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전면 침공’
지난 10월 7일 유대인의 고유 명절인 초막절(수코트) 이후 이어진 안식일이던 새벽 아침,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 정파 하마스는 ‘아크사 홍수(Al Aqsa Flood)’ 작전에 따라 이스라엘 남부 지역에 로켓 수천 발을 무차별 발사했다. 또 하마스 전투원들은 육지와 해상, 공중으로 이스라엘 내 22개 마을과 군기지에 침투했고, 공중 침투의 경우 패러글라이더까지 이용했다.
이스라엘 동남부 네게브 사막의 음악 축제장에서 하마스의 로켓포탄과 무장대원들의 총격을 피해 달아나던 행사 참가자 중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유대 명절 초막절을 축하하기 위해 전날 오후 11시부터 시작해 밤새 열린 야외 축제였다. 행사장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이스라엘의 국경 근처에 있었다.
예루살렘 포스트 등 현지 언론은 이스라엘 보건부를 인용, 이스라엘에서 300명이 넘는 주민이 숨지고 최소 1500여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하마스가 통치 중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보건당국도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으로 가자지구에서 최소 232명이 죽고 1700명 가까운 주민이 부상했다고 집계했다.
이번 하마스의 전면적 공습에 이스라엘인들의 심리적 충격은 미국 9·11 테러에 필적한다.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성명에서 가자지구를 ‘무인도’로 만들어버리겠다고 공언하면서 “목적 달성까지 거리낌이나 중단 없이 계속될 공세를 개시했다”고 밝힌 것이다. 추후 가자지구의 전면적 육군 침공에는 이스라엘이 8만명 예비군을 동원했던 2014년 때보다 더 많은 병력이 투입될 수 있다는 전언이다. 여기에는 가자지구에 대한 전력 공급 중단과 외부로부터의 연료 및 물품 전달 차단이 포함된다.
이스라엘의 최우방국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하마스의 공격을 맹비난하며 이스라엘을 전폭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 안보에 대한 우리 행정부의 지원은 확고하고 흔들림이 없다. 테러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고, 이스라엘은 자신과 국민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중동권 국가들 사이에서는 입장이 갈리는 모양새다. 사우디아라비아 외교부는 “하마스의 공격은 가자지구를 계속 점거하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합법적 권리를 빼앗은 결과”라며, 이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모양새다.
이번 사태는 2021년 5월 발생한 ‘11일 전쟁’ 이후 최대 규모 무력충돌로 평가된다. 당시 전쟁에서는 가자지구에서 250명, 이스라엘에서 1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전쟁은 이슬람 금식성월인 라마단 기간에 동예루살렘 성지인 알아크사 사원을 찾은 팔레스타인들을 상대로 이스라엘 경찰이 강제 퇴거를 시도하면서 발생했었다.
● 이스라엘 총리 ‘강경책’ 한몫
팔레스타인 강경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공격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9·11 테러와 흡사한 충격파를 던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아이언 돔’이라는 최첨단 방공망과 신베트(국내정보)와 모사드(해외정보) 등 세계 최고 정보기관까지 갖춘 이스라엘의 전쟁 억지력이 마치 진주만 공습처럼 초토화됐기 때문이다.
특히 철통같다던 이스라엘의 첨단 방공망에 구멍이 뚫린 것은 한층 충격적이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철수한 2005년 이후 팔레스타인 극단세력의 공격을 막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입해 미국의 로켓 방어시스템인 아이언돔을 도입했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수억 달러짜리 감지 장치를 갖춘 스마트 국경시스템과 지하벽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전면 기습 공격한 배경에는 최근 몇 년간 격하게 누적된 갈등과 적대감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2022년 말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극우적인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재집권한 이후 이스라엘 정착촌 확대,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차별적 조치 등을 천명하자 이로 인한 물리적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올 초부터 지난 달 9월 19일까지 이스라엘 군대나 정착민들에 의해 살해된 팔레스타인인은 227명이며, 그중 대부분(189명)이 서안지구에서 희생됐다.
지난 9월은 전면적 갈등에 대한 우려가 본격적으로 커진 시점이다. 지난 9월 4일 이스라엘 국경수사관은 선적에 숨겨진 폭발물을 발견하고 가자지구가 서안지구로 수출하는 모든 물품의 통과를 차단했다. 이는 그렇지 않아도 높은 실업률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자지구의 생명선을 단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우려를 샀다.
● 5차 중동전쟁 ‘촉각 곤두세워’
가자 지구의 하마스가 텔아비브 등 이스라엘 남부를 겨냥했다면, 레바논은 이스라엘 포격은 북부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이번 공격 직후인 지난 9월 8일 레바논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 정파인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에 로켓·포탄 공격을 가했다. 헤즈볼라는 “하마스에 연대하는 차원에서 우리 전사들이 레바논의 셰바 팜스 인근에 있는 시온주의자 군대를 공격했다. 포탄이 이스라엘군 레이더를 타격했다”고 밝힌 것이다.
이미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2006년 7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때 한 달간 전쟁을 벌인 바 있다. 하마스와 레바논이 협공에 나섬에 따라 이번 사태가 전면적인 ‘중동 전쟁’으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스라엘과 중동 열강들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후 총 4차례의 전면전을 치른 바 있다. 전 세계 각국은 이번 사태가 1973년 ‘욤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 이후 50년 만에 전면 공격을 당한 이스라엘이 대대적 보복에 나서면서 5차 중동전쟁으로 비화하는 것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제4차 중동전쟁인 욤 키푸르 전쟁은 1973년 10월 6일 유대교 명절인 ‘속죄의 날’에 이집트와 시리아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공하면서 시작됐다. 19일 간의 전쟁으로 2656명이 숨지고 7251명이 다쳤는데, 이 전쟁으로 아랍권이 일제히 석유 감산에 나서면서 1차 오일쇼크가 촉발됐다. 이번 50년만의 하마스의 대공세도 지난 7일 새벽, 유대교의 초막절이 끝난 직후 안식일에 이뤄졌다.
미국 정부는 지난 10월 8일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의 공격에 대한 대응에 나선 이스라엘을 지원하기 위해 항모전단을 이동 배치하고 군 장비 등을 제공한다고 신속하게 발표했다. 항모전단의 전진 배치와 전투기 추가 전개 등은 하마스로 유입될 수 있는 무기를 차단하고 활동 감시를 위한 무력시위 차원이다.
또 다른 핵심 변수는 이란이다. 유독 하마스와 레바논 모두 이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는 만큼, 이스라엘과 이란 간 마찰이 표면화될 경우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 움직임에 예민한 반응을 보여 온 시아파 종주국 이란이 이른바 ‘중동 데탕트’를 무산시킬 목적으로 이번 공격을 배후 조종했을 것이란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의 안보 관리들이 하마스의 공격 계획을 도왔으며,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하마스와 함께 이스라엘에 대한 공중·지상·해상 침투 작전 계획을 만들었고, 하마스·헤즈볼라의 대표들이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몇 차례 회의를 통해 작전 세부 내용을 조율했다고 전해진다.
이 전쟁에는 승자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상될 것이고, 가자지구는 다시 한 번 엄청난 대참상을 겪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