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젊어진 스타일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순수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서석고 동문에게 무한한 자긍심을 가져다주리라 믿으며, 이제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으로서 의정활동에서도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리라 기대합니다. 서석고 역사상 첫 의원 탄생에 우리 동문 모두가 그 기쁨과 책임을 함께 할 것입니다.”(光州 서석고 재경 총동문회)
▲전북 고창 출신의 통합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1988년 평화민주당 사무처 공채 1기로 출발해 당직자 생활만 올해로 20년째로 의정의 '베테랑'이다 | |
지난 5월 31일은 제헌국회개원 60주년이 되는 날이며 제18대 국회임기가 시작된 두 번째 날이었다. 1948년 옛 중앙청 회의실을 빌려 문을 열었던 대한민국 국회는 태평로 의사당을 거쳐 여의도에 둥지를 틀면서 2008년 올해 개원 60년을 맞은 것이다.
1948년 5월 10일 제헌국회 구성을 위한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좌익의 치열한 선거방해 공작과 김구·김규식등 민족주의 진영의 선거 불참에도 불구하고 유권자의 95.5%가 투표에 참가하여 제주도를 제외한 남한 전역에서 임기 2년의 198명 의원이 선출되었고, 1년 후 제주도에서는 2명의 의원이 선출되었다. 감격스럽게도 1948년 5월 31일에는 역사적 제헌국회 개원식이 거행되었다. 초대의장에 이승만, 부의장에는 신익희, 김동원 의원이 선출되었다.
이명박 새 정부의 출범에 때맞추어 국회를 구성하여 같이 출범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다 하겠다. 탈 권위, 실용주의가 시대정신으로 전면 등장한 가운데, 정파의 이익보다는 위민 의식에 투철한 국회의원이 국민 지지를 받는 풍토의 기대가 응당 조성되어야 한다.
참으로 다행이랄까? 최근 광풍노도의 촛불집회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철칙을 생생하게 확인하여 주었다. 전 계층을 망라한 촛불집회는 의회민주주의보다 시민 민주주의가 가일층 성숙해진 것을 여실히 반증한 만큼 18대 국회를 이끌어갈 299명 의원에 참교육의 산실임을 확고하게 제시하였다 할 것이다. 이에 금번 제18대 국회개원에서 초선이면서도 이미 정치력을 검증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통합민주당 안규백 의원에 거는 기대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 실물정치 해박한 당료출신
여야 정당엔 오랫동안 사무처에서 묵묵히 일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인물들이 있다. 실물 정치에 관한 한 어느 중진 의원 못지않은 정치 후각과 촉각을 겸비하고 있지만 본인이 빛을 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미 기득권 거머쥔 선량들이 당료에게 아예 원내 진입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의 하나가 통합민주당의 안규백의원이었다.
전북 고창 출신(1961년 4월 29일생)의 통합민주당 안규백 의원(48)은 1988년 평화민주당 사무처 공채 1기로 출발해 당직자 생활만 올해로 20년째인 '베테랑'이다. 당보인 평민신문 기자로 출발하여 1995년부터는 무려 15년간 조직부장 조직국장 등 조직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민주당 ‘마당발'로 전국 당원들이 안규백 의원을 모른다면 아마 우스개 소리로 간첩일 것이다.
안의원은 민주당이 여러 시련을 겪고 있을 때, 양지를 찾지 않고 지조를 꺾지 않았었던 것만으로도 신망의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안 의원은 2003년 열린 우리당 창당 때는 "민주세력의 분열은 안 된다."는 일념 하에 구 민주당 잔류를 선택했다. 미니 정당으로 곤두박질한 구 민주당에서 '인고의 세월'을 견뎌오다 올 초 통합민주당에 합류한바, 박상천 대표의 든든한 지원 사격으로 18대 국회에 비례대표 14번으로 입성하는 벅찬 감격의 순간을 맞았다.
짙은 눈썹에 뚜렷한 이목구비의 이미지로서, 왕년에 여성의 애간장을 녹였을 법한 동안의 안규백의원! 그는 처음부터 초지일관 여의도 입성을 학수고대 꿈꾸었을까? 성균관대에서 철학(79학번)을 전공한 안의원은 대학 시절 연극반에서 활동하며 연극배우가 되기를 꿈꾸었다. 하지만 선친의 맹렬한 반대에 백기항복한 안의원은 관객과 무대의 판타지를 접지 않을 수 없었다.
