

수로왕의 둘째공주 비미호가 이끄는 대 선단이 이주할 신천지인 규슈의 야쓰시로를 향해 도두촌(渡頭村)의 별포(別浦) 나루터를 떠나는 날, 나루터에 운집했던 환송인파 속에서 괴나리봇짐을 지고 화살 통을 메었으며 패도를 차고 활을 든 차림을 한 성광 왕자가 아무도 모르게 빠져나와 가야 땅을 떠났다.

 

그의 첫 노정은 신라의 서라벌이었다. 신라의 세자빈으로 출가한 금관가야 야연희 공주의 잉신으로 간 아우 성도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배를 타기 위해 고암나루로 가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행장을 꾸려 나루터로 나갔다. 내륙으로 올라가는 소금장수며 박물장수들로 벌써 붐비고 있었다. 그는 창녕까지 뱃길로 간 다음 옥천리로 가서 관룡산을 오를 예정이었다. 마침 때가 꽃구경하기에 알맞은 시기라 꽃구경도 할 겸 관룡산에 있는 목마牧馬산성에 들러 성묘를 할 생각이었다.

 

그가 옥천리에서 환장고개를 넘어 관룡산 정상에 섰을 때는 오시(午時,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사이)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벌써 상춘객들이 붐비고 있었다. 복색으로 보아 가야인 외에도 신라인이나 백제인도 적지 않았다.

 

목마산성 묘역 가까이로 들어설 때였다.

한 하인차림의 사내가 그를 향해 배트작거리며 달려오며 소리쳤다.

이보시오 젊은 양반, 사람 좀 살려주십시오!”

어지간히도 얻어맞았던지 머리는 헝클어진 채 온통 피 칠갑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저기... 우리 마님을....”

숨이 가뿐 사내가 급한 마음에 묘역을 가리키며 다급한 손사래만 쳤다.

그는 심상치 않은 사태가 묘역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하고 사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뛰어갔다.

 

능역 홍살문을 지나 들어서자 비각 어름께로 다섯 명 사내들이 한 여인을 붙잡고 있는 게 보였다. 그가 신도(神道, 신령이 다니는 길)를 달려 접근하자 사내 셋이 그를 에워싸듯 앞으로 나서며 막아섰다.

 

웬 놈이냐!”

부녀자들을 납치한 놈들이 너희들이냐?”

보아하니 가야 도련님 같은데 개살구 지레 터진다고 괜한 상관 말고 꺼지는 게 신상에 이로울 거다.”

네놈들이야말로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능역을 더럽히려 하느냐?”

 

우리 나리께서 재미 좀 보시는데 능역이 뭐 대수란 말이냐.”

이런 무뢰배 놈들이 있는가. 능역을 더럽힌 죄만도 용서할 수 없거늘 백주에 부녀자를 겁간하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 어디 마음대로 해 보시지.”

 

그렇잖아도 몸이 근질근질하던 참에 잘 됐군. 어디 몸 좀 풀어볼까.” 한 사내가 그에게 몸을 날려 가격했다. 그러나 어이쿠 비명을 내지르며 나가떨어진 쪽은 공격한 사내였다. 이어 두 사내가 기합소리를 지르며 동시에 덤볐다. 그들 역시 순식간에 발길질에 채여 공중제비로 고꾸라졌다.

 

이번엔 그가 선수를 쳐서 여인을 붙잡고 있는 두 사내에게로 달려가 튀어 오르며 발길질로 한 사내를 차고 동시에 수도로 다른 사내를 내리쳤다.

가야제국 수박(手搏) 겨루기에서 장원을 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그에게 무뢰배 몇 명은 상대가 되질 않았다.

 

저기로 끌려간 우리 마님을 구해주세요!” 사내들 손아귀에서 자유로워진 여인이 수복방(守僕房 능지기 거처)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거기로 달려간 그가 문을 와락 열어젖혔다. 사내가 여인을 깔고 앉아 옷을 벗기려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어지간히도 항거를 했던지 여인의 머리는 산발이고 겉옷은 찢겨 벗겨졌고 얼굴은 손찌검 자국에 눈물이 번들거렸다.

 

막 아랫도리를 반쯤 벗겨 내리고 있는 순간에 뛰어든 그의 발길질에 사내는 숨이 컥 막히는 신음소리를 내며 벽에다 머리를 짓찧으며 쓰러졌다. 그가 혼절한 여인의 헝클어진 매무새를 대충 수습한 후 여인을 안고 재빠르게 빠져나와 밖의 여인한테 맡기고는 다시 수복방으로 들어가 사내를 뒤로 팔을 꺾어 잡고는 끌어냈다.

 

사내 무릎 뒤쪽을 가격해 꿇리고는 두 여인을 수복방 옆으로 물러서게 했다. 그사이 정신을 수습한 수하들이 덤빌 기세로 공격 자세를 취했다. “너희들 여기로 와서 무릎 굻고 저분한테 사과하고 능역을 더럽힌 잘못을 빌면 무사히 돌아가게 하겠다.

