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행신(浮行神)(35회)

● 여행용 가방이 바뀐 것을…․

▲ 작가 朴又木

김강민이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세미나 참석차 일본으로 갔다. 규슈의 수도라고 불리는 후쿠오카(福岡)의 국제공항에 내린 시각은 오전 10시, 날씨는 잠포록했다.

그는 버스정류장에서 반시간 가량 걸리는 후쿠오카행 리무진 버스에 올랐다. 인공운하가 180미터나 되어 ‘운하의 도시’라고 불리는 중심시가지 덴진(天神)지역으로 가서 관광을 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오후에 야쓰시로(八代)행 기차를 탈 하카타(博多)로 이동해 점심을 먹고 근처의 구시다 신사(神社)를 둘러볼 참이었다. 거기선 마침 보름동안 기온야마가사(祗園山笠)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축제는 7백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것으로 가마쿠라(鎌倉)시대에 하카타에서 창궐했던 돌림병 퇴치를 기원했던 것에서 유래했다.

오후 1시경 그가 텐진의 관광을 마치고 하카타역으로 갔다. 역전 한 카메라빌딩 식당가에 있는 생선초밥집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서였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워낙에 값싸고 맛좋기로 이름난 식당이라서 10여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그는 대식하는 편이라서 1백 엔짜리 초밥을 스무 개나 먹었는데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이며 알맞게 숙성된 생선회가 고추냉이간장과 어울려 일미를 뽐냈다.

구시다 신사는 하카타역에서 하카타 강을 건너 10여 분정도 걸어가 나카스(中洲)라는 곳 동쪽에 있다. 757년에 창건해 하카타의 수호신을 모셨다. 축제기간 시내 중심 상점가에는 높이 16미터의 호화찬란한 ‘가자리야마가사’를 장식한다.

그리고 축제 마지막 날에 남자들이 무게가 1톤이나 나가는 금빛 찬란한 ‘가키야마가사’를 메고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옷쇼이 옷쇼이’하고 외치며 거리를 행진한다. 야마가사(山笠)는 하카타의 수호신으로 ‘옷쇼이’ 하고 외치는 것으로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됨을 알린다.

김 교수는 구시다 신사에서 하카타역으로 돌아와 기차표를 끊고 역사 상점가를 구경하다 커피가 생각나서 작은 숍으로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여행 가방을 놓고 계산대로 가서 주문을 했다.

그때 한 쌍의 일본인 남녀가 들어와서 그가 맡아 놓은 좌석 옆자리에 앉더니 순식간에 끌고 온 여행 가방과 그의 것을 바꿔치기한 다음 자연스럽게 밖으로 사라졌다. 이 일이 순식간에 일어난 데다 가방이 똑같아서 실내에 있는 그 어느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그는 주문한 커피와 건포도 쿠키를 쟁반에 담아 자리로 돌아왔지만 그 역시 아무런 낌새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가 가고시마(鹿兒島)행 릴레이 쓰바메호에 오른 것은 6시, 초하의 석양이 서녘에 비끼고 있었다.

행선지 야쓰시로까지는 두 시간이 채 안 걸리는 거리, 특급열차는 제비라는 이름처럼 날렵하게 남 규슈 방향으로 질주했다. 열차 안은 알맞은 냉방으로 아주 쾌적했으며 빈 좌석이 더 많아 실내 분위기가 차분했다.

시발역 하카타와 종착역 중간쯤에 있는 구마모토(熊本)에 접근할 즈음에 뭔가를 꺼내려다 여행용 가방이 바뀐 것을 알게 된 그가 몹시 당황했다. 거기에 세미나에서 배포할 논문 원본과 발표할 자료가 들어 있으므로 그걸 찾지 못한다면 세미나에서 발표는 무산될 것이었다.

아무리 이 황당한 사고의 동기나 목적이나 대책을 생각해 봐도 한 터럭의 해답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가 망연자실하여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선글라스를 쓴 한 여인이 그의 등 뒤쪽으로부터 나타나 스쳐 지나가며 빈 좌석에다 뭔가를 떨어뜨리고 재빨리 다음 객실로 사라졌다.

뭔가 떨어지는 기척에 그가 창밖을 내다보던 시선을 거둬 돌아봤다. 그가 집어든 것은 빨간색 작은 사각봉투였다. 그 속에서 반으로 접은 메모지가 나왔다.

“선생님 여행 가방을 노리는 사람이 있어 바꿔치기 했으니 안심하십시오. 야쓰시로에 내릴 때는 가방을 두고 내린 다음 바로 건너편 홈에 대기 중인 쓰바메호로 바꿔 타고 종착역인 가고시마중앙역까지 가십시오.

그러면 모든 의문이 풀리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좌석은 3호차 3번이며 추가 승차권은 좌석주머니 속에 있습니다.”

구마모토 역에 멈췄을 때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에 그 가방이 사라졌다. 그는 비로소 뭔가 자신을 향해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속으로 가고시마역에 해결의 열쇠를 쥔 천사가 기다리고 있기를 빌었다.

열차가 종착역에 도착했을 때 밖은 어둑발이 내려 여행객의 객수를 깨웠다. 그가 부리나케 대합실로 빠져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한 남자가 다가왔다.

“실례하겠습니다. 혹시 김강민 교수님이신가요?” “그렇습니다만, 누구신지?” “전 심부름을 온 사람입니다. 제가 야쓰시로호텔까지 모시고 가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그를 택시정류장 근처에 기다리게 한 남자가 잠시 후 승용차를 몰고 와 그 앞에 세우고는 내려서 차문을 열었다. 뒷좌석으로 들어가자 거기에 잃어버린 여행 가방이 놓여 있었다. 반가움과 함께 급반전에 묻어나는 일말의 공구함이 마음을 스쳤다.

가고시마를 떠난 지 50분쯤 후에 야쓰시로의 그가 묵을 호텔에 도착했다. 그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전광석화처럼 지나간 의문의 촌극에 대해 운을 떼려는데 그 남자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다음 후딱 돌아서 떠나 가버렸다.

프런트데스크에서 체크인 수속을 마치고서야 비로소 모든 계획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서둘러 룸으로 올라가 우선 가방부터 열고 자료가 무사한가를 살폈다.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체크인 수속할 때 보관한 메시지라며 받은 봉투에서 속지를 꺼내 읽었다. “야쓰시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유감스럽게도 ‘고양이의 알을 낳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목간은 호텔 귀중품보관금고에 맡기시기 바랍니다. 도움이 필요하실 때는 시간에 구애받지 마시고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하십시오. 구다라수호신으로부터.”

그는 속으로 대체 내가 일본에 목간을 가지고 온 것을 누가 어떻게 알았으며 무엇 때문에 그것을 탈취하려 하는지를 곰곰이 짚어봤다. 자신이 발설한 적이 없는지라 단서 될 만한 아무런 단초도 짐작할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피아간에 오늘 하루 이상한 사건에 연관된 정체가 무엇인가 아무리 추리를 해봐도 깜깜절벽이었다.

그가 목간을 꺼내 보자기로 싼 다음 프런트로 내려가 맡겼다. 그 시각 후쿠오카의 요정 니시미루(西美樓)의 외딸은 방에서는 목간에 대한 대책 논의가 한창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거기에 참석한 면면은, 골동품업계의 대부 격인 나카가와 회장, 일본 최대의 우익단체 일지회의 2인자인 사토 다케오, 히노쿠마존황회의 규슈 지회장인 고무라 마사히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