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왕실 주치의 김승학씨 저서 떨기나무
2007년 5월 초판이 발간된 이래 공전의 스테디 셀러
2001년부터 6년동안 열두 차례 사우디 라오즈산 탐사
시내산과 출애굽 여정 유적발견은 세계 고고학계 파장
▲ 시내산이 아라비아에 있다는 고고학적 성과가 계속하여 보고 되고 있다. |
|
● 한국의 김승학씨 ‘진짜 시내산 논쟁 재점화’
이후 진짜 시내산의 논쟁이 다시 재점화된 것은 한국의 김승학씨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실 주치의라는 특이한 경력을 가진 김승학 씨가 펴낸 ‘떨기나무(두란노)’라는 책에서이다. 떨기나무는 2007년 5월 5일 초판이 발간된 이래 2018년 8월 17일 현재 65쇄를 찍은 공전의 스테디셀러이다.
김승학씨는 지금까지 시내산으로 알려진 시나이반도의 무사산은 진짜 시내산이 아니고, 과거 미디안 땅에 해당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북부 지역에 있는 라오즈산이 바로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진짜 시내산임을 발견했다고 주창하고 나선 것이다.
김승학 씨는 사우디 왕실의 주치의라는 영향력을 십분 발휘하여 가족과 함께 목숨을 건 대모험을 통해 2001년부터 2006년까지 6년 동안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 북부 지역의 라오즈산(고대는 미디안 땅,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지역)을 열두 차례 탐사에 나서면서 시내산과 출애굽 여정에 관련된 많은 자료를 수집하면서 세계 신학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 떨기나무는 2007년 5월 5일 초판이 발간된 이래 2018년 8월 17일 현재 65쇄를 찍은 공전의 스테디셀러이다. |
|
김승학 씨가 사우디 왕실의 주치의가 된 비하인드 스토리는 대략 이러하다. 직접 그의 고백담을 청취하여 보기로 한다.
1987년 해외개발공사가 사우디 진출을 희망하는 의료요원들을 선발해 영어 통역을 부탁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해 사우디 지잔 파드립 병원에서 최초로 침구과를 운영했다. 당시 나는 침술 전문가였다. 사우디에서는 침 하나로 사람이 병을 고치는 것을 신기해했다. 1988년에는 제다지역에 있는 제다종합병원에서 침구과를 개설했다. 이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 병이 나았다.
사우디 일간지에서 내가 하는 침술의 우수성을 보도했다. 이 보도를 보고 이슬람 메카 주지사(이슬람 총재)였던 마지드 빈 압둘아지즈 왕자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목 디스크로 고생을 하고 있어 수술을 곧 할 예정이었는데, 침술 기사를 보고 혹시 하는 마음에서 나를 찾은 것이다. 침 하나로 하나님은 그의 목 디스크를 낫게 하셨다. 그것이 계기가 돼 왕자 주치의로 2003년까지 지냈다. 이후 2006년 8월 3일 모든 자료를 가지고 한국에 귀국했다.
물론 김승학씨의 시내산 재발견은 론 와이어트가 촉발시킨 진짜 시내산의 근거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되지만, 이전의 무릅쓴 단기적 제한적인 접근에 비해, 다소 합법적으로 장기간 안정적으로 탐방하면서 일군 성과이어서 세계 고고학계와 기독계의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 고센 지역에서 시나이반도를 가로질러 아라비아의 미디안 땅으로 가는 것이 모세가 가장 빨리 애굽 국경을 넘어 안전한 곳으로 도피하는 방법이다.
|
|
● 구약성경이 기록한 출애굽기 여정들
구약성경 출애굽기에서는 모세가 이집트 바로왕의 노예 생활을 종식하고 대탈출한 서사시를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다음은 바로 왕의 집요한 추격을 받으면서 긴박감 있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속하게 이동하는 그 여정들의 핵심을 추려본 것이다.
▼ 이스라엘 자손의 첫 탈출(라암셋에서 숙곳 도착)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출애굽기 12장 37절)
▼ 이스라엘 자손의 두 번째 여정(숙곳에서 에담 도착)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출애굽기 13장 20절)
▼ 이스라엘 자손의 세 번째 도착(에담에서 비하히롯 앞)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출애굽기 14장 2절)
출애굽기 여정의 일대 전환점을 이르는 전반부의 기록를 살펴보면, 라암셋->숙곳->에담->믹돌->비하히롯 앞->홍해->바알스본 지역을 중점 거론할 수 있다.
