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일본이 추진 중인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방폐장)에 부산·경남과 지척인 쓰시마市(대마도)가 추진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홋카이도 등이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일본 본섬과 멀면서 한국과 가까운 쓰시마섬의 경쟁력은 한국 입장에서는 최근 원전의 해양방류까지 겹치면서 국민정서상 매우 불쾌한 입장일 수밖에 없다.
쓰시마市는 일본 규슈 본토에서는 약 132km, 한국 부산에서는 약 49.5km 거리에 있다. 일본 나가사키현에 속하며 인구는 약 3만470명이다. 지리적 조건 때문에 예로부터 한국과의 인연도 깊고 매년 많은 한국인이 관광으로 찾는 곳이다.
지난 9월 13일 쓰시마 섬 시의회가 일본 정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선정 절차에 참여하기 위한 청원안을 통과시켰다고 마이니치신문·요미우리 신문 등이 보도했다. 시의회는 전날 해당 청원을 찬성 9명, 반대 7명, 결석 1명의 의결로 통과시켰다. 건설에 대한 ‘풍평피해’(風評被害)를 우려하는 어협과 시민단체 등 6개 단체가 내놓은 반대 청원 6건은 기각했다. 풍평피해는 ‘바람처럼 떠도는 소문’에 의해 피해를 입는 것을 일컫는다.
‘처분장 선정조사’는 해당 지방자치단체 응모로 시작하지만, 응모 권한은 기초자치단체장의 몫이다. 쓰시마 섬 히타카쓰 시장은 “정례 시의회 기간인 이달 9월 27일까지 청원안 수용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쓰시마 시의회는 2007년에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유치를 논의했지만, 당시는 유치 반대를 결의했다. 그러나 인구가 갈수록 줄면서 타개책으로 다시 유치론이 고개를 들었고 청원안이 시의회를 통과한 것이다.
지자체장이 유치를 신청하면 최종처분 사업을 담당하는 원자력발전환경정비기구(NUMO, 일본 경제산업성 소관)가 조사해 후보지 적합성 여부를 평가한다. 대마도를 포함해 3곳이 유치에 나섰는데, 매립 대상인 핵연료 찌꺼기는 강한 방사능을 분출하는 고준위 핵폐기물이다.
핵폐기물 처리 장소로 최종 선정되기 위해선 ▽ 1단계로 2년간 지도와 자료 등을 살피는 문헌조사는 과거 기록을 통한 화산과 단층 활동 조사를 한다. ▽ 2단계로 약 4년간 굴착한 암반을 분석하는 개요조사 ▽ 3단계는 정밀 조사로, 약 10~14년간 지층을 뚫고 안정성과 적합성을 판단하는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현재 ‘문헌조사’를 실시한 지자체는 홋카이도에 있는 숫츠정(町)과 가모에나이정(町) 두 곳뿐이다. 그 외에는 유치 신청에 손을 든 지자체가 없다. 하지만 홋카이도(광역지자체) 지사는 두 지역에서 문헌조사의 다음 단계인 개요조사로 넘어가는 것에 대해 재차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쓰시마市에 방폐장을 유치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 된 것은 지난 6월이었다. 건설업자 중심인 상공회가 어려워진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며 방폐장 유치 청원을 시의회에 제출한 것이다. 이들이 방폐장을 요구하게 된 배경에는 일본의 심각한 지방소멸 문제가 있다.
쓰시마시의 인구는 1960년 약 7만 명이었지만, 현재는 약 2만8000명으로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이로 인해 지역의 기간산업인 어업과 건설업이 쇠퇴했다. 그나마 한국 관광객 유치로 버티던 관광업도 양국 관계 악화와 코로나19 창궐 속에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쓰시마 섬 유치론자들은 일단 문헌조사에 응하면 일본 정부로부터 최대 20억엔(약 183억원)의 교부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정부를 상대로 다른 지역 민원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당시 반대 측 관계자는 “한 번 조사를 받아들이면 나중에 반대해도 국가가 놓아주지 않는다”며 “20억엔은 지역 발전을 위한 기폭제가 아니라 시한폭탄”이라고 지적했다. 핵폐기물 최종처리장 후보지 유치가 현실화되면, 이 현안은 지진과 화산 활동이 잦은 인접국 한국과도 분명 무관하지 않다.
