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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曜 手筆> 성민선 ‘페스탈로치 선생께 드리는 편지’
“어두운 밤바다 비추는 등대와 같은 분”
기사입력  2021/04/01 [01:34] 최종편집    수필가 성민선

1997년 창립 학교사회복지학회의 초대회장

 

▲ 수필가 성민선     

두어 달 전 학계의 후배가 이메일 한 통을 보내왔다. 1997년에 창립한 학교사회복지학회의 초대회장이었던 나와 인터뷰하고 싶은데 언제쯤 가능하겠는지를 물었다. 사회복지학계와 실천가들이 애써 왔던 학교사회복지의 제도화가 20여 년의 노력 끝에 이제 비로소 법적인 토대가 마련되었는데 그간의 과정을 정리하여 기록으로 남겨놓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기꺼이 날짜를 잡았다.

 

학교사회복지란 교육의 장()에 사회복지사를 배치하여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와 그들의 환경이 되고 있는 지역사회와 함께 교육을 돕는, 인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복지의 한 영역이다. 학교사회사업이라고도 하고, 교육복지라고도 한다.

 

명칭이 어떻든 그 목적은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타고난 잠재력을 최대한 계발하고 성장 발달하도록 사회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뿐 아니라 적응이 어려운 학생들, 성적 부진 학생들까지, 학교에 다니는 아동청소년들을 복지 차원에서 돌봐주는 제도이다.

 

성장과 발달에 필요한 디딤돌을 놓아주고, 방해가 되는 걸림돌은 치워주는 역할을 한다. 밑바탕에 깔려있는 가치는 물론 아동권리의 보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11월 마침내 사회복지사업법을 고쳐서 학교사회복지 제도화의 길을 마련하였다. 금년 말까지 구체적인 시행령과 규칙이 마련될 예정이다.

 

▲  스위스 취리히 중앙역 앞의 조그만 공원에 세워진 스위스 교육의 아버지 페스탈로치 동상

 

저 유명한 스위스의 페스탈로치 선생

 

여기까지 오는 데 20여 년이 걸렸다. 그 기간 동안 나의 마음속 어두운 밤바다를 비춰주는 등대와 같은 분이 있었다. 저 유명한 스위스의 페스탈로치 선생이다. 그는 우리의 나아갈 길을 비춰주고, 목적지에 이르도록 안내해준 친절한 스승이었다.

 

그는 사회복지가 제도화되기 훨씬 전인 18세기에 스위스에서 교육과 복지를 동시에 실천함으로써 교육과 복지가 분리될 수 없는 한 뿌리라는 사실을 최초로 실증한 분이다. 그로 인하여 우리는 복지가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고 믿게 되었고, 또한 교육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복지에 있다는 걸 확신하였다.

 

페스탈로치는 안과 의사였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려서부터 가난하게 살았다. 그는 목사였던 외할아버지를 따라 교구민들의 집을 방문하면서 농민들의 가난을 직접 목격하였다. 당시 가난한 농민들의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농장이나 공장의 도제가 되어 과다한 노동과 굶주림에 허덕였다.

 

그는 당시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하던 루소의 영향을 받아 자연 속에서 농업에 종사할 계획이었으나 사들인 황무지에서 농사에 실패하자 그 자리에 학교를 세운 것을 시작으로 일생을 교육에 헌신하였다. 그는 루소에 심취하면서 교육이 사회조건의 향상에 중심적이라고 보았다.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과 사회 내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 그는 빈민 아동과 고아들을 위해 이른바 생산학교를 설립하였고, 국비로 운영되는 세계 최초의 아동복지시설 운영도 맡았었다.

 

그는 세계 최초의 교육사회사업가라 할만하다. 그에겐 사랑으로 돌보는 복지가 우선이었고, 교육의 목적이 아이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개발하여 전인적인 발달을 이루게 하는 것이었다. 학교에는 친절이 우선이었고, 당시 유럽에서 행해지던 체벌도 폐지하였다.

 

교육철학자로서, 교사로서 페스탈로치는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로부터 충분한 사랑과 가정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교육철학을 주창하였다. 그는 3H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아이는 머리(Head)와 손(Hand)과 가슴(Heart)으로 배워야 하고, 그 가르치는 최초의 역할을 집안에서 어머니가 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학교 교육 역시 지··체 세 가지 교육을 통해 아이의 지성과 감성과 몸이 조화롭게 발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었다. 아이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켜서 인간성의 조화와 자율성 발달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사립초등학교도 세웠고, 교사양성을 위한 사범학교도 세웠다. 그는 근대교육의 아버지로 유럽 여러 나라의 교육철학자, 교육개혁자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독일의 피히테, 프뢰벨, 이탈리아의 몬테소리, 미국의 존듀이가 그의 교육철학에 영향을 받았다.

 

선생이 설립했던 초등학교에서 배웠던 적이 있는 아인슈타인은 학생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실험하며 학생의 책임을 다하는 공부를 한 것이 권위주의 교육보다 훨씬 우수하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아이슈타인이 에세 이집에서 교육에 대한 뛰어난 전문적인 소견을 밝혀 놀랐던 일이 있었는데 그 뿌리가 바로 페스탈로치 선생이었다.

 

두 세기 동안 세상은 참 많이 변했습니다.

