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파선 선장 “쇄신 가능할까”
지난 10월 23일, 국민의힘은 당 쇄신과 공천 작업에 주춧돌 역할을 수행할 혁신위원장으로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교실 교수 겸 국제진료센터 인요한(64) 소장을 임명했다. 인 위원장은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최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등으로 참담한 위기에 내몰린 여당의 혁신을 진두지휘하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역주의 해소와 국민통합에 대해서 깊은 안목과 식견을 가진 분”이라며, “오늘날의 정치가 안고 있는 문제로 타협의 부재, 배타적 줄 세우기, 상대에 대한 증오와 배제의 문화 등 현실정치의 민낯에 대해 뼈아픈 고언을 했다”고 임명 배경을 밝혔다.
이어 김대표는 인요한 혁신위원장에게 “한국형 앰뷸런스를 개발한 것과 같은 창의력을 국민의힘에 발휘해 달라”며, 인 교수가 수장을 맡을 혁신위는“위원의 구성, 활동 범위, 안건과 활동 기한 등 제반 사항에 대해 자율적·독립적 판단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세기 미국에서 온 선교사 유진 벨 씨의 증손자인 인 교수는 2012년 대한민국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특별귀화 1호의 주인공이 됐다. 인 교수 가문은 4대째 한국에서 교육 및 의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의료 지원을 위해 29차례 방북한 경력도 있다.
그는 언론 기고를 통해 지난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미국 대사관 직원이라 속이면서까지 검문소 7개를 통과해 광주로 잠입한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당시 현지에서 한국어·영어 통역을 자처하며 외신을 통해 광주 상황을 세계에 알렸다. 반면 대조적으로 자신의 전공인 의료 분야에 대해 영리병원 도입, 국민건강보험 축소 및 민간의료보험 확대 등을 주장하여 시민사회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인 위원장은 “제가 여기 온 것은 변화를 상징한다. 당당하고도 허심탄회하게 거침없이 대화할 것이고, 당 대표는 물론이고 기회가 주어지면 대통령과도 거침없이 이야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당 지도부가 혁신위에 당내 권력구도의 핵심으로 국민의힘 의원들의 최대 관심사인 공천 관련 권한을 부여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박근혜 전 대통령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국민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 직함 외에 인 교수의 정치권 이력은 전혀 검증된 바 없어, 그의 혁신위의 정치행보는 순항할지, 격량의 폭풍 속에 침몰할지 어느 누구도 예단할 수 없는 미증유의 시험대에 선 셈이다.
● 여야 혁신위 성공사례 드물다.
여당은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에 대해 한마디도 못 하고 눈치만 보다가 국민에게 실망을 주고 보궐선거에서 완패했다.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대통령 태도 변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아울러 대통령은 야당과 대화해야 한다. 야당 협조 없이는 내년 국정예산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
민심과 괴리된 환부를 과감하게 도려내는 것에 구성원 모두 동참해 당의 진정한 쇄신과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 이번 혁신위는 대통령의 당내 일방적인 수직적 소통 및 소모전적 야당과의 대화 단절을 과감히 종식시킬 과단성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여야 혁신위 중 드물게 성공한 사례로는 2005년 ‘홍준표 혁신위’가 있다. 비주류에 속하던 홍준표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세우고 ‘전권’을 부여했다. 홍준표 혁신위는 선거권에서 책임당원에게 특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당원을 배제한 순수한 국민선거인단에 30%를 할당안과 전략공천 지역을 30%로 규정한 당헌 삭제를 주장했다. 주류의 거센 반발에도 당 지도부는 혁신안 대부분을 수용했다. 한나라당은 이듬해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지낸 2015년 출범한 ‘김상곤 혁신위’다. 당시 문 대표는 ‘전권 위임’의 뜻을 밝히며 힘을 실었고, 현역 의원 평가 하위 20% 배제를 골자로 한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 설치와 사무총장제 폐지 등의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 여야 혁신위는 모두 실패했다. 더불어민주당의원들은 김은경 혁신위가 제시한 정당성을 떠나, 혁신안이 가져올 유불리만을 따지며 ‘옳은 혁신’과 ‘그른 혁신’을 자의적으로 재단했다. 판단의 주체가 자신들이 아닌 국민임을 완전히 망각한 모습이었다.
국민의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당시 이준석 대표는 보수당 개혁을 목표로 혁신위를 출범시키고 수장으로 감사원장 출신 최재형 의원을 선임했다. 이 대표가 당 중앙윤리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받으며 동력을 잃은 탓이 컸지만, △공직 후보자 기초자격평가 확대 △국회의원 정기평가제 등 최재형 혁신위가 제안한 6대 혁신안은 일거에 거절당했다.
변화를 꺼리는 세력에 혁신이 또다시 가로막힌 것이다. 성공을 거두기 어려운 이유로는 ‘태생적 한계’가 꼽힌다. 당대표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정당 구조상 활동 범위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한국 정당사에서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혁신위 대부분은 ‘잔혹사’로 막을 내렸다.
혁신위는 당과 정부 사이의 적절한 긴장관계, 협력관계가 중요한 이슈다. 결국, 이번 혁신위가 성공하려면 지도부에 쓴 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혁신을 위한 전권 부여가 가장 중요하다.
● 연착륙 “과감한 결단 단호한 수술”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6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당 체질 개선과 관련해 ‘3대 혁신 방안·6대 실천과제’를 마련해 실천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국민의 삶과 밀접한 생활정책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정책으로 국민의 일상이 나아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치열하게 노력하겠다”며, “민심 부합형 인물을 내세워 후보 경쟁력에서 우위 선점하겠다”고 했다.
김 대표가 제시한 3대 혁신 방안으로는 △서민 친화형 국정 운영 비전 목표 △상향식 원칙에 따른 공천 △도덕성 및 책임성 강화해 중도·무당층 포섭 등이다. 또 6대 실천과제로는 ▽당 혁신기구 출범 ▽총선 준비 기구 조기 출범 ▽인재 영입위원회 구성 ▽당정대 관계 개선 △당내 소통 강화 ▽신임 당직 인선 의결 등을 언급했다.
그러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의 참혹한 패배에도 불구하고 임명직만 살짝 교체하고, 그것도 별반 혁신적이지 않다는 당내외 평가는 아직 위기의식의 민감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김대표 공언대로 쇄신하고 변화하는 것만이 민심을 받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더욱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고 친서민정책으로 국민들의 삶을 보다 전향적으로 챙겨야 한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DJ)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로 꼽는다. “DJ는 한 인간으로서 용서와 화합을 실천한 훌륭한 사람이라 생각한다”는 금번 국민의 힘혁신위원장 발탁은 앞으로 정부 여당이 호남을 적극 포용하겠다는 의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김대표가 인위원장 혁신위 활동을 국민의힘 방패막이용라는 세인의 의혹을 불식시킨다면, 분명 ‘통합과 변화’의 열망을 우리 국민들은 절대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지행합일 실시구시해법’을 조속히 선보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