● 한국은 ‘중저준위 방폐장’만 건설
‘방사성폐기물’(Radioactive Waste)은 방사능을 띤 물질 중에서도 인간이 더 활용할 수 없는 것들을 가리킨다. 핵쓰레기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방사성폐기물에는 3종류가 있다.
▽ ‘저준위 폐기물’은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한 장갑, 걸레 등이 이에 해당된다. 사실상 90% 이상의 방사성 폐기물이 이 저준위 폐기물이다. ▽ ‘중준위 폐기물’은 방사선 차폐복, 원자로 부품 같은 물건이다. ▽ 고준위 폐기물은 전체 방사성 폐기물 중 5%도 안 되는 주제에 방사선을 99% 이상 뿜어대는 괴물질들이다. 여기에 속하는 대부분은 사용한 핵연료인데, 이것들을 녹여서 우라늄과 플루토늄만 뽑아내는 걸 ‘핵연료 재처리’라고 부른다.
정부는 2005년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를 먼저 선정하기로 하고 신청 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주민투표 끝에 경주에 중저준위 방폐장 건설을 확정했다. 정부는 해당 지역에는 3,000억 원의 유치 지원금과 8조 원 상당의 지역지원을 확약했다. 또 해당 지역에는 더 이상 ‘사용후 핵연료’ 관련 시설을 짓지 않을 것을 법으로 약속했다.
실제 이 약속에 따라 중저준위 방폐물 처분시설 유치지역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졌고, 그 법 18조에는 ‘사용후 핵연료 관련 시설은 유치지역에 건설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조항이 명기되었다. 이렇듯, 경주지역 ‘중저준위핵폐기장’은 우여곡절 끝에 조성되었다.
이와 관련, 핵발전소에서 사용을 마친 핵연료는 열을 식히기 위해 수년간 붕산수가 들어간 수조에서 보관해야 한다. 더욱이 경주 월성의 핵발전소는 천연 우라늄을 사용한 중 수로형 원자로이기 때문에 사용후 핵연료의 양이 다른 핵발전소에 비해 월등히 많다. 따라서 모든 사용후 핵연료를 수조에 보관할 수 없어 별도의 건식저장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한수원은 이를 ‘임시저장시설’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우리나라 원자력법 어디에도 ‘임시저장’이란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비롯해 다른 나라는 영구적으로 인간 생활권에서 사용후 핵연료를 격리하는 ‘영구처분(Final Disposal)’과 영구처분이 이뤄지기 전까지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하는 ‘중간저장(Interim Storage)’ 시설이 있을 뿐이다.
미국, 일본, 독일, 캐나다 등 많은 나라가 사용후 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을 건설해 50~60년 정도 운영하고 있다. 영구처분장을 구하기 힘들어서 중간저장이 계속 반복될 수 있어 중간저장 시설이 사실상 핵폐기장처럼 변할 수 있다는 우려가 항상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캐나다 정부는 사용후 핵연료 영구처분 기술과 부지를 확보할 때까지 최대 300년 동안 중간저장을 이어갈 계획을 확정 짓기도 했다.
● 아직 ‘중간저장시설 공론화’ 머물러
현재 한국은 수명이 끝나 해체 작업에 들어가는 대한민국 최초의 상업용 원자로 고리1호기의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할 저장시설을 필히 건설해야 한다. 고리뿐만 아니라, 영광, 울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고도 조만간 포화되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은 1960~70년대 도농 간 격차가 있고 원전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던 시절 원전 시설에 대해서는 수용성이 높았지만, 1980년대 들어서 떠오른 핵폐기물 처리 문제에 대해 주민 반응은 반전됐다. 특히 원전에 대한 수용성은 스리마일섬 사고(1979), 체르노빌 사고(1986), 후쿠시마 사고(2011)를 거치면서 극심한 변화를 겪었다.
이 시기에 원전 사고를 겪은 서구사회에서는 원전 안전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지만, 국내에서는 이 과정이 부족했고, 정부도 안전 문제보다는 경제적 보상을 제시하는 데에 급급했다. 경주에 중저준위 방폐장이 유치된 것에 대해서는 “당시에는 후쿠시마 사고도 있기 전이라, 위험에 대한 사회적 담론 형성도 부족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일단 중저준위 이상의 방폐장 시설 관련 공론화가 일말의 성과를 거두려면 공정한 신뢰 속에서 진행될 수 있도록 제도적 방안을 마련한 상태에서 주민을 끝까지 설득해야 한다. 그만큼 불확실성은 크고 인간의 기술은 아직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