▲ 유일하게 시내산의 위치에 대한 거리상의 정보를 명확히 담고 있는 구절은 신명기 1장 2절로시내산에서 가데스 바네아까지 도보로 11일 걸리는 거리라는 것을 알려준다. |
|
▼ 이스라엘 자손의 네 번째 도착(수르광야 사흘길, 결국 엘림 도착)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출애굽기 15장 22, 27절)
▼ 이스라엘 자손의 다섯 번째 도착(엘림에서 신광야 도착)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출애굽기 16장 1절)
▼ 이스라엘 자손의 여섯 번째 도착(신광야에서 르비담 도착, 아말렉전투)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출애굽기 17장 1절, 8절)
▼ 이스라엘 자손의 일곱 번째 도착(시내산 도착)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의 아들들과 그의 아내와 더불어 광야에 들어와 모세에게 이르니 곧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 진 친 곳이라”(출애굽기 18장 5절)
▼ 이스라엘 자손의 여덟 번째 도착(시내산에서 시내광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출애굽기 19장 1-2절)
▲ '아카바 만의 홍해'를 건넜다면 기존의 시나이 반도의 시내산은 있을 수 없게 된다. |
|
● 출애굽기의 최대 분수령 홍해의 위치는?
성경 출애굽기의 기록은 고센에서 시내산까지의 여정에는 반드시 홍해를 건너야 한다. 그러나 기존 출애굽 경로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널 필요가 없다. 육로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여기서부터 기존의 출애굽 경로에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현재까지 시내산을 찾는 열쇠로 홍해를 들고 있다. 일단 먼저 홍해의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여기에는 홍해의 도강지점이 두 곳으로 압축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홍해는 수에즈만의 홍해와 아카바 만의 홍해가 있다. 이는 출애굽 루트를 가늠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건넌 홍해가 어느쪽 홍해냐 하는 것에 따라 시내산의 위치는 달라진다. ‘수에즈만의 홍해’를 건넜다면 시내산은 시나이 반도에 있을 수 있지만 ‘아카바 만의 홍해’를 건넜다면 기존의 시나이 반도의 시내산은 있을 수 없게 된다.
먼저, 수에즈만의 홍해를 탐색하여 보자. 이곳의 홍해를 건너려면 하나님의 초월적 기적인 바닷물이 갈라질 때 수심이 1천2백미터나 되는 곳을 통과해야 한다. 대륙이 이동하면서 깊숙한 절벽의 바다가 생긴 것이다. 1천2백미터나 되는 절벽을 타고 내려가 다시 그 건너편 절벽을 기어 올라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아카바만의 홍해! 그 곳에는 유일하게 삼각주처럼 모래해변이 12킬로미터로 펼쳐져 있다. 이곳의 바다 수심은 120미터로 경사 6도의 완만한 유일한 바닷길이다. |
|
그러면, 또 다른 지역인 아카바만의 홍해는 어떠한가? 그 곳에는 유일하게 삼각주처럼 모래해변이 12킬로미터로 펼쳐져 있다. 이곳의 바다 수심은 120미터로 경사 6도의 완만한 유일한 바닷길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사흘 길을 걸어 이곳에 도착한 후, 하나님이 이곳의 바다를 가르시고 건너가게 하신 것이 훨씬 타당하고 설득력이 매우 높다.
이에 대하여 론 와이어트는 아카바만의 홍해를 건넜다고 솔로몬 시대에 세운 돌 기둥을 증거로 제시한다. 그 돌기둥이 이집트의 누에이바에 해변에 있다는 것이다. 그 바닷길의 기둥은 엄격한 고증에 의하면 솔로몬이 자신의 조상이 홍해를 건넜다는 것을 기념해서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 론 와이어트는 아카바만의 홍해를 건넜다고 솔로몬 시대에 세운 돌 기둥을 증거로 제시한다. |
|
▲ 만약 그 지역이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곳이라면 다수의 유적물이 해저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
|
▲ 론 와이어트는 그 바다 속에서 애굽의 말굽과 애굽의 병거들을 발견했다. |
|
그렇다면 솔로몬 기둥이 증거의 전부인가? 그렇지 않다. 시나이 편에는 기둥이 서 있지만 사우디 쪽에는 깃발만 꽂혀 있다. 사우디 정부가 이 사실을 알고 기둥을 잘라 바다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론 와이어트는 만약 그 지역이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곳이라면 바다 속에 그 증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바다 속을 탐사했다. 그리고 그 바다 속에서 애굽의 말굽과 애굽의 병거들을 발견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해서 엘림과 신 광야를 지나 시내광야에 가서 십계명을 받고 떠날 때 특히 이중에서도 유일하게 시내산의 위치에 대한 거리상의 정보를 명확히 담고 있는 구절은 신명기 1장 2절이다.
“호렙산에서 세일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 이 구절은 출발지를 시내산(호렙산)으로 잡고 있어, 시내산에서 가데스 바네아까지 도보로 11일 걸리는 거리라는 것을 알려준다.(다음호에 계속됩니다.)