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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曜 隨筆> 수필가 강돈묵 ‘도리깨’
“또 한 해 잘 넘겼다며 유유자적 되찾아”
기사입력  2021/05/10 [13:51] 최종편집    수필가 강돈묵

니 사내에게자는 모습 보이지 마라. !”

 

▲ 수필가 강돈묵    

네 사내에게 흉물스럽게 자는 모습을 보이지 마라. 사내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라. 이 지당한 말씀에 양이 차지 않아, 어린아이를 팔베개로 끌어안고 자게 한다.

 

어미의 팔 두께에 겨워 한 저녁에 두세 차례 보채게 만듦으로써 아낙에게 깊은 수면을 허락하지 않으려했던 것은 사내들의 이기였을까. 쥐뿔도 없는 주제에 허세에 찬 사내는 눈을 떴으면서 제 아내가 혼자 동당거리는 것을 못 본 체 한다. 이것 역시 가장의 채신머리였을까.

 

어쩌다 있는 동당거림이 아니고, 매일 새벽부터 밤늦도록 반복되는 제 계집의 일상인데 느긋하게 궁둥이 붙이고 누워 있는 사내들의 꼬락서니는 맨발로 걷어차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가장의 체면 지켜주려 아이들 눈치 보며 넘어가는데 습관으로 굳어버렸는지 꼼짝하지 않는다. 으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으름장이니 한참 기가 찰 노릇이다.

 

이 집 사내를 닮았는가. 도리깨는 봄이 와서 들판이 초록을 퍼질렀는데 일어날 기미가 전혀 없다. 헛간에서 겨울잠을 잔 연장들이 부스스 기지개를 켜고 밖으로 나서는데 도리깨는 전혀 일어날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훌훌 털고 들판으로 나서는 옆의 친구들을 바라보면서 전혀 개의치 않는 도리깨. 모르는 척하며 요지부동이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듯이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란 구역질이 한참 난다. 제 아내 동당거림을 눈감아 버리는 게름뱅이가 도리깨다.

 

동안거를 했으면 충전된 몸으로 제 한 몸 부서지게 딸린 식구 건사할 만한데 하안거까지 꿈꾸는지 손가락 하나 옴지락거리지 않는다. 그나마 헛간에 빛이 들지 않으니 괜찮다.

 

게을러터진 머슴놈 들창문에 멍석 덮어주자 사흘 밤 나흘 낮을 잔다더니 이 도리깨를 이르는 말이다. 멀대같은 키를 벽에 기대고서 누워 있는 꼴은 좀처럼 들로 나설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장마가 달려오니 어쩌겠는가. 바쁜 농사철에는 부지깽이도 나선단다. 세 살배기 아이까지 옷소매를 걷어붙이니 게름뱅이 가장인들 더 이상 못 본 체 할 수 없다.

 

배꼽이 드러나게 잠방이 질끈 묶고 토방으로 내려서는데, 보리꺼럭 같은 여름이 마당에 퍼질러 앉아 왁자하다. 뙤약볕에 바짝 마른 콩과 팥이 탁탁 튀고, 자리개에 묶여 절구통에 내려쳐진 보릿단과 던져 놓은 북데기가 마당에 그득하다.

 

오늘 치우지 않으면 내일 장대비에 싹이 틀 거라는 아내의 지청구가 집안에 널려 있다. 남들이 큰일 다 손보고 나면 그제야 마당에 내려서는 것. 그게 바로 도리깨다.

 

눈감아 버리는 게름뱅이 도리깨

 

키는 훤칠하나 축 늘어진 팔다리는 게름뱅이를 가장으로 둔 집안 꼴이다. 사내보다 한 허리는 더 긴 자루. 그 머리에 구멍을 뚫고, 거기에 낀 꼭지 끝에 도리깨아들을 매달았다.

 

뒷산을 사흘이나 쑤시면서 겨우 건진 때죽나무 자루는 멀대 같이 긴 것이 영락없는 이 집 사내다. 잔정이라곤 약에 쓰려도 찾을 길 없는 사내를 지아비로 섬기며 살아내는 지어미, 가슴에 서린 아픔인들 입에나 담을 수 있나.