 

네 이놈들! 어서 이놈을 결단내지 않고서 뭣들 하는 거냐?” 체면이 오물바가지를 뒤집어쓴 터라 분이 머리 꼭대기까지 치민 사내가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수하들이 그 쇳소리에 움찔 놀라 물색없이 저놈 죽여라!’ 하고 소리치며 일제히 그를 향해 달려왔다.

 

그 순간 활시위에서 화살이 떠나는 처음 쉬익 소리가 살기에 짓눌려 가라앉은 능역의 적막을 가르며 울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화살이 시위를 박차고 날아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그 한 소리마다 달려오던 사내들이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저들은 하나같이 허벅지에 화살을 맞았다.

 

그가 저들의 제압을 확인하고 저들 상전한테로 돌아서서 패도를 뽑아 사내의 머리채를 싹둑 잘라내고 옷의 모든 끈을 끊어버렸다. 죽음에 비견할만한 치욕을 안긴 것이다.

 

그제 서야 극도의 공포에 휩싸인 저들이 신음소리를 물고는 엉금엉금 기어와 제 상전 뒤에 엎드려 너무나 극적인 구명의 반전에 안도하고 감격한 두 여인을 향해 잘못을 빌고 그에게 머리를 조아려 빌었다.

 

그때서야 무뢰한들이 절뚝거리며 어도를 걸어 나가는 길로 그에게 구원을 호소했던 하인이 달려왔다. “내 가야 인으로서 저 무뢰배 가야인들을 대신해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부디 저 무뢰한들 만행으로 가야 인에 대한 원한을 삼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마님이라고 불린 여인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한발만 늦었어도 혀를 깨물고 자결하였을 제 목숨을 살려주신 은혜를 어찌 갚을지 모를 저에게 사과를 하시다니요, 당치 않으시옵니다. 가야 어느 가문의 자제이신지 말씀해 주시면 돌아가 꿈에라도 결초보은 하겠나이다.”

 

보은이라니요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사람이 위난을 당한 사람을 보고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인지상정이거늘 그게 어찌 보은을 받을 은공이 되겠습니까, 괘의치 마시고 무사히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가볍게 목례를 건넨 그가 돌아서 떠났다. 마님이라고 불린 여인이 그를 향해 큰절을 했다. 그리고 하인과 하녀의 부축을 받으며 능역을 떠났다.

 

성묘를 마친 그가 관룡 산을 내려와 청도를 거쳐 경주를 지척에 둔 건천에서 단석산을 올랐다. 가야를 떠날 때 소소녀 신녀가 조상 능역의 신도를 밟은 그 걸음으로 단석산의 신령한 굴을 찾아가 사흘 치성 기도를 드리면 신명이 감응하여 일생의 길운을 줄 것이라는 당부를 따르기 위해서였다.

 

성광이 단석산을 오르는 날은 작달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도중에 끼니거리로 사냥이라도 할 셈으로 일찍 나섰는데 이른 아침부터 내린 세찬 비 때문에 사냥도 못 한 채 볶은 콩으로 끼니를 때워야했다. 개울에 넘치고 산길을 지운 짙은 물안개 때문에 산정 가까운 동굴에 도착한 때는 신시(오후 3시에서 5시 사이)가 꽤 기울어서였다.

 

무녀나 신녀가 기도하는 경우를 대비해 준비해둔 졸가리와 장작을 가져다가 모닥불을 피우고 젖은 옷을 벗어 말렸다. 그런데 으슬으슬 한기가 돌기 시작하더니 신열이 오르면서 금시 입안을 말렸다. 수중에 남은 마실 물이라고는 한 방울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맨 몸으로 동굴을 나가 풀숲에 고인 빗물을 떠와 입안을 축였다.

 

신열은 더욱 기승해서 급기야 온 몸이 불덩어리처럼 뜨거워졌다. 그동안 쌓였던 노독에 산간의 찬비 가지 맞은 몸이 드디어 맥을 놓으려나봤다. 사람사이에서라면 문제가 될 게 없겠지만 첩첩산중에서 쓰러지면 아무리 무쇠 같은 몸일지라도 대책이 없을 터 그가 길을 떠난 후 처음으로 위기에 봉착한 것이었다.

 

고열과 허기와 여독에 지쳐 혼도와도 겉은 곤와(困臥)에 떨어졌을 때 그는 애애한 안개를 밟고 동굴 어귀로 들어서는 백발노인을 보았다. 노인은 그에게로 천천히 다가와 손에 든 상록수 나뭇가지를 그의 몸에다 대고 쓸면서 동굴 안이 우렁우렁 울리게 장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작 그 정도의 노정에 보잘것없는 선행을 쌓고 쓰러지다니 그러고서야 어찌 천년만년을 뻗을 혈맥을 세울 수 있을 것 인고, 아직 치러야할 간난신고가 앞날에 첩첩한데 이 외로운 혈혈단신이 천제님의 보살핌이 없이 어찌 그 형극의 길을 가서 보주(寶珠, 소원을 성취하게 하는 신기한 구슬)를 얻으랴. 일어나 나를 따라오너라. 내 그대에게 생명수를 주겠노라.”