절치부심 하던 안 의원은 1988년 평화민주당 당보인 평민신문 기자로 정계에 입문했다. 연극의 열정을 대신 필력으로 대체시킨 것이었다. 안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그 당시는 언론 통제가 심한 시절이라 시민들이 야당 기관지를 보고 정국을 파악하고 정보를 얻는 시절이었습니다. 발로 뛰면서 머리로 사고하고 가슴으로 느끼면서 당의 홍보 전위대 역할에 시대사적 소명을 떠맡은 셈입니다.”
▲ 안의원은 본인의 오랜 조직국 경험을 든든하게 자산삼아 중앙당과 원내를 잇는 허브 역할을 당차게 펼치겠다는 단단한 각오를 연신 피력하고 있다. | |
▽ 중도개혁 표방 ‘복지에 관심’
현재 역시 통합민주당 조직위원장으로서 7월 전당대회 실무 준비에 눈코 뜰 세 없이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안의원은 당내에서 '중진의원 같은 초선'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 누구보다 당내외적의 생리를 주도면밀하게 파악하고 있기에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 안의원에게 거는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안의원의 정당론은 상당히 실용주의적 논리의 궤적을 공유한다. "정당은 의원과 중앙당, 당원의 3박자가 잘 맞아야 원만하게 돌아간다.…18대 국회에서는 "중앙당과 의원들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에 집중 전념하겠다.”며, “특히 거대 여당인 한나라당에 맞서기 위해선 민주당 의원들이 계파를 떠나 일치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누차 강조한다.
안의원의 거시적 정당 담론을 미시적으로 통찰 분석하자면 이런 식이다. 상위정치(지도부)-중위정치(국회의원, 원외위원장)-하위정치(시․도당)의 트라이앵글 구도가 튼튼하게 접목될 때 정당이 안정되고 결국 국정이 원만하게 조율될 수 있다는 논지이다. 안의원은 본인의 오랜 조직국 경험을 든든하게 자산삼아 중앙당과 원내를 잇는 허브 역할을 당차게 펼치겠다는 단단한 각오를 연신 피력하고 있다.
안의원은 이미 개인적으로도 개원 전부터 입법 활동 준비에 시간을 쪼개 쓰고 있다. 서민들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전․월세 소득공제, 지방자치법 개정에 혼신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무리 좋은 입법이라도 국민과 괴리되면 무용지물이기에 국민과 발맞추는 정책을 내놓겠다는 그의 공언을 적극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입법 활동을 실효적으로 가열차게 밀어붙이려면 의원들이 전문가의 조언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감사원, 국책 연구기관 등 전문가 그룹을 국회 산하로 이관해 국회 기능의 활성화 및 국민청원의 반영률을 대폭 높이고, 예산에 대한 감시능력을 끌어올리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세인들의 염원에 안의원이 적극 부응하려는 것을 미연에 감지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안의원은 가진 자 우선 정책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이명박 정부에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질 않고 있다. 지난 5월 20일 헤럴드경제의 ‘한국의 향후 발전과정의 인식과 시각에 대한 18대 국회 초선의원들의 서베이에서 ’핀란드‘를 이상적 모델로 손꼽은 안의원! 이제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선 이상 여성과 노인, 경제적 약자 등을 두루 포용하면서 성장하는 '복지국가 모델'을 우리도 지향해야 한다는 견해로 분석된다. 또한 안의원은 이념적으로는 기존 우리당의 ‘진보 개혁’ 대신 ‘중도 개혁’ 노선의 중심에 서있다. '중도개혁주의'는 옛 민주당의 정책 노선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경향신문이 4월 14일의 보도된 바와 같이 18대 국회 초반 최대 현안일 것이 분명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관해서 안의원은 국내 제도를 보완한 뒤 비준해야 한다는 '선(先) 제도 보완'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한·미 fta 자체에 대해선 찬성 쪽에 기운듯하다. 한·미 fta가 불가피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약자들을 위한 보완책을 최대한 마련한 뒤에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선량한 국민들은 18대 국회에서만큼은 국민을 우롱하지 않는 참정치 구현을 읍소하고 있다. 누구든 안규백의원이 의정의 백미가 되길 기원하는 것도 국민의 이런 여망이 너무 간절하기 때문일 것이다.
▽ 안규백 의원 프로필
제18대 통합민주당 국회의원
통합민주당 조직위원회 위원장
성균관대학교 무역대학원 수료
광주 서석고등학교 제4회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