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날이면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이 끓는 물 속에 잠긴 듯했다. 아스팔트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무기력하게 늘어진 나뭇잎들, 땀에 젖은 채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이 모든 것이 한여름 도시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올해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도 특별하다. 30일 이상 이어진 극심한 ‘열대야(熱帶夜)’ 속에서 예상치 못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평소 건강을 위해 매일 산책하는 것이 일과 중 하나였다. 팔을 내두르며 걷는 시간이 삶의 의지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열대야로 인해 소중한 일과를 포기해야만 했다. 밤새 식지 않은 열기가 아침까지 이어졌다. 창문을 열어 환기조차 하기 어려웠다. 세차게 울던 매미도 더위에 지친 듯 잠잠하다.
에어컨 바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손님용처럼 틀던 에어컨이 연일 돌아갔다. 부작용으로 냉방병, 감기 기운, 수면 부족, 식욕부진 등 일상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점점 무더위가 몹시 불편하고 짜증났다.
▲ 올해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도 특별하다. 30일 이상 이어진 극심한 ‘열대야(熱帶夜)’ 속에서 예상치 못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pixab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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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 대한 우려도 커져 운동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 점차 이 상황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지혜가 아닐까?
생각을 바꾸자 해결책이 보이기 시작했다. 밖에 나가 걸을 수 없다면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아보기로 하자, 거실에서 제자리 빨리 걷기, 요가 매트 위에서의 간단한 스트레칭,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 배운 홈트레이닝, 아령과 철봉을 이용한 상체 운동, 스쿼트, 반신욕 등 이 같은 활동들이 새롭게 자리 잡았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좁은 공간에서의 운동은 야외에서의 활동만큼 효과적이지 않을 것 같았고, 땀을 흘리는 정도도 확연히 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루틴에 적응해갔다.
제임스 클리어의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 21일이면 습관이 된다더니 정말 그랬다. 오히려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몸의 상태를 더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거울 앞에서 운동하며 자세를 교정하기도 쉬웠고,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운동할 수 있어 더위로 인한 불편함도 줄일 수 있었다.
이렇게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가면서 점차 더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태도’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변화와 도전에 직면한다.
때로는 그 변화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찾아오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느냐다.
▲혹독한 이번 여름, ‘열대야’라는 불편함 속에서 오히려 더 큰 삶의 지혜를 얻게 되었다. pixab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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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경험으로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 몸은 자연스럽게 변화를 겪으리라. 지금은 건강하다고 느끼지만 언젠가는 질병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일본의 한 고령사회 연구기관 추적 조사에 따르면 여자는 69세, 남자는 72세부터 건강이 꺾이기 시작해서 80대 후반까지 건강을 유지하는 비율이 11%밖에 안 된다고 한다.
병원에 눕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때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태도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현재의 이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손가락을 움직이는 간단한 운동, 심호흡을 통한 명상, 또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중요한 점은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다.
이 같은 생각은 단순히 건강 문제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직장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가족 관계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또는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찾아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대해 불평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편이 훨씬 더 생산적이고 건강한 삶의 방식이 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열대화의 원인을 짚어봐야겠다. 해가 갈수록 지구 온난화는 가속화할 것이다. 특히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많은 도시의 열섬 현상, 해수면 온도 상승 등으로 열대야와 폭염은 불가피하지 않을까. 개인, 사회, 정부, 세계가 합심해서 해결할 커다란 과제이다.
혹독한 이번 여름, ‘열대야’라는 불편함 속에서 오히려 더 큰 삶의 지혜를 얻게 되었다. 외부 환경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내면에서 시작되는 긍정적인 변화는 언제나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좁은 공간이지만 그곳을 나만의 놀이터 삼아 몸을 푼다. 이 작은 실천이 앞으로 다가올 더 큰 도전들을 대비하는 훈련이 되리라 믿는다.
우리 모두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열대야’들. 그것이 실제 기후의 변화일 수도 있고 인생의 어떤 고비일 수도 있다. 그 속에서도 우리는 항상 선택할 수 있다.
불평하며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면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것인가.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 결과 예상치 못한 성장을 경험할 수 있었다.
오늘도 창밖으로 쏟아지는 따가운 햇살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들판의 곡식과 과일, 그리고 우리는 이 열기 속에서도 아니 어쩌면 이 열기 덕분에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이런 경험이 앞으로의 삶에서 마주할 도전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것이라 확신한다. 그것이 바로 이 뜨거운 여름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