 

그는 모든 뼈마디가 어긋나는 것같은 고통을 참고 일어나 그 노인을 따라갔다. 신기하게도 동굴을 벗어나 노야가 멈춘 곳은 달이 휘영청 밝은 옹달샘이었다. 너무나 목이 타서 허겁지겁 손표주박으로 물을 떠올리느라 몸을 숙이는 순간 발이 미끄러지면서 샘으로 고꾸라졌는데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인데도 몸은 사정없이 심연으로 곤두박질로 떨어져 갔다.

 

그가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둥대다 깨어났을 때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사위는 적막할 뿐 어디에도 꿈에 나타난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꿈이 하도 생생하여 그가 관솔불을 켜들고 기억을 더듬어 옹달샘을 찾아 나섰다. 비는 멈췄고 정말거짓말처럼 달이 떠 있었다.

 

조심스럽게 여기저기를 살피다가 달빛 한 자락이 일렁이느라 반짝이는 한 옹달샘을 찾았다. 샘은 산딸기나무들이 온통 에워싸고 있어 여간 눈여겨보기 전에는 알아보기 어렵게 숨어 있었다.

 

그가 꿈에서 당한 실족을 떠올리면서 쪼그리고 앉아 손표주박으로 조심스럽게 물을 담아 올려서 마셨다. 물맛이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는 진기한 맛이었다. 서너 모금에 심신이 상쾌해졌고 두 번째 서너 모금에 생기가 살아났다. 주린 배가 차도록 샘가에 지처인 산딸기를 따서 먹고 샘물을 마셨다.

 

동굴로 돌아온 그가 모닥불 불땀을 돋우고 다시 깊은 잠에 이튿날 오시(午時,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 사이)가 다 기울어서야 잠을 깬 그는 몸살기가 사라졌음은 무론 온 몸에 생기가 넘쳐 몸이 날아갈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서둘러 숲으로 나간 그가 노루 한 마리를 사냥하고 산나물 몇 가지를 뜯어 돌아왔다. 그리고 굴 안에 있는 제단에다노루를 제물로 올리고 간단한 제사를 올린다음 노루를 잡아 구워 배불리 먹고 샘물을 마셨다.

 

그날 저녁부터 목욕재계하고 제단 앞에 꿀어 앉아 기도를 시작했다. 진종일 물 한 모금을 마시지 않고 금식했다. 불도 피우지 않아 사위는 깜깜했다. 밤낮없이 짐승들이 굴속을 기웃거렸고 구렁이가 기어들어와 머물다 떠났으며 새들이 날아들어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그가 무아지경에 들 때 산짐승들도 살의와 경계심을 숨기고 굴속에서 안식을 누린 것이다.

 

사흘간의 기도가 끝나고 밖으로 나온 그가 옹달샘으로 가서 정성들여 목욕재계를 하고는 굴로 돌아와 불을 피운 다음 제단에다 활과 화살통과 패도를 올려놓고 세 번 절하고 빌었다.

 

천제님이시여, 이 몸이 천제님께 의지하여 먼 길을 가오니 장강에 뜬 일엽편주와 같은 신세가 너무 우여곡절의 운명에 이끌려가게 하지 마옵시고 현인과 선인들을 만나 대장부의 야망을 펴게 도아주소서.”

 

머문 자리를 정리하고 옹달샘으로 나온 그가 물을 마시고 대통에다 물을 담은 다음 옹달샘에다 고마운 절을 하고 산을 내려갔다.

 

몸은 가볍고 기운은 넘쳤으며 장래에 대한 야망은 활활 타올랐다. 이제 곧 백제 땅으로 들어가 살게 된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고국의 사로궁이 아무리 왕궁이지만 서자인 자신에게 늘 낯설게만 느껴져 겉돌기만 했던 심신이 자유로운 땅을 밟으니 날개가 돋은 듯 날 것 같았다.

 

사실 사로궁의 왕자로서의 삶은 부자유스럽고 규범에 얽매인 생활이었다. 왕자 신분으로는 야연희 공주와 밀회조차 할 수가 없었다. 해서 기도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신당으로 가고는 했는데 그 때문에 신녀인 소소녀에게 발목이 잡히는 꼴이 되었다.

 

소소녀는 왕실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다. 그 빼어난 미모에다 신통력마저 뛰어나 운수를 귀신처럼 맞추는 것은 물론 다친 마음과 슬픈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데 도통했기 때문에 가야의 신녀로서 그 권위가 막강했다.

 

그런 신녀임에도 성광 왕자와 야연희 공주 사이에 애정이 싹트는 것을 보는 순간 신녀로서 부러워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어기고 그만 성광에게 혼을 빼앗기고 말았으며 두 사람의 인연이 어긋나도록 술수를 쓰기 시작했다.

 

그 술수는 야연희 공주를 신라로 출가하게 만들었고 성광을 백제로 떠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리움이라는 철장 속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더불어 그미의 신통력도 잃어갔다. 매일 신전에 엎드리면 성광이 그리워 눈물을 흘리느라 신전을 더럽히고 신녀의 몸을 육신의 욕망으로 괴롭혔다.

 


원본 기사 보기:투데이리뷰 & 영광뉴스.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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