 

시시때때로 보채는 세 아들의 요구를 지아비 몰래 잠재우려니 수월치 않다. 종종 빚어지는 부자간의 삐거덕거림 땜에 꼭지는 늘 긴장한다. 그래도 성질이 물푸레나무 같이 올곧은 아들만 셋이니 위안삼고 살아간다.

 

제 잘난 멋에 사는 지아비라서 정이 붙지 않는다. 맨날 가장이라고 꼿꼿하기만 하니 집안에 웃음이 있을 리 없고, 잔정 풀어내는 소리가 한 마디 흘러나오지 않는다. 조금만 움죽거리려면 온몸에서 어긋나는 소리가 요란하다. 삐륵 삐륵 삐그득. 가운데 끼어서 양쪽을 달래는 이 집 아낙, 꼭지의 가슴 아픈 소리는 저절로 흘러나온다.

 

그나마 투덜대는 경우는 있어도 청올치로 옭아매었으니 대문 박차고 나가는 불상사는 없어 다행이다. 지금껏 참아온 가족들의 인내는 한결같다. 세 자식이 올곧게 자라 어떤 난관에도 참아내며 제 몫을 하니 그런대로 또 한 해는 넘길 모양이다.

 

그래도 게름뱅이 도리깨는 의기양양하다. 한 번도 무릎 꿇는 법이 없다. 늘 어설퍼도 꼿꼿이 서 있다. 와롱기가 가을 들판을 휘몰아가도 한 해의 노을빛을 쓸어 담지는 못한다.

 

마당에 그득한 북데기를 도리깨가 한바탕 두들겨 패야 끝이 난다. 아무리 이쯤에서 마무리하자고 구슬려도 소용이 없다. 비록 게름뱅이여도 마무리의 권한은 온전히 제가 가지고 있다는 식이다. 한 나절 쉬고 나온 도리깨가 북새통을 떨어야 마무리된다.

 

마당에 널려 있던 북데기들은 이리 넘겨지고 저리 넘겨지는 수모를 당한 뒤라야 겨우 나가라는 승낙이 떨어진다.

 

어시의 명에 따라 세 아들이 소리소리 지르며 북데기를 후려쳐댄들 그 성과는 언제나 별로인 것을 모두 다 안다. 그래서 아무도 투덜거리지 않는다. 자리개질이 있었던 절구통 가에 쌓였던 나락의 더미를 보았기에 접어준다.

 

뒤늦게 뻗대는 모습을 바라보며 지그시 눈을 감아줄 뿐이다. 다른 친구들이 자신의 공과를 열거하지 않으니, 이는 도리깨의 복이다. 이래서 가장의 채신은 지켜진다.

 

다시 동안거에 들면 되는 것이다.

 

가을이 익어 가면 한 해 동안 수고한 연장들이 모두 헛간으로 찾아든다. 분이 덜 풀린 낫이나 삽이나 곡괭이들은 아직 살기가 남아 있어 어느 때든 뛰쳐나갈 태세이지만, 도리깨는 또 한 해 잘 넘겼다며 유유자적을 되찾는다.

 

그리고는 옆에서 그 누가 자신의 공과를 뇌까리든 관심 주지 않는다. 소소하게 일어날 일들이야 옆지기가 알아서 할 일이니 다시 동안거에 들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도리깨가 또 한 해를 지내고 내년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은 나머지 친구들의 깊은 배려와 가족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게름뱅이라 해도 마무리의 귀찮은 일은 도맡아 해주니 그 나름 이해한다.

 

이제 다시 느긋하게 칩거에 든다. 그래도 없는 남편보다 게름뱅이라도 같이 있어 주니 고마워하는 아내가 있어서 좋다.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성미는 있어 동당거리는 제 계집을 향한 한 마디는 잊지 않는다.

 

니 사내에게 흉물스럽게 이 갈고 자는 모습 보이지 마라. !”

 

▲ 도리깨의 구조는 손잡이 ·타부(打部)·연결부(連結部)로 이루어진다. 손잡이는  '어시'  타부는 '아들'(아덜) 연결부는 '꼭지'( 털래)라고 한다

 

 

프로필

 

()거제대학교 교수, 수필가, 문학박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수필문학진흥연구회장

신곡문학상, 새한국문학상

수필집: 러브레터와로비레터,놓아주기연습,흔들리는계절

평론집: 본질찾기와수필쓰기,낯설게보기와낯설게하기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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