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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작가 朴又木’ 혈맥(血脈) ‘인연’(11회)
기사입력  2021/03/17 [02:21] 최종편집    작가 朴又木

강렬한 호기심과 함께 경쟁심이 솟구쳤다.

 

▲ 작가 朴又木    

성광이 백제 땅에서 처음으로 출세의 호기를 맞은 것은 비성에서 열린 사냥대회에서였다.

 

비성에서 새 생활을 시작하면서 성광과 다금아와 강수에게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우선 성광은 매일 새벽에 근처 상당산으로 강수를 데리고 가 무예를 가르쳤다. 강수는 날로 무술의 기량을 늘리며 단련에 힘썼다. 낮에는 다금아가 연 여각에 나가 허드렛일을 돕고 여각에 딸린 채마 밭 농사를 지었다.

 

다금아는 강수와 부부가 되어 평생 모시기로 결심한 상전을 위해 사람과 재물을 모으려고 여각을 차렸다. 그리고 밤에는 강수에게 글을 가르쳤다.

성광이 사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강수의 무예수련과 글공부가 일취월장하는 것에 못잖게 여각도 날로 번창해갔다.

 

비성에 눌러앉은 지도 어언 반년이 지나 산천에 봄기운이 완연한 3월이 시작되었을 무렵이었다. 그가 갑자기 북방 방성(方城, 지방의 행정 중심지이자 군사조직)인 웅진성(熊津城)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간에 있었던 사냥대회 때 일어난 사연 때문이었다.

 

겨울철에는 접경지대가 평온해서 전쟁에서 입은 피해를 복구도 하고 앞으로 치를 전쟁에 대비한 준비도 하면서 모처럼 마음 놓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자연히 왕도에서는 지방의 그러한 전쟁 피해복구와 전쟁준비상황을 점검도 하고 장졸의 노고를 위로하고 사기를 돋울 겸 고위 관리들이 방성을 시찰하러 다녔다.

 

초겨울에 비성에도 왕부(王部, 백제 5부 행정기관 중에 왕을 중심한 중앙부)에서 달솔(達率, 2품으로 부의 장) 여수장어(餘首長御)가 내려왔다. 그는 왕족의 성인 여()씨로 초고왕(肖古王)의 혈족이고 달솔의 관등이지만 5부와 5방의 수장인 달솔들 중에서도 가장 막강한 실력자였다.

 

그의 슬하에 9품 고덕 벼슬에 있는 여강선고(餘康先高)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비성 성주 해서구달(解舒久達)의 사위였다. 그는 웅진성의 북방 방령(方領)으로 있는 광무군(光武君)의 동생으로 형과는 딴판으로 문약해서 겨울 원행에다 사냥까지 하는 배행을 싫어했다. 그러나 부인의 강청 때문에 번번이 코가 꿰인 소처럼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그의 부인 해부선랑(解芙仙娘)은 여장부라 상당한 무예를 갖추고 말 타기와 사냥을 좋아해서 친정 나들이를 겸한 비성 여행에 신명이 났다. 그해에도 사냥대회가 열렸다. 일 년 내내 농사와 부역에 시달린 백성들을 사냥에 참여시켜 진종일 사냥하고 먹고 마시며 놀게 하는 일종의 잔치 한마당이었다.

 

사냥대회 날이 밝았다. 간밤에 무서리가 내렸지만 날씨가 청명해서 햇살이 퍼지면 한기가 풀려 따듯해질 것이었다. 사냥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동이 트며 모여들기 시작한 사냥차림의 남자들이 토성 밖 넓은 공터를 가득 메운 채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시(辰時,오전 7시서 9시 사이)가 다 차서 그날의 사냥대회를 주관하는 관리가 나타나 번호를 적은 헝겊 띠를 나눠주고는 출발시간과 성에 도착해 포획한 사냥물을 등록하는 마감시간을 알려주었다.

 

사냥터는 상당현(上黨縣)동북쪽으로 소백산맥 줄기가 북에서 뻗어내려 이룬 산지에 있는 상당산과 선두산 일대와 그걸 넘어 더 남으로 내려가 있는 미동산 일대였다. 선두산 일대는 도보 사냥꾼들이 갈 사냥터고 미동산 일대는 말을 탄 사냥꾼들이 갈 곳이었다.

