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6년 박두성선생 ‘훈맹정음’ 공포
지난 11월 4일은 시각장애인에게 서광을 비춘 제97돌 한글 점자의 날이었다. 1926년 송암 박두성 선생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한글 표기를 점자로 쓰고 읽을 수 있도록 일제강점기하에서 6점식 점자 ‘훈맹정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을 기념하는 뜻깊은 날이다.
아울러 시각장애인의 점자 사용 권리를 신장하고 점자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이해를 높이기 위하여 제정된 날로 ‘한국수어의 날(2월 3일), 한글날(10월 9일)’과 함께 언어 관련 법정 기념일이기도 하다. 법정 기념일이 아니었던 ‘한글 점자의 날’이 2020년 12월에 ‘점자법’이 개정된 이후부터 법정 기념일로서 위상을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직 인지도가 아주 낮은 것이 사실이다. 점자법 제15조에 따르면, 한글 점자의 날이 속한 주간을 ‘한글 점자 주간’이라고 하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와 관련해 각종 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처럼, ‘한글 점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과 의사를 소통하고, 정확한 정보를 습득하고, 시각장애인 상호 간 의사소통을 하는데 매우 중요한 도구로 활용된다. 일반 도서를 시각장애인이 읽을 수 있도록 점자도서로 바꾸는 일을 ‘점역’이라고 하며, ‘점역사’는 말이나 글을 손가락으로 읽을 수 있도록 점자로 바꾸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이와 함께 ‘점역 교정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점역을 마치면 시각장애인 교정사가 점역된 내용을 일반도서와 대조해 오타나 맞춤법 등을 검수하는 사람이다. 이들 모두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눈과 귀가 되어주고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데 주연격이라 할 수 있다.
● 한글 태동 원리 ‘우리 고유의 점자’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이 있다면,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박두성 선생의 ‘훈맹정음’이 있다. 누구나 우리 문자로 읽고 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훈민정음은 많은 사람이 그 의미와 가치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송암 박두성 선생이 반포한 훈맹정음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그 원리와 가치를 잘 모른다.
박두성 선생이 1926년 11월 4일에 발표한 훈맹정음은 6점식 한글 점자로 오랫동안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어 주었다. 훈맹정음은 자음과 모음, 숫자도 다 들어가 있는 63개의 한글 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64개의 조합이 가능하다. 이처럼, 한글 제자 원리를 바탕으로 창안되었기에 우리 고유의 문자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특히 배우기 쉽고, 점 개수가 적고, 서로 헷갈리지 않아야 한다는 세 가지 원칙에 기초하여 조성된 것이다.
시각장애인이 한글과 같은 원리로 글자를 익힐 수 있도록 세로 3개, 가로 2개로 구성된 점을 조합해 자음과 모음을 표현하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손끝으로 식별하는 문자인 만큼 튀어나온 점의 높이와 지름, 점 간 거리에도 기준이 있다. 예컨대 점 높이는 0.6~0.9㎜, 지름은 1.5~1.6㎜이다. 점 간 거리는 2.3~2.5㎜로 둔다.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이라 불리는 송암 박두성 선생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제생원 맹아부를 설립하자 그곳에서 맹아 교육을 담당했다. 당시 시각장애 아동 교육은 일본어 점자를 토대로 시행되었고, 우리 학생들이 일본어 점자로 공부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박두성 선생은 시각장애인들이 배우기 쉬운 우리만의 점자를 만들어야겠다고 고심했다.
일제의 감시와 탄압에도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결성하는 등 ‘눈이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닫히고 세상도 닫힌다’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애국혼을 불사른 것이다. 이렇듯, 세종대왕의 ‘애민 정신’을 닮은 ‘애맹 정신’을 바탕으로 만든 훈맹정음은 시각장애인도 글을 잘 읽고 쓸 수 있게 하는 기반이 되었다.
● 대다수가 ‘후천적 시각장애인’
우리는 시각장애가 있다고 하면 전맹(시력이 0으로 빛을 지각하지 못하는 시각장애)을 떠올리기 쉽다. 실제는 전맹보다는, 빛을 인지하고, 최소한 사물의 윤곽 정도는 알아볼 수 있는 시각장애인이 훨씬 많다.
국립국어원이 출간한 ‘2021년 점자 출판물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등록 시각장애인 수는 총 25만 2,703명이며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실태 조사 결과 시각장애인 중 점자 사용이 가능한 비율이 9.6%, 불가능한 사람이 90.4%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10월 19일,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시각장애 학생과 학부모,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및 면담 결과, 점자 교과서의 인쇄 상태가 미흡하거나 정보 누락 등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제작 기간이 너무 오래 소요돼 실제 자료가 필요한 시기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는 적기에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투입 액수와 우선순위가 비장애인에 비해 매우 미온적 이라는 것을 시사한 것이다.
시각장애인의 90%는 후천성 장애인이다. 이들 증 많은 수가 제때 적절한 재활훈련을 받지 못해 취업, 여가생활, 때로는 가족까지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곤 한다. 특히 시각장애인의 51%가 65세 이상 고령층이다. 고령 시각장애인들은 삶의 기회 면에서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너무 많은 것을 박탈당해 왔다. 시각장애로 교육을 포기해야 했고, 취업은 시도해 보지 못했으며, 이동도 자유롭지 못하고, 노인이 되어서는 경로당에 편히 가서 어울리기도 어렵다.
이와 함께 동시대를 시대를 살아가는 시각장애인들 간에도 거주 지역에 따라 격차가 심하다. 서울 등 대도시에 거주하는 시각장애인들은 제반 환경이 비교적 낫지만 중소도시나 농어촌에 거주하고 있는 시각장애인들은 열악하기만 하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할수록 디지털 격차가 심화되면서 시각장애인은 살아가는 데 더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키오스크, 즉 무인단말기다. 모두의 편리를 위해 도입된 키오스크가 시각장애인에게는 엄청나게 새로운 장벽이 되고 있다.
근래 지구촌 환경의 급변에 따라 사회에 큰 피해를 가져온 자연재해나 사회재난은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물론 재난 정보를 수신할 수 있도록 하는 재난 문자도 있고, 글자를 읽어주는 기술인 기능이 존재한다.
시각장애인의 특성상 재난 및 사고로부터 위험하며, 실시간 재난 정보를 습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즉각적으로 재난 정보를 수신하여 적용하지 못한다면, 시각장애인은 재난 피해의 최전선에 놓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시각장애인 인구의 과반수(79.5%)가 50세 이상이며, 이들이 스마트폰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경우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학‧연‧관’은 디지털 접근성 증진 등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는 미래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책무이기 때문이다.
인사혁신처가 시각장애인 응시자의 수험 환경을 적극 개선한 것을 환영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동에 중점을 둔 보행지도 및 재활상담, 시각장애인에게 맞는 문화 프로그램, 이들 고령자를 위한 쉼터 운영 등 시각장애인의 특성과 요구를 반영한 지역사회중심 서비스를 총체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기능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