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한 냄새가 풍겨 왔다. 투명한 가을 햇살에 베란다 문을 열었을 때였다. 익숙한 토요일 냄새다. 토요일이라고 누구나 다 삶이 구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외로움 또는 씁쓸함, 어쩌면 고통 가운데 있는 이도 있을지 모른다.
삶이란 그럴 때가 더 많지 않은가. 아저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온종일 동네 공기를 바꾸어 놓는다. 토요일마다 등장하는 ‘뻥아저씨’는 장마철 빼고는 여간해서는 결석하지 않는다.
오늘은 현미를 튀겨볼 참이다. 묵은쌀을 튀겨서 이웃들과 나누어 보리라. 벌써 율무 옥수수 보리 쌀 등이 번호표를 받은 채 노란 깡통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 아파트 뒤쪽 샛문 앞,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은행나무 아래 담벼락에 의지해 진열대를 세웠다.
누구나 좋아하는 쌀 튀밥은 어느새 몇 보따리 쌓여 있다. ‘기름에 튀기면, 책상다리 빼고는 다 맛있다’라는 말도 있지만, 기름 없이 튀긴 것은 담백하고 고소하다. 게다가 ‘아사삭’ 부서지는 식감이 경쾌할 뿐 아니라, 입을 심심치 않게 달래주는 것이 매력이다.
아저씨는 콩이나 누룽지, 은행 무말랭이 돼지감자 도라지, 마른 떡까지, 돈 빼놓고 무엇이든 다 튀긴다고 했다. 쌀이나 옥수수 같은 곡류는 15배나 커진다는데, 꿈은 몇 배로 튀겨질 수 있을까. 소쿠리의 강냉이가 닳아지도록 마룻바닥을 뒹굴며 그런 공상에 빠졌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 그는 ‘Mr 뻥’으로 불렸다. 아랫목의 담요 속에 발을 뻗고 둘러앉으면 어딘가 모를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곤 했다.
전축을 틀어놓고 연필을 흔들어 카라얀 흉내를 낸다든지, 낯선 음악가들을 들먹이며 열중하는 그의 모습은 농과대학생이 아니라 음대생 같았다. 동생의 학습을 도와주는 건 잠깐이고, 늘 음악에 취한 어릿광대 같았다.
“너는 뭐 하러 그런 허풍을 듣고 있니?” 언니는 툭하면 핀잔을 주었다. 허풍일까?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음악이 세상을 구원할 것만 같았다. 집안을 울리던 음악은 그가 돌아가고 난 후에도 둥둥 가슴에서 울렸다.
고향을 떠난 한참 후 그의 소식을 들었다. 변두리 어디에 집을 짓고 음악실을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음악을 꽝꽝 틀어도 밖으로 소리가 들리지 않는 방음벽 방을 만들겠다고 뻥뻥거리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허구한 날 읊어대던 명품 스피커와 앰프, 턴테이블. 원판 등을 하나하나 모으는 기쁨은 얼마나 설렜을까. 꺽다리에 실없어 보이던 허풍이 허풍이 아니었나 보다.
나는 무엇을 꿈꾸었을까. 쌀 한 톨도 열다섯 배나 부풀 수 있는데, 꿈의 씨앗을 찾아야 부풀리든지 싹 틔우든지 할 거 아닌가. 좋아하던 그림 그리기도 금지되었고, 매혹되었던 바이올린도 손에 닿지 않았다.
꿈을 꾸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이 가슴만 울렁일 뿐, 손은 비어 있었다. 연필 한 자루로 허공에 음악을 그리는 그는, 그 허풍이 꿈의 씨앗이었을까.
어쩌면 내 꿈의 씨앗은 외로움에서 싹텄는지도 모른다. 그가 음악에 심취되어 젊음을 살았듯이, 나는 방학 중에도 학교에서 살았다. 중학교의 커다란 도서관은 쓸쓸했지만 깊은 세상이었다. 책은 물가의 나무같이 나를 푸르게 했다. 몇 광년씩이나 달려와서 기어이 내 눈에 닿는 별빛처럼 나도 꾸준히 달려가기로 했다.
무엇이 되고자 한 건 아니었다. 그냥, ‘사람’이 되기로 했다. 사람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고, 성실하고 활기 있게 사는 사람. 어슴프레 내 삶의 태도를 정했다. 그러면 별빛처럼 어디엔가 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먹어서인지, 쓰러졌다가도 문득 부스스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떤 재난으로, 또는 다른 이유로 길이 막히거나 꺾였을 때 시간이 걸렸지만, 일어설 수 있었다.
어떤 꿈은 남에게, 자신에게조차도 안보일 수 있다. 우물 속의 수정처럼 너무 깊이 박혀서 아주아주 오래 들여다봐야 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은 진행형인 것 같다. 은퇴한 지금도 무엇을 해보려 하는 건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권영순, 뻥이요, oil on canvas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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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추 시간이 된 것 같아서 트럭을 향해 걸어가는데, 갑자기 ‘뻥!’ 소리가 났다. 하얀 연기와 함께 구수한 냄새가 풍겨왔다. 둘러섰던 아주머니들과 한 주먹씩 튀긴 현미를 먹어본다. 따끈하고 아삭하고 고소한 것이 옛날 맛 그대로이다. 옆에서는 손바닥만 한 기계가 돌아가며 톡톡 소리와 함께 동그란 뻥튀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한 숟가락이 접시 크기로 커지다니, 늘 보아도 마법 같다. 아저씨는 맛보기로 꼭 두 개씩 준다. 한 개는 정이 없다나. 웃음이 점퍼처럼 두툼하다. 주머니 속에 찔러넣은 따끈한 쌍화탕 한 병을 내밀었다.
‘뻥튀기’는 아직 곁에 있어 추억을 돋게 한다. 뻥튀기 아저씨같이 Mr 뻥도 삶의 향기를 퍼뜨리며 살고 있겠지. ‘뻥이요!’ 소리는 나에게만 즐겁게 들리는 소리는 아니다. 어느덧 만국 통용어가 되었다고 한다. 멀리 아프리카 사막 땅에서도 우리나라의 뻥튀기 기계가 돌아간다고 한다.
잘록한 호리병 같은 검정 기계가 뱅글뱅글 돌아가면, 머리카락이 뽀글뽀글한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뻥이요~!’라며 한국말로 함께 외친다니, 알라딘 램프가 따로 있겠나. 상상만 해도 즐거운 풍경이다.
‘뻥이요!’는 ‘꿈이요!’라는 뜻으로 들렸으면 좋겠다. 열 배 이상 불어나는 곡식같이, 그들의 꿈과 행복의 씨앗도 튀겨지면 얼마나 좋을까!
■ 프로필
춘천 출생, 가톨릭대(성심) 국어국문학, 백석대 상담학 가정사역 전공(MA), 23년 인간과 문학(겨울 44호) 수필 신인상, 23년 월간문학 (12월 658호) 시 신인상 등단, 현 광주광역시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