 

그러구러 사시(巳時,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가 다 되었을 때 성에서 말 대열이 나왔다. 성주와 시찰 온 달솔과 성주의 사위인 해서구달 부부와 동행할 수하들이었다. 운집한 사냥꾼들로부터 함성이 일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달솔의 며느리이자 성주의 딸인 부선랑에게로 쏠리면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미는 검정 깃이 달린 붉은 색 옷에 머리에 장끼 깃털을 꽂은 담비털가죽 모자를 쓰고 어깨에 전동(箭筒, 화살을 넣은 통)을 메고 활을 들었는데 마상에 앉은 그 자태가 너무나도 아리땁고도 대장부처럼 헌걸스러웠기 때문이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모두들 두 방향으로 나뉘어 떠났다. 성광과 강수는 미리 구해놓은 말에 올랐다. 성광은 단검을 차고 활을 들었고 강수는 창을 들었다. 미동산을 향해 무심천이 끼고 있는 벌판을 남으로 달렸는데 반 시각쯤 달려 나지막한 첫 고개를 넘었을 때는 홍의부인이라고 부르는 부선랑과 두 명의 수행원만이 앞으로 보일 뿐이었다.

 

미동산 자락에 당도한 홍의부인이 말에서 내려 수하에게 말고삐를 넘겨주고는 임시로 가설한 마구간에다 말을 맡기는 것을 기다렸다 산길로 들어섰다. 그미가 돌아서기 전에 뒤따라 멀리 시야로 들어오는 성광을 쳐다보았는데 얼굴에 잠시 미소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앞서 숲으로 들어간 수행원 중 한 사람이 얼마쯤 뛰어올라가서는 정상을 향해 각적(角笛, 뿔피리)을 불었다. 산꼭대기 쪽으로 미리 대기시켜 놓은 몰이꾼에게 몰이를 시작하라는 신호였다.

 

성광이 강수를 뒤딸리고 산길을 올라가자 수하 한 사람을 거느린 홍의부인이 숲 속 바위에 앉아 대통의 물을 마시며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 목례를 올렸다.

 

말달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던데 어디에 사는 분이신가요?”

성안에 살고 있는 성광이라 합니다.”

아직은 우리뿐이어서 몰이를 너무 일찍 서두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성읍이 멀지 않으니 머잖아 일행께서 당도할 것입니다.”

몰이는 내가 시켰지만 먼저 올라가도 좋습니다.”

저희가 홍의부인보다 앞서 갈 수야 있겠습니까?”

 

사냥감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나 내가 뒤따라간들 활을 댁들만큼 쏘아 맞히지 못 하겠소, 주저 말고 가시오.”

그럼 먼저 올라가겠습니다.”

 

그가 강수에게 눈짓해서 그녀를 지나쳐 올라갔다. 반 시각쯤 올라가자 몰이꾼들이 내는 꽹과리 두들기는 소리와 모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슥한 내림 길목에 나무를 의지해 몸을 숨겼다.

 

다시 반 시각쯤 지났을 때였다. 숲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검은 물체가 쑥 나타났다. 중치쯤 되어 보이는 멧돼지였다.

 

그가 강수를 손짓으로 제지한 다음 멧돼지가 지나치기를 기다렸다 화살을 쏘아 등짝에다 꽂은 다음 아래쪽을 향해 출두요!’하고 연거푸 외쳤다. 올라오고 있을 홍의부인한테 알리려는 것이다.

 

그미가 외치는 소리에 활시위에 화살을 메겨 쏠 자세를 취한 채 숲을 응시했다. 곧 검은 물체가 시야에 뜨자마마 활을 당겨 쐈다. 동시에 검은 물체가 비명을 지르며 솟구쳤다 고꾸라졌다. 그미 수하가 달려가 목 줄기에다 창을 꽂아 숨통을 끊었다.

 

가까이 다가온 그미가 등짝에 꽂힌 화살을 뽑아 들여다보았다. 조잡하게 만든 화살이었다. 그런 화살로 숲 속에서 그것도 달리는 멧돼지의 단단한 등짝에다 화살촉이 반 넘게 박히도록 쏘았다는 활솜씨에 적이 놀랐다.

 

그제까지 그런 강한 활을 본 적이 없었다. 먼저 올라가기를 사양했던 헌걸찬 사내가 떠올랐다. 동시에 강렬한 호기심과 함께 경쟁심이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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