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영방송 독립 ‘대위기’
지난 9월 3일, 1964년에 제정된 ‘방송의 날’이 환갑을 맞았다. 한국방송협회는 지난 9월 1일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에서 제60회 방송의 날 기념식을 열었다.
방송의 날은 우리나라가 1947년 9월 3일 ITU(국제전기통신연합)로부터 일본의 호출부호인 ‘JO’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적인 호출부호인 ‘HL’을 부여받음으로써 비로소 전파독립과 방송에 관한 독자적 주권을 소유하게 된 것을 자축하는 날이다. 이와 함께 한국방송협회는 대국민 공모를 통해 선정된 제60회 방송의 날 표어 ‘시대를 공유하는 방송, 세대와 공감하는 방송’을 이날 공개했다.
한국방송협회장인 김의철 KBS 사장은 방송의 날 기념식에서 “공영방송의 이사들이 잇따라 해임되고 수신료 분리징수로 공영방송의 재정적 기반이 침식당하는 등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급격하고 작위적 변화는 공영방송 독립과 존립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며 “미디어 공공성은 디지털 대전환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우리사회의 중요한 자산이자 가치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러한 경각심은 윤석열 정부 들어 TV수신료 분리고지, YTN 지분 매각 추진, TBS 지원조례 폐지 등 방송의 위기가 풍전등화의 국면에 있기 때문이다. 여권은 기세를 몰아 KBS 2TV와 MBC 민영화 불씨까지 지피고 있다.
현 정부의 이러한 방송 기상도를 감안이라도 하듯, 코로나19 여파로 4년 만에 열린 지난해 기념식에는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이 한덕수 국무총리의 축사를 대신 전했으나, 올해 한 총리는 축사를 보내지 않았다. 또한 지난해 기념식에 참석한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과 달리 지난 8월 28일 취임한 이동관 신임 방통위원장은 올해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 방송장악 시나리오 ‘그 현실성’
‘방송장악’ 우려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공영방송을 두고 장악 논란이 불거지고, 이로 인한 사회적 피해가 상당하다. 정치권력이 국가권력을 장악하면 방송을 조종할 수 있는 구조와 법체계가 상존하고 있어 방송장악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5월 30일 한상혁 위원장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면직 이후 ‘반쪽짜리’ 체제로 운영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위) 5기는 불과 석 달도 안 돼 한국방송 수신료 분리 징수 시행령 통과, 공영방송 이사(장) 5명 해임, 이사 3명 임명,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장) 2명 해촉과 1명 위촉을 강행하고 사실상 활동을 마무리했다.
방통위는 8월 21일 전체회의를 열어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권태선 이사장을 해임했다. 방통위는 이날 문화방송과 관계사 경영 및 문화방송 사장 선임 과정에 대한 관리·감독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권 이사장 권한을 박탈했다.
방문진의 설립목적은 공영방송인 문화방송의 독립적인 운영이며, 이에 따라 MBC 사장의 임명권, 해임권 등을 갖고 있고 경영전반에 대해 감독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또한, 매년 MBC의 영업이익 중 15%를 가져간다. 2022년부터 기자 및 PD 양성기관 ‘MBC저널리즘스쿨’도 운영하고 있다.
방문진 임원의 구성은 3년의 임기를 가진 9명의 이사와 1명의 감사(監事)로 구성되며 이사장은 이사들의 호선으로 선출된다. 9명의 이사와 1명의 감사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임명한다. 이들 인사는 “방송에 관한 전문성 및 사회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하여 방송통신위원회가 임명한다.”라고 나와 있으나 관례적으로는 여당에서 추천한 이사 6명과 야당에서 추천한 이사 3명으로 구성된다.
지난 8월 17일,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일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으로 출국하기 직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정연주 위원장과 이광복 부위원장 해촉안을 재가했다. 방송과 인터넷에서 해롭거나 불법인 정보를 심의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정연주 위원장은 임기 만료를 11개월 앞두고 전격 해촉된 것이다. 남영진 한국방송(KBS) 이사장과 정미정 한국교육방송공사(EBS) 이사 해임안을 처리한 지 사흘 만이다.
이어 속전속결로 윤 대통령은 이동관 방통위원장 임명을 강행한 뒤 방통위와 공영방송 이사회의 구도를 여권 다수로 바꿔 공영방송 사장들의 교체를 밀어붙이고 있다. 방송의 날을 앞둔 8월 30일 KBS 이사회는 김의철 KBS 사장 해임 제청안을 논의했다. 이사회가 여권 주도로 재편된 직후 벌어진 일이다. 조만간 안형준 문화방송(MBC) 사장 해임 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해임된 인사들은 법원에 그 적정성 여부를 구하는 줄 소송을 진행 또는 예고하고 있어 그 귀추가 극히 주목된다.
● 해촉처분 취소소송과 집행정지 신청
지난 8월 21일, 한국방송·방문진(MBC)·교육방송(EBS) 전·현직 이사 31명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영방송 이사들의 해임은 위법의 연속”이라며 △법적 근거와 절차를 무시한 공영방송 이사들 해임 중단·취소 △한국방송 수신료 분리 징수 철회 등을 요구했다.
지난 8월 31일, 서울행정법원의 두 재판부는 1시간 간격으로 집행정지 사건의 첫 심문을 열었다. 집행정지를 구하는 이는 문화방송(MBC)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권태선 전 이사장과 한국방송(KBS) 이사회의 남영진 전 이사장이었다. 또한 이들은 각각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윤석열 대통령을 상대로 해임처분 취소소송도 냈다.
이에 앞서 지난 5월 30일 윤 대통령이 면직한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은 면직 취소소송을 하고 있다. 또한 지난 8월 17일 윤 대통령이 해촉한 정연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장과 이광복 전 부위원장도 해촉처분 취소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두 사람의 집행정지 첫 심문은 오는 9월 7일 열린다.
정연주 위원장은 15년 전 KBS 사장에서 해임됐을 때를 언급하며, 현 정권과 다시 싸우겠다며 법적 대응도 시사하고 있다. 2003년 KBS 사장에 취임한 정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당시 배임 혐의로 기소돼 해임됐지만, 소송 끝에 2012년 무죄 판결을 받았고, 해임 무효 소송에서도 승소했다. 아울러 지난 8월 30일 이사회에 해임제청안이 상정된 김의철 한국방송 사장은 “향후 진행 상황에 따라”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공영방송 사장 임기 보장의 중요성은 법원에서 “해임안 의결은 법적 절차와 근거를 완전히 무시한 원천 무효”라며, 원고의 손을 들어준 공통적으로 확인된 사안이다.
재판부는 “사장의 임기 제도는 공영방송의 독립성·공정성·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필요에서 마련한 것이어서 그 해임사유에 따른 해임처분의 기준은 다른 공공기관 등과 비교하여 볼 때 더 높게 해석하여야할 필요가 있는 점”을 강조하면서 “해임처분은 한국방송공사 사장의 해임에 관한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인정했다.
이처럼, 원고 쪽에서 승소 가능성을 매우 크게 보고 있고, 본안 소송에 앞서 집행정지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