 

최근에 페스탈로치의 교육론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귀한 책 한 권을 서점에서 구입하였다. 교육학자 김정환 교수가 페스탈로치가 어머니들에게 보내는 편지들이란 제목을 붙여 번역·간행(1999, 양서원) 한 책이다. 유아교육 내지는 아동교육에 관한 그의 핵심 가치와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2백 년 전에 쓴 그의 편지를 읽으며 회신을 드리고 싶었다. 한국에서 사회복지 교육자였던 한 사람으로서 그에게 드리는 감사 편지이며, 또한 한 어머니로서 개인적인 소회를 담은 글이다.

 

페스탈로치 선생께>

 

선생이 가신 지 꼬박 두 세기 동안 세상은 참 많이 변했습니다.

과학과 기술은 진보하여 인공지능이 인간생활에 심대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21세기가 과연 어떤 아동의 세기가 될지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유엔 기관의 소식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매일 1 8천여 명의 어린이들이 기아와 영양실조로 사망하고 있습니다.

 

내전 지역의 어린아이들이 1분에 한 명꼴로 굶주림으로 죽어가는가 하면, 사랑은커녕 부모에 의해 버려지거나 모진 학대를 받고 죽어 가는 불행한 일들이 지구촌 곳곳에 비일비재합니다. 가버나움이란 최근의 한 레바논 영화에서 빈곤 가정의 12세 소년이 법정에서 자기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를 고발하고 싶다고 하여 전 세계의 관람객을 울렸습니다.

 

영화는 실화였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한국의 경우도 경제력 12위가 무색할 정도로 아동 학대가 심각한 문제입니다. 어린이 보호시설이나 학교 교육의 현장에서도 아이들이 과다한 스트레스나 폭력으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잠재력은커녕 떡잎부터 시들어버리는 일 또한 매일같이 벌어집니다. 선생이 그리도 강조하셨던, 모성의 사랑으로 어린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그 처방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한 때가 되었습니다.”

 

선생의 편지를 읽는 내내 저 또한 개인적인 회한에 젖어있었습니다. 젊은 날 아이들이 세 살, 그리고 백일이 겨우 지났을 뿐인 상태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친정 부모님께 맡기고, 2년간 혼자 유학을 갔다 온 일이 있습니다.

 

당시로서는 여성에게 흔치 않은 자기계발의 기회로 생각하고 선택한 일이었지만, 모성을 박탈당한 아이들의 입장은 깊이 헤아리지 못한 불친절한엄마였습니다. 친정 부모님께서 아이 들을 지극한 사랑으로 돌봐주셨고 방학 때마다 제가 집에 다녀가기는 했지만, 공부를 끝낸 후 돌아와 낯선 엄마가 된 저와 아이들 사이에 한동안 재적응하는 문제가 없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릴 적 결여되었던 경험일지라도 다른 발달 시기에 경험을 하게 되면 손상이 충분히 보상될 수 있다고 하는 에릭슨의 발달이론에 의지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아이들의 초중등학교 시절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고등학교 이후 계속해서 아이들의 독립심과 선택의 자유를 존중해주었습니다.

 

다행히 남편이 어릴 때부터 풍부하게 익힌 지··체 교육의 힘으로 저의 부족했던 부분을 잘 메워주어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 교육뿐만 아니라 부성, 아버지 교육이 어머니 교육 못지않게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선생은 온 인류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아온 분입니다. 한국의 어린이들에게는 행여 아이들이 다칠세라 길바닥에 떨어진 사금파리를 줍는 할아버지 선생님으로 영원히 각인되고 있습니다.

 

선생의 묘비에는 남들을 돕는 일을 했을 뿐 자신을 위해서는 한 것이 없다.’고 쓰여있다지요? 평생을 가난하게 살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셨던 삶이셨죠. 몇 년 전 선생을 뵐 기대를 잔뜩 안고 선생의 고향인 취리히에 갔었습니다.

 

중앙역 인근 조그만 공원, 연약해 보이는 어린아이의 어깨를 받쳐주면서 걱정스럽게 내려다보시는 선생의 청동상 아래서 겨우 인사만 드리고 사진을 찍고 돌아왔습니다. 스위스 국토 전체가 선생님의 살아있는 교육 현장이었습니다.

 

이제 선생의 교육철학은 우리 한국인들의 가슴 속에도 살아있는 지구촌 보편적인 목표로 뿌리를 내리고 있으니,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 더는 나서지 못했어도 섭섭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도 우리들과 함께하셨듯이 선생의 아이들 사랑 교육이 지구촌에 만개하여 온 인류가 다 같이 행복하게 웃는 그날까지 후대인들과 함께 해주시기를 빌겠습니다.”

 

한국에서 학교사회복지 사업이 제도화되는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파티를 열어서 축하하겠노라고 20년 전에 다짐했었다. 그 꿈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꿈만 같다. 그날이 오면 나는 페스탈로치 선생께 감사의 잔을 올릴 것이다. 그리고 휴정 서산대사가 일찍이 남기고 가신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 어지럽게 걷지 말라.

 

오늘 나의 발자국은 뒤에 오는 사람들의 이정표가 되리라.”는 유명한 시구처럼, 지난 20여 년 동안 이런저런 지루한 시범사업을 인내와 사명감으로 견뎌내고 마침내 국가로부터 학교사회복지사라는 지위를 인정받아 뒤에 올 사람들에게 바른 이정표를 남겨준 자랑스러운 사회복지사들과 한데 어울려 덩실덩실 춤을 출 것이다.

 

프로필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

한국산문으로 등단(2012)

수필집: 징검다리꽃, 섬세한 보릿가루처럼

현재 한국산문작가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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