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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작가 朴又木’ 혈맥(血脈) ‘인연’(15회)
기사입력  2021/04/13 [01:40] 최종편집    작가 朴又木

 ‘인연’

 

▲  작가 朴又木

성광의 왕도 진출은 그에게 여러 가지 변화를 일으켰다. 우선 그는 왕성과 지방의 오방을 오가며 몸으로 지리를 익힐 수 있었다. 특히 말을 달려 걸리는 시간, 계절 따라 다른 하천의 깊이, 취락의 분포, 성의 구조, 격전지의 지리적 특징을 파악해 상세히 기록했는데 그 자료는 후에 전장에서 아주 큰 힘이 되었다.

 

종종 도성에 짧게는 하루 이틀을 길게는 사나흘씩 묵었는데 그럴 때면 저잣거리에 나가 문물을 감상하고 물리를 익혔으며 가까이서 여론을 들었다. 간간히 달솔 본가에서 방령에게 보낼 물건을 산다면서 부선랑이 동행했는데 그럴 때면 어김없이 그를 여기저기로 안내해 구경을 시켜 주었다.

 

그미를 통해 그는 귀족사회의 생활관습, 언어, 문화, 혈연관계 등을 알고 배우게 되었으며 그런 지식은 후에 그가 귀족사회에 등장할 때 큰 보탬이 되었다.(그때 정립한 타협과 공존이라는 인생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그는 평생을 진력하게 된다.)

 

그가 광무군 방령의 본가 밖에서 묵을 경우 부선랑이 그에게 보내는 호의는 지성이었다. 그미는 남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장거리를 마상에서 지내야하는 것을 배려해 말안장에 깔 털 깔개를 선물한다든가 비상식량으로 말린 육포며 비상약으로 빚은 밀환(蜜丸)을 넣어 주었다. 그리고 때로는 주효를 장만해 싣고는 말을 달려 성 밖 경치 좋은 곳으로 나가 여독을 풀라며 그를 좋아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실제로 그미는 그가 왕도에 오래 머물던 어느 날 그를 데리고 사촌 오라비 해지경대(解智京大)부마저()로 갔다. 그는 성광보다 몇 살 연상으로 그미와는 아주 다정한 사이였다.

 

그미가 비성에서 있었던 일을 들어 성광을 칭찬하고 북방 광무군 방령의 전령으로 썩고 있음을 한탄하여 성광의 관면을 열어 달라 했을 때 평소 여동생의 장부다운 의기를 대견하게 생각하는 터라 그는 내심 성광에 대한 호의적 관심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저들은 천생 특별한 인연을 안고 태어났던 가 만나서 얼마간의 대화를 나눈 후 바로 의기투합해 그날 밤이 이슥하도록 술을 마시며 환담했다.

 

그가 성광에게 물었다.

그대는 나라를 다스리는 제일가는 덕목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그건 말할 것도 없이 백성의 삶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위태롭게 함은 무엇을 말함인가?”

 

그 첫째는 굶주림이고 그 둘째는 전쟁입니다.”

굶주림은 어떻게 면하면 되는가?”

우선 전쟁을 피해야 하고 임금이 농사를 장려해야 합니다.”

 

전쟁을 피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타협과 공존입니다. 타협은 무력으로 이득을 취하지 않는 것이고 공존은 상생의 길을 찾아 선린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적이 타협하기를 노력하지 않고 공존을 거부하여 침략을 해 올 때에도 그러한 이상을 고수해야 하는가?”

정치는 현실입니다. 적이 무도하게 무력에 의존하여 침략을 할 때는 대비하였다가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런 원칙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그러한 원칙과 이상에 젖어 무도한 침략에 굴복하게 된다면 전화로 국토가 피폐해지고 백성이 굶주리게 되므로 그런 정신은 쓸모없게 되고 생존을 위해 대물림을 해서라도 구적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게 됩니다. 공존의 가치를 버림으로써 비극적 악순환이 계속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대의 정견이 참으로 명쾌하면서도 사리분별이 정확하지 않은가! 하면 지금 이 나라의 정치는 어떻다고 보는가?”

 

바로 현명함으로 타협과 공존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원수 짓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삼국 간의 빈번한 쟁투가 굶주리는 백성을 먹여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싸움이 아니라면 군주는 백성을 무자비하게 사지로 몰아넣고 굶주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우리 백제는 신라와 어떻게 타협과 공존을 모색해야 하는가?” “우선 우리의 무력이 신라를 압도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 신라를 타협과 공존의 이상으로 설득해야 합니다.”

