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미친 짓이다. 미치기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하는 것이 예술이다. 일종의 마약이다. 나는 언젠가 ‘상상은 새로운 마약을 처방한다.’라고 쓴 적이 있다. 그리고 한동안 황홀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아무리 손을 휘저어도 잡히지 않는 저 괴이한 헛것들, 그리고 미친 자의 인스케이프!
아마 이십 년은 훨씬 지난 일이다. 기차역까지 트럭을 몰고 돌연히 나타난 사내는 도예가 미마였다. 그의 트럭에 실려 몇 개의 골짜기와 숲길을 달렸다. 미친놈이 미친놈을 알아본다고 했던가. 사내와 나는 단번에 서로를 알아봤다.
어려서 화가를 꿈꾸던 사내, 열망은 가혹하리만큼 치열했으나, 운명은 늘 사내를 비켜 갔다. 그런 그가 전통 도예에 제대로 빠질 수 있었던 것은 쪽지 한 장 들고 찾아간 도예가 윤광조 작가와의 만남이었다. 도예에 대한 열망은 퉁퉁 부어올랐다. 결국 그의 곪은 상처를 터뜨려 준 스승은 고현 조기정 작가와 이정헌 작가다.
그가 은둔하고 있는 작업장은 나산면 용두리의 조용한 마을이다. 가마에서 불기운이 식어가는 여름 저녁, 뒤뜰에 대나무가 울고 있었다.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인간의 숙명처럼 별자리들이 멋대로 바뀌고 있었다.
예술가의 생은 이처럼 마구 뒤틀려 있는 과정을 한없이 걸어가는 자들이다. 강물이 거꾸로 흐르고 대통령이 세 번씩이나 바뀌었어도, 미마는 혼자 잘 놀 줄 아는 도예 작가다. 그에게서 형식과 틀은 그대로 번거로운 옷이다. 전시회에서 그의 실험성 강한 작품들은 주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생산성에 관심을 보이는 현대인들에게는 그저 소득과는 무관한 이상한 흙 놀이로 보인다.
우선 미마의 작품세계는 인간과 자연, 주체와 객체의 밀도 있는 만남과 자유로움에서 출발한다. 아귀가 뒤틀린 조형미와 부조화는 엉뚱하고 기발하다. 가마에서 꺼내 온 그릇들은 음식을 담기에는 어딘지 미안해 보이고, 어느 한 편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물고기는 왜 하필 강물도 아닌 목판에 떠 있는가. 도대체 요리와는 상관없는 저 미안한 그릇들, 흙과 돌멩이를 이어 만든 물고기의 부조화를 단순하게 지나친다면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이성과 논리에 집착하려는 현실 감정들을 선험적 감각으로의 회복을 위한 통과의례이다. 미마의 작품세계는 모든 상식과 원칙을 거부함으로써 오히려 새롭고 낯선 의미를 만들어 낸다.
전시장에 풀어놓은 작품들은 자유분방하고 활달하면서도 힘이 가득 차 있다. 파격과 즉흥, 대담성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농사용 모내기 도구 모판이 흙과 함께 작업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전통 도예 작업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었다.
하물며 돌, 인터폰, 세면대, 깨진 사금파리까지 그에게는 즐거운 오브제가 된다. 그것은 정해진 구속으로부터 해방을 꾀하려는 심미적 부대낌이 빚어낸 산물이 아닐지 싶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빚어놓은 흙들은 그 형태나 생김이 소박하고 질감이 정겹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작업장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단조롭다. 말이라도 걸면 화답해 줄 것만 같은 물레와 낡은 라디오, 마당이 시원하게 펼쳐 보이는 앙상한 대문, 앵두나무 옆을 지키고 서 있는 한가로운 삽자루, 발밑에 밟히는 어린 풀설기까지, 난해하지도 복잡하지도, 그렇다고 단정하지도 않다. 선문답을 닮은 엉뚱한 결합 방식들이 종횡무진 웅크리고 있거나, 서 있거나, 뒹굴고 있어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그렇다. 미마에게는 예측을 허물어 버리는 엉뚱한 힘이 있다. 때론 가마에서 나온 구슬들이 목판에 걸리기도 한다. 고승들이 왜 그토록 엉뚱한 선문답을 던져주고 애를 먹이는가, 미마의 이런 엉뚱함에는 마치 우리에게 어떤 선문답을 던져주고 있는 것만 같다.
예술이 위기의식의 산물이라면, 예술가는 현실과의 적응이 깨어진 상태, 그런 불행한 소외감을 새로운 감수성으로 보상받으려는 자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공예사에서 미마의 위치는 독특한 매무새를 가졌다.
미마는 천성이 단순하고 순진무구하다. 언젠가 그가 보내온 편지에서 ‘우연히 고여 있는 물줄기, 일부러 가두어 놓은 물줄기’라는 문장을 다시 찾아 읽는다. 온갖 치장과 이름을 앞세우며 쏟아져 나오는 예술작품의 홍수 속에서 그나마 미마 박영복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유쾌하다.
미켈란젤로는 돌을 쪼아 조각을 만들지 않았다. 불필요한 부분을 깨뜨리고 필요한 부분만을 살려내 인류에게 감동을 안겨주지 않았던가. 미켈란젤로가 돌을 깨뜨렸다면, 미마는 형식과 틀을 깨뜨리며 산다.
미안하기 그지없는 미마의 그릇들이여, 불타오르는 외로운 흙덩이들이여. 그렇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한결같이 그것이 그것 같은 현대사회에서 독창성을 갈망하는 예술작품이 그립다. 예술가에게 모든 형식과 틀은 번거로운 옷이다. 예측을 깨뜨리는 엉뚱한 사유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 나정호 프로필
신라문학대상, 해양문학상 수상 / 한국희곡작가협회, 아토포스 동인, 현) 롯데백화점 문화센터〈사랑의 인수분해〉 시창작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