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수레(90회)

● 익명으로 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작가 朴又木

김강민이 익명으로 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일단의 일본인들이 극우단체인 조수회 회원을 사칭하고 한국으로 잠입해 백동 마을를 공격, 유물수장고를 털어갈 계획인데 담판에 실패하면 구문보회회장을 죽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뒤이어 아내 사치코의 편지가 왔다. 그런데 사연은 구구절절 남편 그리움이 실리는 전과 달리 몇 가지 긴장거리를 싣고 있었다. 진즉에 진드기 같은 야쿠자라고 배척한 교스케가 회심한 신사지기가 되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인 인생반전이었다.

그가 신사지기가 된 이후에 신사분위기가 눈에 띠게 좋아진 것은 소위 못난 조무래기 깡패의 행패가 사라진 때문이었다. 그들은 신사에서 주는 용돈이 불만이면 참배객이 절 경내로 들어서며 제일 먼저 하는 손 씻기를 하지 못하게 세수대(洗手臺)를 더럽혔던 것이다.

그의 경력과 이름이 절간에 걸리는 것만으로도 의리의 사나이라 자처하는 저들은 그를 연민하여 참배도 하고 그를 만나 절밥도 먹을 겸 절을 찾는 바람에 카라가에 신사는 신도가 부쩍 늘었는데 궁사가 미인이라는 소문에다 절이 영험한 증좌로 여기는 사내 업둥이까지 들어왔다는 소문에 참배객이 몰려왔다.

교스케의 변화 중에 한 가지 드러나지 않은 게 있는데 사치코에 대한 충성심이었다. 한 때는 그미의 목숨까지 노렸던 터에 아무리 그미한테 생활을 의지하고 있다한들 그미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마음이란 누구도 믿어 주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결심은 진정이었다. 어머니사랑이란 것을 받아본 적이 없이 자란 그에게 사치코가 업둥이한테 쏟는 자정을 보면서 감동한 나머지 그미와 신사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애와 목숨을 바칠 것이라 결심한 것이다.

그는 매우 영리한 사람이라서 사치코의 처지가 얼마나 복잡하며 그미를 괴롭히고 있는 문제가 뭔지 잘 알고 있었다. 해서 본능적으로 그미를 위협하는 백제 보물찾기에 관련된 정보나 인물들을 은밀히 귀에 담고 살폈다.

그러던 중에 나카가와가 도쿠야마의 사주를 받아 하사카를 앞장세워 세 번째 백제유물수장고를 습격하려고 계획 중이며, 구문보회 김강민 회장과 담판해서 일본 측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살해할 것이란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다.

그는 그 정보가 믿을만하다는 심증이 굳어질수록 고민에 빠져 불면증에 시달리는 날이 늘어갔다. 그리고 어느 날 사치코와 대좌해 에둘러 그미의 심중을 타진했다.

“궁사 님, 제가 언젠가 절 식구가 되면서 입은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음을 아쉬워한 나머지 이 한 몸 바쳐 궁사임과 이 신사를 지킬 것이라고 한 맹세를 기억하십니까?” “물론 기억하지요. 대장부의 약속을 어찌 가벼이 흘릴 수가 있겠어요.”

“그렇게 믿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하면 중대사에 관련된 정보와 질문을 한 가지하겠습니다. 저를 신뢰하신다면 솔직하게 답변해 주시지요.” “진지한 질문을 어찌 불성실하게 대답하겠어요.”

“그럼 묻겠습니다. 한일 양국서 저리도 혈안이 되어 찾고 있는 백제 보물이 있습니까?’ “행방을 모를 뿐 있다고 믿어요.”

“알고 있으신지 모르나 미호는 죽던 날 그날 계획이 성공하면 그 보물장소를 함께 찾아가자고 했습니다. 단 조건이 김 교수님이 살아서 동행해야 한다고 못 박았지요. 그토록 미호는 김 교수님을 사랑했습니다. 만일 백제 보물이 발견된다면 궁사님은 그걸 어떻게 처리 하시겠습니까.”

“저의 결심은 아주 간단하고도 분명합니다. 이미 밝혀져 공개된 일이지만 내가 우리 후지하라 가문의 종가 후손인 남편 김강민 씨의 부인인 이상 그분 결정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분 결정이란 어떤 것이지요?” 그 순간 그미의 눈빛이 빛났다. “그분의 매우 숭고한 꿈이지요. 그분은 역사학자답게 사고가 언제나 미래지향적이고 아주 휴머니스트라 평화공존공영 사상의 열렬한 지지자이지요.

아마도 발견된 보물은 그런 이상 실현에 쓰자고 할 거에요.” “부부가 대단히 훌륭하십니다. 저도 힘껏 지원하겠습니다.” “공감해주니 힘이 납니다.” “저는 이제까지 무가치한 신기루만 좇았는데 앞으로는 큰 수레를 모는 김 회장님에게 미력이나마 보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교스케 님에게 부탁할 일이 한 가지 있긴 합니다만....” “저를 절지기로 신뢰하신다면 말씀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좋습니다.”

“실은 올가을에 야쓰시로에 있는 영명사에서 열리는 가을 히간(彼岸, 추수감사 조상제사)가 거행될 예정이에요.” “영명사라면 우리 신사의 본사(本寺)가 아닌가요?” “맞아요. 저 영험하기로 소문난 에다후나야마의 미쓰미네 신사를 위시하여 말사(末寺)들이 많아요. 금년엔 우리가 그 히간을 주관할 예정입니다.”