 

내 지금까지 그대처럼 젊은 나이에 왕도에 대한 정견이 이토록 영탄을 자아내게 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내가 깊이 깨달은 바가 많다.” “소생 또한 부모 슬하를 떠나 온 이후 처음으로 속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지만 앞으로 도성에 오거든 잠시라도 좋으니 꼭 내 집에 들러 차라도 나누고 가게.” “친동기 같은 온정에 감읍할 뿐입니다.”

 

성광이 떠난 후 부마가 당숙인 좌평 해동영구(解東榮久)를 찾아갔다. 그리고 성광의 인물 됨됨이나 나눴던 대화내용을 털어 놓고 왕부에서 발탁해 쓰도록 적극 천거했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좌평 해동영구가 손을 쓰자마자 성광을 왕도로 진출하게 만드는 계기가 엉뚱한 사건으로 찾아왔다.

 

(肖古王)이 아우인 고이(古爾: 후에 8대 고이왕이 됨)를 대동하고 구양성(狗壤城,충북 옥천)으로 출전하면서 웅진성에 들러 하룻밤을 머물었는데 그때 좌평 해동영구가 천거한 일을 기억하고 방령에게 명해서 성광을 시위(侍衛,왕의 호위무사)로 데려간 것이다.

 

왕은 들은 바가 있는지라 도중에 고이를 시켜 성광을 데리고 가서 꿩 사냥을 시켜 활솜씨를 확인해보라고 보냈다.

 

고이가 들을 안고 있는 야산자락으로 말을 몰아가서 왕께서 꿩고기를 원하시니 몇 마리 잡으라고 일렀다. 성광이 능숙하게 말을 몰아 야산 관목 숲을 뒤져 꿩을 날리고는 고이가 미처 활을 시위에 메기기도 전에 전광석화로 쏘아 떨어뜨렸다.

 

두 번째 몰이에서 암수 두 마리가 날아올랐다. 고이가 미리 메겨놨던 활시위를 당겼는데 빗맞았다. 그런데 동시에 두 마리가 화살을 맞고 떨어졌다.

 

고이는 자신이 활시위를 놓기를 기다렸다 성광이 쏘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상사에 대한 배려가 마음에 흡족했다. 잠간 동안에 여덟 마리나 잡고 행렬로 돌아갔다.

 

남진 이틀째인 그날은 부여 동쪽에 있는 동방 득안성(得安城)에서 머물렀는데 왕의 저녁 수라상에 성광이 사냥한 꿩고기가 푸짐하게 올랐다.

 

왕이 고이와 술잔을 나누며 성광을 불렀다. “소신 어라하(於羅瑕, 임금 호칭) 부르심을 받고 왔나이다.”

 

네 솜씨가 가히 신궁이라 들었다. 덕분에 맛있는 꿩고기로 안주를 삼게 되었구나. 한데 그 활솜씨는 어디서 익혔더냐?”

소신의 고향이옵니다.”

고향이 어디인고?”

비화가야이옵니다.”

 

. 네가 백제인이 아니고 정녕 가야인이었더냐?”

그러하옵니다.”

어째서 네 나라를 버리고 백제로 왔더냐?”

 

어찌 어라하께 숨기겠나이까. 소신 사실 그대로를 아뢰겠사오니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너를 벌주려고 묻는 것이 아니니 숨김없이 말하라.”

그가 왕 앞에 한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소신의 아비는 비화가야의 왕으로 소신은 차비의 둘째 소생으로 태어났습니다. 소신이 장성하자 아비가 저를 불러 왕위에도 오르지 못할 소신의 처지를 가긍히 여기신다며 평소에 동경하던 백제로 훨훨 날아가 살라고 하셨습니다. 하여 소신의 아우가 신라로 출가하는 가락국 공주님의 잉신으로 떠나는 것을 계기로 집을 떠나 천신만고 끝에 백제에 이 몸을 의탁하게 되었나이다

 

참으로 젊은 것의 운명이 기박하지 않은가. 어쩐지 너에게 범상치 않은 기상이 넘친다고 느꼈다. 네가 우여곡절 끝에 시위의 자리까지 온 것을 보면 우리 인연이 보통은 아닌 것 같구나. 모쪼록 충성스러운 백제인이 되도록 진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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