“그러면 그 뭐더라 ,,,,” “뒤풀이행사 말인가요?” “아, 예.” “특별히 계획하는 것은 없지만 아마 히미코(가야 김수로왕의 딸로 일본열도에 최초의 나라인 야미다이를 세우고 여왕이 되었다) 행렬은 전처럼 한국 측에서 준비할 거예요.”

“옛날 생각이 납니다. 캄캄한 밤에 휜 예복을 입고 횃불을 든 남녀가 금빛 불상을 호위해 행진하며 찬불가를 음송했지요.”

“세상에 마치 시인처럼 묘사를 하네요.” “그 행렬을 따라가며 한 해의 무병복락을 빌었지요. 그리고 부처님의 가피로 아름다운 가연도 맺어지기를 기원했으니까요.” “올해도 그렇게 해 보세요.”

그랬다. 바로 그 감사제를 이용해 김강민은 목숨을 걸고 경천동지할 모험을 감행하려는 것이었다. 카라가에 신사에 숨긴 백제 보물의 정체가 드러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사치코의 느낌은 기우가 아니었다. 그러잖아도 사치코에게 촉각을 세워 바람결정보라도 잡으려고 혈안이 된 저들에게 눈치를 챌거리를 엿보인 것이다.

김강민의 모사인즉 아내가 숨기고 있는 불상 속 금괴를 감사제에 오는 부처와 그의 열 제자 불상에다 숨겨 한국으로 보내는 일이었다. 아무리 소유권이 사치코 부부한테 있다 해도 밀반출은 범죄였다. 다만 그게 자금화 돼 고스란히 일본으로 투자될 것이라는 대의명분이 유일한 힘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게 영명사로 금부처를 옮기는 작업은 불가능했다. 보는 눈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미는 고심 속에 궁리를 거듭한 끝에 제사를 아예 카라가에 신사로 옮기도록 계획을 바꾸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그 일의 열쇠는 유키코가 쥐고 있었다.

그미가 조만간에 유키코와 함께 영명사 주지를 만나려고 날을 고르고 있을 때 영명사에 불이 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다행히 큰 불로 번지지 않았으나 감사제를 올리고 히미코의 도래(渡來) 행진 행사를 맡아 추진하는 것은 어렵게 되었다. 무엇보다 손님 숙박이 문제였다. 해서 카라가에 신사가 맡아 치르자고 제안했을 때 유키코의 동조로 쉽사리 합의 되었다

그미는 감사제의 준비와 진행은 교스케에게 맡기고 자신은 히미코의 행렬 행사를 맡았다. 한반도에서 오는 행렬의 여신 묘견(김수로왕의 공주) 역으로 규슈반도를 두르고 있는 바다와 구마 강이 만나는 합수머리에 있는 한 작은 항구에서 발행할 때 유키코가 공주 역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축하행렬이 돌아갈 때는 사치코가 배웅하는 공주 역할을 하기로 정했다.

그런데 그런 일련의 변화에 민감한 음모자들이 있었으니 도쿠야마, 나카가와를 비롯한 하사카 등이었다. 그들은 모두 혐한파(嫌韓派)에다 천황맹신자이고 백제 보물 찾기에 혈안이 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나카가와는 죽은 미호 신녀한테 들은 그간의 정보와 대화를 통해 굳힌 확신이 강했음으로 사치코에게 그 열쇠가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해서 카라가에 신사에 참배객으로 위장한 감시자를 심어 사치코의 동태를 감시하게 했다.

그런데 그 기미를 교스케가 눈치 챘다. 사치코가 감시자를 역이용하기로 하고 관련 정보를 조금씩 허위정보를 섞어 그들 귀에 흘러들어가도록 흘렸다. 한때 저들과 한 패였던 터라 교스케의 거짓 정보는 노회한 도쿠야마까지도 믿었다. 그리고 그런 실수는 후에 그들에게 목숨을 앗아가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남편 하사카를 통해 도쿠야마가 꾸미고 있는 탈취음모를 파악한 유키코가 여러 날고민 끝에 결심을 굳히고 도쿠야마를 찾아갔다. 그미가 탈취계획을 책임지고 진두지휘하겠다고 했다. 만일 실패하면 그 어떤 처분도 달게 받겠다고 했다.

“갑자기 그런 결심을 한 이유가 뭡니까, 부인.” 그가 못 믿겠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 제 속마음까지 털어놔야 하나요?” “전과 달리 부인은 현재 하사카 가문의 종부시잖습니까? 그리고 이번 거사가 마지막인지라서....” 은연중에 그미를 불신하듯 말꼬리를 흘렸다.

“도쿠야마님이야 말로 그간의 실패를 잊으셔서는 안 되잖아요. 황실에 심려를 끼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셔야지요.” “남의 아픈 상처를 사정없이 찌르시는군요. 그렇다면 성공을 믿을만한 근거를 들려주시겠습니까?”

“이상하군요. 이 유키코의 명예와 직위를 다 담보로 걸겠다는데 더 무슨 보장이 필요한가요?” “그렇긴 합니다만...” 그는 차마 그미에다 대고 김강민의 목숨까지 달려 있단 말은 할 수가 없어 얼버무렸다.

“하면 대답을 주시지요.” 그미가 그의 얼굴을 쏘아보듯 보며 냉정하게 채근했다. “좋습니다. 그럼 실수 없이 완수하리라 믿고 부탁드립니다.” 그가 정중하게 고개를 ㄴ숙였다.(“태양의 딸도 이제 지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